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십니까?”

19년 간 정든 교회를 떠나 목회인생 제2막을 앞두고 있는 송태근 목사(58)를 만나 던진 첫 인사였다. 기자의 인사가 짓궂었는지 손사래를 치며 "평안하긴요" 한다.

19일 강남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송 목사는 오전, 오후 빡빡한 일정으로 분주했다. 기존에 잡혀 있었던 오전 일정이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사실 이날 만남도 성사되기 어려웠다. 지난 주일 고별 설교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잊어달라고. 떠남의 자리에서 그는 목양실에 남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 삼일교회 부임,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다.

“목자 잃은 삼일교회 청년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죠. 나는 그저 내 몸을 흐르는 물에 던졌을 뿐인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아니다 말할 처지에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삼일교회를 그리고 삼일교회 청년들을 아끼신다는 것입니다. 남은 목회 인생이 10여 년 좀 더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기간 삼일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든든히 세워 나가는 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 정든 교회를 떠나는 아픔이 있을텐데.

“삼일교회 청빙 제의를 받았을 때 (강남교회)장로님들의 반대가 참 심했어요. 청년들은 오히려 객관적이에요. 이해를 해요. 그러나 어른들의 정서적 반응이란 것은 다르죠. 그게 좀 힘들었습니다. 통곡을 하고 이래 노니까요. 장로님들의 결의문까지 나오는 상황이 연출되고, 이러는 과정에서 한달 동안은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이게 참 평생에 두번 날 일은 아니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 의식 속에 두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한국교회 담임목사의 위치는 제왕적이지 않습니까?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영향력이 생겨요. 여기에 죄성이 얽혀져서 피차 괴물들이 자꾸 나와요. 농경사회 시절에는 이렇게 한 목회자가 평생 자식들 돌보듯이 목양을 하는 것이 미덕이었어요.

이게 또 보도가 되면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인데, 나는 원로라는 제도에 관해서 근본적으로 재고를 해봐야 한다고 봐요. 이 생각을 사실 오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로가 되면 보통 20, 30년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거든요. 이게 정말 후임에게나 본인에게나 교회에게나 상당한 영적인 부담이에요. 여러가지 병폐가 많습니다. 흔히들 얘기하는 것이 한국교회에서 성부, 성자, 성령, 담임목사입니다. 교인들의 인식 논리가 그래요. 그 정도로 담임목사 위치가 제왕적인데, 30년 이상 봉직을 해보십시오. 거기에 따른 잘못된 열매가 얼마나 많겠어요. 할 말은 아니지만, 환기와 순환이 교회마다 좀 필요합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을 먹고 있었고. 원로라는 직에 저는 그렇게 별로 목매는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강남교회도 19년 전에 피폐했죠. 저는 강남교회 교육목사 출신이었습니다. 교인들과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그래서 어리지만(당시 38세) 교인들이 저를 청빙할 수 있었죠. 겪어보니 교회는 두 시기가 있더라고요. 첫째 시기는 교회가 목사를 만들어요. 그리고 어느 분기점이 넘어가면 그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목양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두 시기를 철저히 겪었죠. 교회가 저를 만든 부분이 많고요. 삼십대에 와서 무슨 목회를 알겠어요. 아버지 같은 교인들이 다 덮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니까 잘난체 하며 목회했다 떠들 수 있는 것이지. 그런 시간이 서로 없었으면 박살이 나도 몇번 박살이 났죠.

삼일교회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이 원로직 내놓으면 자격이 되는데 이게 소명 받은 목회자에게 무슨 그리 큰 가치가 있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먹고 사는 것? 지금까지 하나님이 먹여주셨는데 거기에 목매야 되는가? 또 솔직히 전국에 돌아다니면서 다음 세대에 대해서 제가 제일 많이 떠들었을거에요. 우리 교단에서는 하여간 제가 제일 많이 주창을 한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말 값을 받나 싶기도 하고. 하여간 2만여 가까운 젊은이들이 목자 없이 2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은 굉장히 순진합니다. 의외로 굉장히 착해요. 그래서 착하니까 아무거나 막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을 볼 때 남은 목회를 이 젊은이들을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다가 끝내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습니다.”

- 강남교회에서의 19년 목회 후회는 없는가.

“후회 없습니다. 원 없이 목회했습니다. 교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힘들었죠. 잘 따라주고 말이죠. 저희 교회는 제가 부임했던 이후로 일절 봉투가 없습니다. 봉투가 사례보다 더 많지 않습니까? 전 이 교회에 오자마자 그런 것들을 싹 치웠죠. 이게 무슨 영광 받는 길이냐. 헌금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하라고 했어요. 형편 안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저는 그래서 교회는 항상 낮은 자 쪽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실수가 안나거든요. 어쭙잖은 경쟁,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안 그래도 찌들어 있는 세상에 사는데 말이죠. 어쨌든 교회는 손해 보고 반대로 하면 틀림없는 것 같아요. 11년 전 노량진 고시촌 청년들 밥 먹일 때도 그랬어요. 교회 다니는 애만 먹이자. 그러지 말자. 이견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교회 다니고 안다니고 떠나서 그냥 다주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게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죠. 그 당시 청년부가 100명도채 안되는 시절이었는데 이렇게 청년부가 늘어났습니다. 저는 애들만 봐도 배불러요. 인생의 혹독한 시험 기간을 보낼 때 그런 기억을 가지고 어려운 시절을 경험하는게 아이들의 개인사적인 입장에서는 큰 체험이거든요. 저도 청년의 시절 그런 은혜의 경험이 없었다면 못 버텼죠.

또 기억을 더듬으면 19년간 교인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게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제일 좋은 병원 서울대병원 원장이름 아냐?" "스위스가 잘사는 나라인데 수상이름 아냐?" 모르거든요. 좋은 공동체는 리더가 안나타나야 합니다. 리더가 누구인지 몰라야 해요. 그저 공동체가 건강하면 좋은 공동체인 것입니다. 제왕적 리더십은 한국 사람들의 삐뚤어진 리더십이고, 비성경적인 리더십입니다. 기성교회가 자꾸 스타 목사를 구하러 다니고 찾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공동체의 뿌리 자체가 건강할 때 기형적인 열매가 안나오는 것이죠.”

-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좋은 목회자 나쁜 목회자의 구별 기준이 있다면.

“결국 목회자들의 책임 아니겠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교회 90프로 이상은 지도자 문제지. 평신도가 문제를 일으켜서 시끄러워진 적이 있나요.

먼저 목회자는 누구냐는 선제적 정의가 있어야 하겠지요. 목회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목회자의 일차적 책임은 천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거에요. 이게 좋은 목회자의 기준이라고 봐요. 왜 이런 논리를 펴냐하면 한국교회 문제의 모든 출발이 강단의 왜곡에서부터거든요. 실용주의, 효과, 비결 이런 식의 상황화된 복음. 거의 사이비에 가까운 이러한 복음 아닌 복음들이 복음이란 탈을 쓰고 외쳐지는거에요. 청중들은 그것을 쉽게 구별을 못해요. 일단 듣기 좋으면 은혜가 되는거에요. 그런 은혜가 오랜 세월 축적이 되면 신앙의 상당한 왜곡이 내면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음에도 피차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거에요.

▲ 좋은 목회자와 나쁜 목회자의 구별 기준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송태근 목사는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편의대로 왜곡하는게 아닌, 있는 그대로 바르게 전하느냐가 제일 첫 째 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베리타스

성경의 텍스트가 해석이 안되는 설교는 청중들이 우민화가 됩니다. 그 우민화는 신앙이란 이름으로 대형교회를 만들기에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얼마나 논리가 분명하고 확실해요. 좋은 목회자 나쁜 목회자의 제일 첫 번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가 안 전하는가. 저는 외과 의사론을 학생들 가르칠 때 자주 얘기합니다. 의사의 제일 중요한 책무가 무엇이냐? 친절하고 교양있고, 인격이 좋은 것이냐. 아니거든요. 그것은 성질이 고약하더라고 친절하지 않아도. 간호사들이 커버해 줄 수 있는 부분인데. 메스를 들고 수술실에 들어간 의사가 여기 째보고, 저기 째보고 아닌가봐 어디지. 그런식으로 엉뚱한 수술을 하면 환자를 죽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외과의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메스가 손에 들려지면 정확하게 환부에 들이대 찢어서 환부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그럴때야 좋은 의사인 것이죠. 잘생기고, 교양있고 친절한게 좋은 의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총신대 신대원생들 목회학 수업에서 강조하는 부분인데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과 씨름을 해야합니다. 이것이 좋은 목회자의 일차적 기준이 아닐까요.”

- 궤를 같이 하는 질문이다. 좋은 신앙과 나쁜 신앙의 구별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목회자들의 책임이 90프로 돼요. 좋은 신앙은 그 사람이 어떤 눈을 가졌느냐. 관점의 문제죠. 보통 우리는 기독교적 세계관. 세계관 문제라고 봐요. 보통 좋은 신앙, 나쁜 신앙을 형태적인 신앙의 행위에 기준을 맞추죠. 제가 대화를 하고 겪어 보니까 그 사람이 어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참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몇년전부터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 학교를 개설해서 지금 5학기째 하고 있는데 너무 방향이 좋아요. 강의로 끝나지 않고, 토론과 워크샾까지 이어진다. 삶의 현장과 내가 배운 성경이 어떻게 삶 속에 녹아들어가야 하는가. 우리는 보통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죠. 그런데 사실은 성경이 현장을 해석해 줘야 하거든요. 거꾸로. 세계관 학교가 그런 것을 문제화 하는 작업이죠. 좋은 신앙과 나쁜 신앙의 구별 기초는 형태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과 역사와 정치를 판단하는 세계관. 이것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 기독교적 세계관 얘기를 했는데 전형적인 보수교회 신앙인들의 사고에서 나타나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치건 종교건 제대로 된 보수가 있냐. 보수는 형태를 붙들고 유지하는게 보수가 아니거든요. 저는 우리나라 모든 차원에서 재고해 볼 때 정치도 그렇고, 신앙적인 문제도 그렇고, 제대로된 진보와 제대로된 보수가 없어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요. 성속의 원리는 사실 종교가 시작되면서 끊임없이 빚어져온 논란입니다. 한국교회가 지난 20년간 리더십 교체기에 들어오면서 격변기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그 끝자락에 와 있다고 봅니다. 의식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1세대가 퇴장하고 나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그랬을 때, 세 가지를 지적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도들의 이분법적 신앙의 사고였어요. 이게 중요한 토픽이었어요. 또 하나가 강단의 혼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분론의 개혁. 이 세 가지를 끄집어 냈죠. 그 중의 하나가 이분법적 사고인데. 결국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신앙을 선포하고 가르칠 때 형성시켰던 것이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봐요.

성경은 전 인류에 대한 책임을 말합니다. 전 역사에 대한 책임을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창조와 주권과 모든 섭리 운행이 포함된 얘기거든요. 그런 것을 세계관적 관점에서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제대로 가르쳤다면 직장은 세속적인 것이고, 교회당은 거룩한 곳이라는 담과 경계가 무너져야 되는 것이죠. 일터가 내 예배의 장소가 되고, 캠퍼스의 현장이 내 예배의 장소가 되어야 하고. 말 그대로 로마서 12장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행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들의 고민이 더 진지하게 얘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은 저 뿐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인데 그게 한국교회 안에 너무 뿌리깊이 박혀 있어서 쉽지 않아요. 목회를 한다는 것을 호흡을 좀 길게 해야 할 것 같아요.

- 교회 성장을 지상 과제라 여기는 교회들이 여전히 많다. 교회 성장제일주의 어떻게 보는가.

“다행스러운게 젊은 목회자들 가운데 상당히 의식있는 목회자들이 나오고 있어요. 작은교회를 해도 교회 본질을 붙들고 싸움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아요. 제가 선배로서 도와줘야 될 부분이기도 하고요. 도와준다는 것이 그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응원하고 격려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이제 목회를 자기 혼자만 잘났다고 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것은 목회자들이 소중하고, 건강한 가치를 공유하고 나눠주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교회가 커질 수도 있고, 여건상 커지지 않는 교회도 있을테고 그렇겠죠. 이제 크기 싸움으로 가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크다고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럼 작아야 선이냐. 말이 안되는 얘기죠. 크든 작든 하나님의 나라라는 우산 안에서 어떻게 함께할 것이냐. 이런 것을 놓고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 삼일교회의 내정된 담임목사로서 전임 전병욱 목사의 개척교회 준비가 거슬리지는 않는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일단 삼일교회에 내정된 담임목사로서 이 공동체를 어떻게 할 것이냐만 생각해도 벅차거든요. 거기에 신경쓸 겨를도 없어요. 또 기본적인 마음으로는 (전병욱 목사의 교회 개척을)축복을 하고 싶어요. 본인(전병욱 목사)도 영적으로, 이것은 사람이 제3자 입장에서 재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회복이 돼서 하나님이 그 분을 어떻게 사용할지 시간 속에서 지켜봐야겠죠. 사랑하는 후배이고 축복하고. 그렇다고 해서 삼일교회가 그 분 때문에 흔들린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의외로 삼일교회 청년들이 응집력이 있어요. 삼일교회라는 젊은 공동체를 굉장히 사랑하고, 사랑할 뿐 아니라 헌신까지 할 줄 아니까요.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겠는데 제가 신경을 안쓴다는 것은 그쪽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고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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