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故 하용조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하용조 목사
故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영상 캡쳐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영화가 있다. 예수님의 수난을 다룬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이다. 이 영화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기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상기도', 즉 필요에 따라서 하는 기도가 있다. 예수님의 삶은 기도였다. 기도와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기도가 공허한 것은 삶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것처럼 사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삶에는 경건이 있고 거룩이 있고 진지함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삶이다.

두 번째로 '생명기도'가 있다. 나에게도 있어서 이런 기도가 3번 있었다. 예수님의 기도는 특별한 기도였는데, 이유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기도의 기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요17장에 보면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이 한 장에 다 나와 있다. 생각과 기도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다. 생각을 많이 하면 기도를 많이 할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이 많으면 사상을 많이 만들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생각하면 사람이 보이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다. '생각하면 사람이 움직이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여러분들은 생각보다 기도를 많이 하길 바란다.

'기도는 홀로 하는 것이지만 동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40절에서 알려준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기도를 하는데 그것은 피상적이다. 진정한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영적으로 보면 마귀는 하나님의 택한 자를 집어삼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데 그 주변을 마귀가 계속 돈다. 예수님을 넘어트리기 위해 마귀가 제일 먼저 접근한 사람이 12제자들이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안 되니까 가롯 유다에게 붙어 결국 예수를 팔게 만든다. 우리 주변에도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는 하수인 노릇을 하는 자들이 많다. 자칫 잘못해서 게으르거나 방심하면 마귀가 지체 없이 공격한다. 그것이 믿는 자라 할지라도 그렇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눅22:41~42를 보면 예수님의 기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기도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약해지진 않았는지 생각을 한다.‘십자가가 무겁다는 뜻’이다. 예수가 지는 십자가는 온 인류의 죄의 무게를 짊어져야 되는 십자가였다. 강도의 육체적 고통이 전반인 십자가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단의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어떤 유혹의 그물을 던졌을까?" "네가 꼭 십자가를 질 필요는 없다. 십자가는 아무나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등에 두려움과 예수님은 싸웠을 것이다. 궁극적인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기도를 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발견하게 된다. 마귀의 최고의 계획은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전도, 집회 좋다. 그러나 기도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도는 악을 써야 된다. 새벽기도가 어려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아버지여 내게 피하게 하옵소서"이며, 두 번째는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이다. 자기 자신을 꺾는,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는 비밀은 '기도터치'에 있었다. "꼭 내가 해야 될 필요 없지 않는가?”라는 시험이다. 자기와 싸워 이기고, 상황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눅22:43을 보면 사단의 유혹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이 시점에서는 '천사가 와서 기도를 도왔다'고 되어 있다. 특별한 기도에는 '천군천사'가 다가온다. 여러분이 절망을 바꾸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도, 이것을 뚫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러나 천군천사가 힘을 더해 주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도움을 주신다.

눅22:44에 얼마나 예수님의 기도가 진지했던지 땀이 피로 변했다고 되어 있고, 히브리서로는 고통스러웠다고 되어 있다. 당신의 승리의 마지막 터치는 기도터치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게 아니다. 겉으로 기도 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며, 적당히 기도 하는 것이 문제이다. "금식하며 생명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이게 바로 기도이다. 비판하고 소리 지르며, 혈기 많은 사람 중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못 봤다. 기도하는 사람은 눈동자와 태도, 모습이 다르다. 기도는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눅22:45~46 그래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피곤해서 졸지라도 기도 하는 사람이 낫다.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마음은 원하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습관처럼 하는 것이고, 내 삶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매 순간 기도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특별 기도를 할 때가 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데, 상황과 현실이 그렇다며 처음 의도를 자꾸 뒤 바꾸는 이것이 시험이다. 첫 마음과 은혜를 붙들어야 된다. 이것이 기도터치이다.

그리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기도가 있다. 내 생각을 이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여러분 자신을 보면서 특별한 기도를 할 때인지 보라. 새벽의 성전에 기도하는 자들이 가득한 때를 꿈꾼다. 구경꾼이 많은 곳은 하나님이 역사를 하실 수 없다. 육의 본능과 자신을 꺾는 기도를 하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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