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故 옥한흠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故 옥한흠 목사
故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 이미지 캡쳐

성경 안에는 두려운 말씀들이 더러 있다. 피하기도 하고 어쩔수 없이 설교를 하기도 한다. 산상수훈이라고도 불리는 말씀이 바로 그렇다. 설교하기에 부담스럽고해서 두려워하는 말씀 중 하나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다. 정말 나는 의로운가.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라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목사가 부담스러워 하는 말씀을 어떻게 교인들에게 전할 수 있는가.

본문 말씀을 보면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자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마4:24에 보면 대부분 병들고 귀신들고 가난한 죄인들, 세상적으로는 실패자요 소망이 없는 자들이 모였다.

산상수훈은 수준이 높은 기준의 말씀이었기에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말씀이다. 그렇다고 제자들을 위해서만 하신 말씀은 아니다. 미래의 제자들을 그리며 이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고 되어 있다. 이 장면은 가르치는 선생에 권위를 나타내는 구절이다. 마7:28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얼마나 박력이 있었는지 무리들이 놀랬다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천하만물을 창조하신 만유의 주님이시다. 오늘 이자리에도 계시며 우리맘에도 계신다. 이천 년전 말씀하신 것을 지금 얘기하신다. 교만한 생각이 고개를 들지 않게 하라. 산상수훈을 순종할 자가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엔 권세가 있다. 귀담아 들으면 마음이 아무리 캄캄해도 빛이 비췬다.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길 바란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다고 표현했다. 먹듯이 마음에 깊이 담았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다고 하는 그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임하길 바란다.

이 시간에는 팔복의 내용을 한대 묶어서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을려고 한다. 팔복은 8가지 복이다. 첫째로 명심해야 될 진리는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성품을 얘기한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성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러한 성품을 갖게 될 것이다.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새 새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난 사람만이 닮아갈 수 있는 성품으로 지금 가르치고 있다.

8가지를 개별적으로 떼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품성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한 사람의 성품을 얘기한다. 거룩한 성품이다. 예수님의 초상화라고도 한다. 너희는 나처럼 이러해야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구원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의 제자이다. 매일매일 묵상하라. 내 자신이 말씀대로 빚어져 가는지 검토해보라. 그러면 그 말씀이 나의 성품을 심는 씨앗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주님을 닮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

팔복은 예수님 자신의 행복을 가르쳐 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바로 감탄사이다. 심령이 가난하면 얼마나 행복한 줄 아느냐.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는 저의는 내가 느끼는 행복을 너희도 느껴보라는 주님의 속삭임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고통을 많이 체험했다. 그럼에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심령의 행복이었다.

가난하면서 행복함을 누가 가져가겠나. 이 세상에서는 큰 소리를 쳐야 이긴다. 온유하면서 행복하다고 한다면 누가 그 행복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이 행복을 주님은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신다.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무엇이든 행복해한다.

문제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틀려있다. 우리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기란 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권세가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행복을 준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만약 이것들이 행복을 준다고 가정한다면 선진국일수록 더 잘 살아야한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자살율이 높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가져도 행복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죄는 행복을 준다. 일시적으로 행복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그 속임수에 빠진다. 쾌락,재물,권력 다 행복을 못 준다. 모든것이 헛되다. 세상이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세상을 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이 여기에 있음을 얘기한다. 그의 성품을 닮아가는자는 진정한 행복을 맛 볼 수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 되신다. 그 예수님이 이자리에 계신다. 우리에게 권세있게 말한다. 행복은 밖이 아닌 내가 다스리는 너희의 심령에 행복이 있다고 하신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팔복을 가지고 우리는 이렇게 선언할 수 있다. 행복은 소유의 만족함이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심령이 가난한 것에 있다. 행복은 웃고 즐기는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애통하는데 있다. 행복은 강한데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온유한데 있다. 행복은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데 있다. 행복은 무정하고 차가운 것에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긍휼이 여기는데 있다. 행복은 더러운 마음에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있다. 행복은 바쁘고 갈등한 것에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화평하게 하는 자에게 있다. 행복은 무리와 타협하는데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에 있다. 예수님을 심령의 왕으로 모셔라. 그러면 행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막달라마리아, 인생이 망가졌던 사람인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곤 행복에 겨워 얘기한다. 예수님은 내가 전에 알지 못하던 행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파랑새라는 드라마 대사에서 ‘잠에서 막 깨어나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라는 주제를 놓고 당신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우리도 이런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심으로 그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런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

그 분의 성격을 나의 성격으로 받아 드려라.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나도 이 설교를 하면서 그런 행복을 맛보길 원한다. 우린 그렇게 할 수 있다. 세상적인 조건으로 보면 이를수 없지만, 그 분을 배울 때 찾아온다.

팔복의 말씀을 묵상해보라. 예수님의 성품이 이렇다면 나도 이러해야지 하는 간절함으로 기도하라. 악을 쓰는 세상에서 내가 온유함으로 행복해지면 얼마나 좋은가. 가진것이 없다 할지라도 행복하다면 그 만큼 좋은 것이 어디있겠는가? 우리 모두 이 행복이 있길 바란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