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망적인 환경과 장애를 극복하고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7년간 지냈던 강영우 박사 ⓒ미주기독일보DB)

한국의 장애인으로서는 첫 유학생, 첫 박사가 되었으며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백악관 직속기관인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까지 올랐던 강영우 박사(68)가 23일(현지시간) 소천했다.

지난해 10월 담석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추가 검진에서 췌장암이 발견돼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강 박사는 12월 말 자신이 췌장암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임을 전하며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미리 작별 인사를 하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 평생을 살아왔다. 나의 실명(失明)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상상조차 할수도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 내셨다"고 삶을 회고했다.

강영우 박사는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중학교 재학 중인 14세때 축구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고 아들이 맹인이 되었다는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불행은 어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마저 잃고 유족의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던 누나가 과로사한 것이다.

강 박사는 작별 편지에 "전쟁이 휩쓸고 가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두 눈도, 부모도, 누나도 잃은 고아가 지금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이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서울맹학고 고등부를 또래보다 5년 늦게 들어가 연세대 교육과에 입학해 문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고, 맹학교 학생 때 자원봉사자로 만난 아내와 결혼한 후 미국 피츠버그대로 한국 최초 정규 유학생으로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국제로터리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갈 수 있었던 강 박사는 3년6개월만에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철학 박사를 마쳐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으며 일리노이 대학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2002년부터는 조지 부시 대통령 임명으로 상원 인준을 거쳐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7년을 지내며 미국의 5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며 장애인의 권리 증진에 기여했다.

올 1월에는 국제로터리 재단 평화센터에 두 아들과 함께 평화장학금 25만달러(한화 약 2억9000만원)를 기부했다. 강 박사는 20만 달러, 아버지의 제안으로 두 아들은 각각 2만5천달러씩 쾌척했다. 장학금은 듀크대와 노스 캐롤라이나 설립된 로터리재단 평화센터 학생 학비로 사용된다. 

2006년에는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등의 미국 대통령, 록펠러,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 등과 함께 127인의 위인으로 선정되어 루스벨트 홍보센터 강당의 기념 의자에 기록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빛은 내 가슴에(기독교방송사), 강영우 박사의 성공적인 자녀 교육법(두란노 서원), 교육을 통한 성공의 비결,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석은옥 공저), 아버지와 아들의 꿈,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내 안의 성공을 찾아라(이상 생명의말씀사 간), 원동력, Today’s Challenges,
Tomorrow’s Glory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석은옥 여사가 있으며 첫째 아들 폴 강(진석)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안과전문의로, 둘째 아들 크리스토퍼 강(진영)은 듀크대 법률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해 8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임명됐다. 폴 씨는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안과의사로 뽑히기도 했다.

강영우 박사의 장례식는 다음달 4일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한인 중앙장로교회 추도예배 형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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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박사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