강지윤 박사
강지윤 박사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달라진 시대의 풍경이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낯설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보며 대화하는 것이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상담실에서는 얼굴 전체를 내놓고 얕은 찡그림이나 입가에 설핏 지나가는 슬픔이나 표정에서 오는 고통의 감정 같은 것을 다 읽고 싶어진다.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에 마스크까지 쓰다보니 사람들의 이마에는 짜증이 깊게 패인다. 타인에 대한 태도에도 짜증과 분노가 묻어있을 때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친절이라는 삶의 태도가 더욱 요구된다.

친절한 태도는 점점 자신의 성격 속에 자리잡아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친절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며 기본적인 교양이며 예의다. 이 태도는 관계 속에서 꼭 필요한 인간 품성 중 가장 중요한 품성일 것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은 친절한 태도를 잃어버리기 쉽다. 친절을 잃어버리면 사람과의 관계가 늘 어려워진다. 불필요한 오해도 쌓인다.

타인에게는 친절하면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퉁명스러운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한결같은 친절의 태도가 아니라면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쳐지고 싶은 가식 친절이라는 뜻이다.

가식친절로 타인을 기만하고 사기치는 나쁜 인간들은 왜 또 그리 많은가. 다 싹 쓸어 지옥으로 보내버리고 싶다. 그런 자들에게 상처받은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그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어진다.

가식 친절은 정신을 차리고 의도적으로 애를 써야 하는 것이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친절은 오랜 시간을 통해 저절로 습득한 몸에 밴 좋은 성품이다. 아무리 아파도 힘들어도 친절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며 놀라운 능력이 된다. 이러한 태도는 앞으로의 삶을 점점 더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자기자신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품성이 어디서부터인지 일그러진 것이다. 가장 못나고 미성숙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화를 내면서도 “내가 언제 화를 냈냐?”고 소리친다. 타인에게 함부로 하면서도 왜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를 모른다.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함부로 하는 것이다. 함부로 취급받은 타인들이 자기자신에게 그 함부로 하는 태도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더라도, 극심한 우울과 불안 중이라도 친절을 잃지 않아야 한다. 친절을 잃어버리면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자신은 더 아프게 되기 때문이다. 몸에 밴 친절이 습관이 되도록 처음에는 인식하고 노력해야 한다.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처음엔 필요하다. 의도적인 노력이 반복되다보면 서서히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당 직원들이 불친절했다면 그 식당을 다시는 가고 싶지 않게 된다. 음식이 맛있어도 불친절한 그들의 태도는 음식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존중받지 못한 느낌 때문에 두고두고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음식맛이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직원들의 태도가 친절했다면 그 식당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고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 진정으로 친절한 태도는 꽁꽁 싸매어둔 사람의 마음 빗장을 열어준다.

우리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씩 불쌍하지 않은가. 완전한 인간도 없고 어느 정도씩 아픔을 숨기고 살고 있다. 긍휼함은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다. 인류애 같은.

이 긍휼함으로 존중의 태도를 품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성품일 것이다.

친절함이 기본적으로 장착된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분을 닮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강지윤(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심리상담학 박사)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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