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십여년 전 칸 영화제에서 “생명나무(the Tree of Life)”로 Palme d’Or의 최고상을 받은 테렌스 맬릭 감독은 37년간의 영화 제작자 생활 동안 5편의 영화만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또 그 영화들이 명화(masterpiece)로 인정받았을 뿐아니라 정작 감독자신은 인터뷰는 물론 프리미어나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화제이다.

맬릭 감독은 영화 “생명나무”의 무대이기도 한 텍사스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친은 지질학자이자 아시리아계의 기독교인이었다. 맬릭 감독은 텍사스 오스틴의 성공회 학교를 다녔고 하바드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하이데거의 “이성의 본질(The Essence of Reason)”를 번역 출판하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는 동안 MIT에서 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

맬릭 감독의 영화인생은 1969년에 AFI Conservatory에서 수학한 후부터 시작되었고 대본 편집이나 시나리오 초안이나 수정 등의 작업을 하였다. 다른 영화들이 팬을 가지고 있다면 맬릭의 영화는 제자들을 생산한다는 평을 듣는데 그는 자신만의 고유하고 개인적인 스타일로 헐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활약하는 제작자라고 일컬어진다.

친구들과 동료 제작자들은 필름 메이커인 은둔자 멜릭을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모순된 사람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매우 수줍은 성격이면서도 작업시는 유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으로 몰입하며 신비주의적이면서도 과학에도 강한 믿음을 가진 자, 집요하게 엄격하면서도 어린아이같은 경이감에 충만한 자 등등…

이 영화의 초두에는 헐리우드 세계에서는 매우 이채롭고 감격스럽게도 구약성경의 욥기서 38장 서두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 또한 이 말씀의 정황에 근거한다.

욥기서는 정직하고 신실한 동방의 의인 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정적인 큰 축복을 시기한 사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는 극심하고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내용이다. 자식들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고 육신도 만신창이가 되어 아내의 저주까지 받으면서도 모든 것을 주시고 취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절대 신앙을 가지고있던 그였지만 점차 고통을 견디다 못해 급기야 자신의 목숨을 한탄하게 되고 이에 대해 친구들은 인과응보적인 소견으로 고통당하는 벗인 욥에 대해 정죄성 충고를 퍼붓는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말씀이 바로 영화 생명나무의 주제인 욥기서 38장의 내용으로 우주만물의 창조주의 위대한 권능과 경이로운 섭리가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19세에 잃게된 어머니가 놀라운 충격과 비애속에서 “Why me?”라고 신에게 신음하듯 기도하듯 연속적으로 묻는 가녀린 음성이 호소력 짙게 여운을 남기며 들려온다. 이 음성에 대한 신의 대답이 바로 욥기서의 내용과 부합되게 자연의 경이를 담은 압도적인 화면을 통해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욥기서의 내용을 모르는 일반 관람객들은 이 영화에 대해서 다만 감독의 천재적인 영상처리 기술이나 초자연적인 이미지에 촛점을 맞춘 신비롭고 서정적인 심미안에 탄복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뭔가 영화가 전하는 모호한듯한 메시지에 미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것이다.

어쩌면 멜릭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바로 이런 수상쩍은 의문에서 출발되어지는 사색의 서정을 유도하면서 그들과 무언의 소통의 접촉점을 찾아감으로써 그의 사상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또한 책임감 있고 다정하면서도 권위적인 아버지인 오브라이언 속에 내재한 억압적인 종교의 영을 고발하는듯, 무의식적인 분노의 문제와 관련해서 성장기의 아이들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불안, 이와 관련한 숨은 분노의 음성적인 표출 등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나가고있다.

그렇다, 부모들은 첫 자녀의 출생을 통해 생명의 경이와 환희를 배우고 전력을 다해 사랑을 쏟아내며 의무를 다하고자 애쓰지만 어느날 자녀들의 눈 앞에 우리들의 누추한 그늘이 밟히는 날이 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 모든 불완전함의 총체로 어느 날 갑자기 비극은 예고없이 탄생되는 것이라는 모종의 메시지도 전해진다.

이 모든 인생의 불가항력적이고 고통스런 수수께끼에 대한 일상적 토설이 바로 “Why me?”로 요약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욥과 영화 속 오브라이언 부인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난에 대해 슬픔을 넘어선 도덕이성적 회의나 분개감을 가지고 신의 존재와 공의를 의심하며 끊임없이 “왜 나에게?(why me?)”라고 저항 내지 절규하는 현대 지성인들에게 들려주시는 신의 음성은 의외로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다.

요컨대 신의 대답은 초이성적인 창조주의 주권 아래 순종하며 자연의 미물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로우심을 어린애처럼 순수히 끝까지 믿고 의지하며 따르라는 강렬한 호소인 것이다.

이는 결국 바로 에덴동산에서 창조주의 명령을 거역함으로인해 생명나무로의 접근이 차단된 인류역사의 유전된 비극을 만회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나무의 길을 열어놓으신 사랑의 아들의 복음의 메시지이다.

가슴 뭉클하게 아름다운 영화의 라스트 신은 제작자 개인의 희구를 넘어서 우리 모든 외롭고 아프고 고달픈 인생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꿈속의 본향, 영혼의 본향에서의 환희에 찬 신비로운 해후이리라…

요사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에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특별한 인류 역사의 한 국면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가장 강대국인 선진국이라 인식 되어온 미국의 상황은 너무도 의외의 충격적인 뉴스인지라 아침마다 뉴욕의 상황을 상상하면 가슴이 고동치고 종일 머리 속이 어지럽다.

예기치 않은 불행을 맞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엄습한 불가항력적인 죽음 앞에서 고통스럽게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 미지의 사람들이 자꾸 떠올라선지 오래 전 보았던 생명나무 영화 속 주인공인 오브라이언 부인의 가녀린 신음소리가 때때로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왜 접니까?”

그런 그들 중에 복음의 메시지가 주어지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심한 안타까움과 함께 무력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또 복음을 전해도 복음에 합당하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해 저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죄책감으로 몹시 양심이 아프다.

요즘처럼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가, 측량할수 없이 무겁고도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와 그 필연성이, 그 의미의 심각성이 여실히 체감된 적이 일찍이 없었던 듯하다.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시여,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박현숙 목사(프린스턴미션, 인터넷 선교 사역자)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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