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과거 노예제를 옹호했던 영국교회를 돌아보며 현재의 한국교회를 생각해 보는 채영삼 교수(백석대)의 SNS 글이 큰 반향을 얻고 있다.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독교와 타인(他人)의 고통"이란 글을 올린 채영삼 교수는 18-19세기 영국이 어떻게 설탕(sugar) 산업으로 거대한 부를 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타리를 보고 늦은 저녁으로 먹은 밥이 얹힐 뻔 했다고 한다.

특히 채 교수는 다큐를 보다가 문득 18-19세기 당시 영국의 교회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는 다큐가 직접 당시의 영국교회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당시 노예선에 직간접으로 투자하고 참여한 귀족, 중산층은 리버풀과 같은 도시 전체를 움직일 만큼 방대했었고, 그렇다면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주일날 교회에 갔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를 돌아본 채 교수는 "18-19세기 도적질로 부를 쌓았던 기독교 국가 영국에, 윌버포스 같은 이라도 없었다면, 교회는 어쩔 뻔 했는가"라며 "지금도, 교회는 눈을 들어, 타인의 고통을 보고, 긍휼의 짐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채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기독교와 타인(他人)의 고통

늦은 저녁으로 먹은 밥이 얹힐 뻔 했다. 다큐멘타리인데, 18-19세기 영국이 어떻게 설탕(sugar) 산업으로 거대한 부를 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혹시 다소 일방적인 시각이었더라도, 당시 노예선의 참혹한 현실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당시 영국은 탄자니아에 집결된 노예를 팔아, 식민지 카리브해안에 만든 사탕수수 농장으로부터 설탕을 사서, 유럽에 파는 장사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노예는 ‘재산’이었으므로 보험을 들었고, 손상을 보전해주는 보험사와 은행이 노예산업과 함께 덩달아 부를 누렸다.

다큐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던 것은, 18-19세기 당시 영국의 교회였다. 다큐는 물론, 당시의 영국교회를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노예선에 직간접으로 투자하고 참여한 귀족, 중산층은 리버풀과 같은 도시 전체를 움직일 만큼 방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주일날 교회에 갔을 것이다. 예배 후에, 함께 모여 앉아 차도 마셨을 것이다. 거기에 축복받은 표시인 ‘각설탕’도 넣어 마셨으리라.

어떤 노예선에는 배 바닥에 500명의 노예들을 촘촘히 눕혀 놓았는데, 3-4달 동안 족쇄에 채워져 짐짝처럼 운반되었다. 어떤 경우는, 식량이 떨어지자 1백 여 명이 넘는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죽였고, 더 놀라운 것은 영국의 보험회사가 선주에게 이 ‘손실’을 보전해주었으며, 당시 법정은 선주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 더, 나는 그 당시의 영국 교회가 궁금했다. 아, 당시의 영국 땅의 교회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 수많은 영국의 부자들과 귀족들, 중산층 신자들이 주일 날, 멋지게 차려 입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 주일 날, 강단에 올랐던 설교자들은, 무엇이라고 가르쳤을까.

오늘 날도, 주일에는 교회에 앉아있고, 주중에는 사업장에서, 논밭에서, 공장에서, 계약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갈취하고 학대하고 욕하고 부려서, 큰 이득을 취하는 교인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날도, 주일에는 신실한 장로요 집사인데, 사회 속에서는 온갖 불의와 거짓으로 타인의 고통을 유발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교인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날도, 주일에는 버젓이 예배드리고 헌금 잘 내고 신실한 신자인데, 외국에 세워 놓은 공장에서는 사원들을 학대하고 갈취하는 악덕 기업주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18-19세기 그 참혹한 죄악을 저질러 부를 쌓았던 영국은 기독교 국가였다. 그들 가운데는 분명, '우리가 노예산업, 설탕무역으로 세계에서 이렇게 큰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라'고 주일마다 설교한 설교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윌리엄 윌버포스
윌리엄 윌버포스 ©wiki

하지만,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노예선을 타다 회심한, 존 뉴턴, 그리고 나중에 그에게 영향을 받은 윌버포스가 있었다. 윌버포스는 1759년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21살에 이미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가, 4년 후에 복음을 만나 회심하여 영국 기독교를 뒤흔든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진짜 기독교'를 회복하려 했다.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국회에서 피나게 싸웠고, 영국 사회의 도덕 회복을 위해 죽을 때까지 매진했다. 1833년 그가 죽을 때 즈음에 그의 평생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고, 영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주님은, 18-19세기 영국에서 자신의 형상인 노예들이 물건처럼 팔릴 때, 안타까이 찾으셨을 것이다. 내 교회여, 너희는 어디에 있는가. 누가 저 노예들을 위해,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아, 18-19세기 도적질로 부를 쌓았던 기독교 국가 영국에, 윌버포스 같은 이라도 없었다면, 교회는 어쩔 뻔 했는가.

복음이란, ‘타인의 고통’에 우는 것이다.
복음이란, ‘타인의 고통’에 흔들리는 것이다.
복음이란, '타인의 고통'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 고통이 내것이 되는 일이다.
주님도 그 때문에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곳,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와주시지 않았는가.

지금도, 교회는 눈을 들어,
타인의 고통을 보고, 긍휼의 짐을 져야 한다.

나는 진정, 우리는 진정,
복음에 깨어 있는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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