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야보고서 3장 1-18절

수개월 전에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자주 뜨는 검색어가 있는데 바로 “갑질논란”이다. 모 대기업 총수의 부인과 딸이 부하 직원에게 비인격적으로 했던 행동이 물의를 빚었다. 어느 한 기업의 CEO가 직원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하는 내용도 고스란히 영상도 유포되었다. 또 식당에서는 손님이 종업원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해서 음식을 던지고 욕설을 했던 뉴스도 소개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격려는 못 할망정 갑질이라니 너무나도 울분이 터진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터지면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무엇이냐면 가해자들의 몰상식한 언어습관이었다.

오늘 본문은 언어와 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야고보는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갑자기 3장에 와서야 언어와 혀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이미 1장 26절에서 유대 교회공동체에게 언어와 혀에 관한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그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1절을 통해 야고보는 말의 갑질을 구체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내 형제들은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먼저 야고보 사도는 언어와 혀를 경계해야 할 대상이 누구라고 말하고 있나? ‘선생 된 자들’이라고 말한다. 선생 된 자들은 유대교회 공동체에 앞서서 일하는 모든 자들을 총칭한다. 당시 배경을 보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직분이 모호했다. 일곱 집사를 세운 이야기 말고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꾼이나 리더가 세워졌다고 소개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저마다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성도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가르치는 저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였다. 신앙의 색깔도 달랐고 강조점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마치 고린도교회처럼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가 나뉘었던 것처럼 서로 간에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맞네 무엇이 틀렸냐 무엇이 크냐 무엇이 작으냐 그러나 논쟁은 급기야 말로 상처를 주기까지 하는 갑질 논란이 되었다. 결국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공동체를 허무는 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가 언어와 혀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 것이다. “선생 된 너희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주의하라”

야고보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먼저는 말의 긍정적인 효과이다. 첫째는 3절에 보면 ‘말(馬)의 재갈’이라고 한다. 말의 재갈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말을 어거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재갈이 없으면 말은 천방지축 날뛰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말에 재갈을 물리기만 하면 이내 유순하게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게 만든다. 두 번째는 4절의 ‘배의 키’(rudder)로 묘사했다. 배는 키를 돌리는 방향으로만 간다. 키만 있으면 배의 종류나 크기에 상관없이 조정이 가능하다. 광풍이 불 때도 키를 잘 조정하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이를 수 있다. 반면 말의 부정적인 효과도 말하고 있다. 5절에 ‘작은 불’(fire)로 소개한다. 비록 불이 작다 할지라도 나무에 옮겨붙으면 온 산을 태우게 된다.

야고보 사도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말은 누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느냐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말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칼은 가치중립적이다. 누구에 의해서 사용 되면 생명을 살릴 수 있고 잘 사용하지 못하면 생명을 죽일 수 있다. 돈도 가치중립적이다. 누구의 손에 들려졌느냐에 따라 선한 것이 되기도 하고 악한 것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말도 누구에 의해서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인생이 살아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또 가정이 세워지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한다.

지그 지글러가 쓴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에 보면 영국에서 출생한 “빅터 세리브리아 코프”라는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은 1912년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근데 15살에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바보구나. 저능아구나. 너는 뭘 해도 소용없어.’ 이 말은 듣고 이 친구가 ‘나는 저능하구나.’ 인생을 아무렇게 살아간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인에 징집이 된다. 그 때 처음으로 아이큐 테스트를 한다. 영국 군인은 입대하면 의무적으로 아이큐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때 아이큐가 161이 나왔다. 그는 바보가 아니라 사실 천재였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천재의 삶을 살아간다. 멘사 클럽에 의장이 되고 책을 20권이나 쓰게 된다. 어릴 때부터 긍정의 말을 들었다면 빅터 세리브리아코프는 어릴 때부터 더 좋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말에는 두 자기 양면성이 있다. ‘파괴력’이 있기도 하고 ‘건설력’이 있기도 하다. 여러분들의 말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야고보 사도가 말한 공동체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을 낙심시키고 주저앉게 만드는가? 자기 의견만 관철시키려고만 하는가? 수군수군하면서 비방하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인가? 세우는 말하기는 것을 좋아하는가? 당신의 말을 통해서 위로하고 세우는 말이 되길 축복한다. 신앙의 품격이 있다는 것은 언어의 품격이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품격을 통해서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세워나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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