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이만석 선교사ㅣ한국이란인교회,4HIM대표,한장총이슬람선교훈련원장

무슬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성지순례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는 참사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금년(2015)에도 사우디 정부는 순례 중 769명이 깔려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AP통신사에서 성지순례에 참가했던 여러 나라에서 자국민 사망자들 발표한 숫자를 집계하니 1,399명이었다고 하여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AFP는 최소 1,535명의 새로운 사망자 수를 발표했고 AP통신은 무려 2,110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역시 각국에서 발표한 사망자 수를 합산한 것이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일까? 사우디 정부는 아직도 769명을 고수하고 있으나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에 의하면 사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우디 정부가 보내온 사진이 1100명이라고 하니 이미 확인된 숫자와 합치면 2천명이 넘었다고 해도 전혀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 2주 전 타워 크레인이 넘어져 압사된 사람 111명을 보태면 금년도 성지 순례와 관련된 사망자 수는 역사상 최대로 보인다.

사우디 정부는 순례객들이 안전요원들의 수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라고 해명하며 발뺌했지만 이란 정부는 사우디 정부의 관리 능력 부족을 맹비난하면서 성지순례를 이슬람국가들이 공동관리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성지 순례는 무슬림들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여섯 가지 의무(1:신앙고백, 2: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한 기도, 3:매년 한 달간 라마단 금식, 4:수입의 40분의 1의 구제헌금 자카트, 5:평생 한 번의 성지순례, 6: 알라를 위해 싸우는 지하드) 중의 하나이다. 성지순례는 이슬람에서 만든 제도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만들기 전부터 이교도들이 행해왔던 풍습이었다. 카아바 신전은 처음부터 알라(Allah)만의 신전이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의 각 종족들이 섬기던 360개 우상들의 집합소였다. 알라는 카아바 신전 안팎에 있었던 360개 우상들 중에 최고의 우상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그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알라의 세 딸들이 이름은 라트(Lat), 우짜(Uzza), 마나트(Manat)였다고 꾸란53장 19절~23절에 거론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무함마드는 알라가 세 딸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불러왔던 이름이라”고 시인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즉 무함마드와 동시대에 살던 사람들과 아라비아 반도에 살던 조상들은 알라에게 세 딸이 있었다고 믿어왔고 그렇게 불러 왔다는 것을 꾸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사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무슬림으로서 평생 한 번은 메카를 방문해야 한다는 율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성지 순례와 메카의 카아바 신전 자체를 신성시하는 이슬람의 문화가 시대에 따라서 점점 발전,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비천한 신분의 무슬림일지라도 사우디아라비아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만 하면 호칭이 바뀐다.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아무개 혹은 미스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지(Haji) 아무개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직자가 아닌 무슬림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경칭이다. 필자가 이란에 있을 때 시골 마을을 방문하던 중 검은 천으로 벽을 두른 집을 발견하고 저 집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최근에 메카의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 이는 그 동네의 경사라서 주민들을 초청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이란 뿐 아니라 중동에 다니다 보면 “하지아바드‘라는 마을 이름을 여러 군데서 발견하게 된다. 이는 성지순례(하지) 다녀온 사람이 사는 마을(아바드)이라는 의미다. 원래 그 동네 이름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 중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그 때부터 하지가 살고 있는 마을 즉 "하지아바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개인과 가문 뿐 아니라 마을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는 행사이기 때문에 무슬림이라면 모두가 사모하게 된다.

특히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은 누구나 본의 아니게 많은 실수와 범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슬람의 제2 경전으로 잘 알려진 부카리의 하디스에 의하면 무슬림이 성지순례를 하게 되면 방금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 2 Book 26 Number 256) 그러므로 특히 죽음을 앞 둔 노약자들이 성지순례를 선호하는 것은 평생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대량 압사 사고의 중요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병약한 노약자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무함마드가 메카를 본격적으로 이슬람 성지로 인정한 것은 주후 624년 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무함마드는 어려서부터 메카의 꾸라이시 족에서 성장했기에 자연스럽게 이교도들의 카아바 성지순례를 따라 하면서 자랐다.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알라(Allah)도 메카에 모셨던 360개 신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교도들의 풍습이었다. 무함마드가 메카 주변의 히라 동굴에서 주후610년 천사를 통해서 알라(Allah)신의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후에도 그가 메카에 머물렀던 12년 동안에는 이교도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의 신앙전통을 따라 카아바 신전을 순례했었다. 그런데 메카에서 이교도들의 핍박이 심해지자 622년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메디나(당시 야스립)로 이주한다. 이를 히즈라(Hijra)라고 하는데 이는 이슬람의 원년이며 이슬람 달력은 이 때 부터 시작된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자신도 같은 창조주의 선지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말하는 알라의 계시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과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그의 선지자 됨을 믿지 않고 그를 비웃으며 배척했다.(꾸란15:6) 성서를 가지고 있다면서 자신의 계시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악담과 저주가 꾸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약18개월 동안 유대인들과 같이 예루살렘 방향으로 기도하던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처음 맞는 해인 624년 초부터 기도의 방향을 메카로 다시 바꿔 버렸다. 이는 자신을 배척하는 유대인들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적으로 여기겠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예루살렘 쪽으로 기도하던 무함마드가 우상들의 도시 메카로 기도 방향을 바꾼 것을 본 무슬림들은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기도방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 계시를 빙자하여 꾸란에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가 꾸란에 언급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알라는 전능하시니까 바꿀 수 있다.(꾸란2:148) 둘째 알라는 동에도 계시고 서에도 계시니까 바꿔도 된다.(꾸란2:142) 셋째 진짜 중요한 이유는 너희가 정말 알라와 무함마드를 따르는 무슬림들인가 아니면 따르는 척하는 위선자들인가를 구분하기 위해서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꾸란2:143) 그래서 624년 초부터 지금까지 모든 무슬림들은 메카를 향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 당시 메카의 카아바 신전 안팎에는 360여개의 우상들이 있었다. 메카의 성지순례를 이교도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그대로 유지한 것은 이교도들이 이슬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이 성지순례를 처음부터 모든 무슬림들의 의무라 하지 않고 꾸란에 보면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성지 순례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넌지시 묵인했다.(꾸란2:158)

심지어 무함마드는 카아바 신전 동쪽 구석에 있는 검은 돌에 입을 맞추는 이교도들의 순례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는데 이 검은 돌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으로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여 순례하며 입을 맞추던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무함마드의 장인이자 이슬람의 두 번째 칼리프였던 우마르는 성지 순례 시 검은 돌을 향하여 “이 돌멩이야! 내가 알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나는 네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해를 끼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선지자 무함마드께서 네게 입을 맞추지 않으셨다면 나는 절대로 너를 만지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며 입을 맞추고는 “우리가 이교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라말(Ramal:카아바 신전을 돌 때 처음 세 바퀴를 빨리 걷는 의식)을 할 이유가 없다. 알라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파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Sahih Bukhari Volume 2, Book 26 Number 675)

이런 기록들을 볼 때 지금의 성지 순례는 유일신 종교를 자칭하는 이슬람 고유의 종교 의식도 아니고 무함마드가 새롭게 만든 의식도 아니며 오히려 이교도들과 우상숭배자들의 풍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메카 성지순례의 모든 행위들을 아브라함과 관련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있다.

거기에 속아서 신앙생활을 오래 한 기독교인들조차 이슬람을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칭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로서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바꿔주셨는데(창17:5) 꾸란의 아브라함은 아자르의 아들(꾸란6:74)로서 어려서부터 아브라함으로 불렸다.(꾸란21:60) 성경의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지금의 예루살렘)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던 사람이었으나 꾸란의 아브라함은 메카 부근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리려던 사람이었다.(꾸란37:102-106) 성경의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부근을 방문한 일도 없었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서 카아바 신전을 건축했다는 것이다.(꾸란2:127) 성경의 아브라함은 경전을 받은 일이 없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모세처럼 경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꾸란87:18)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교도들이 죽이려고 불속에 던졌는데 알라께서 건지셨다고 한다.(꾸란21:68-69) 심지어는 양 잡는 풍습도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던 일과 관련시켜 놓고 사탄에게 돌을 던지는 풍습도 아브라함과 관련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꾸라이시 종족이 섬기던 알라(Allah)신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믿게 하려고 예루살렘의 아브라함을 메카에 적용시킨 것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는 것은 성지순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마엘과 그의 모친 하갈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방황했던 언덕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해바다 남서쪽에 있는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창21:14)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젖먹이 이스마엘이 목말라 하자 하갈이 물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면서 헤매고 있는데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발꿈치 혹은 날개로 땅을 파니 샘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이를 잠잠(Zam zam)우물이라고 부르는데 카아바 신전 동쪽 20미터 지점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이를 거룩한 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창16:16) 그를 내쫓은 것은 이삭이 젖을 뗀 후이니(창21:8) 17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큰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에는 천사가 없던 우물을 새로 팠다는 기록이 없으며 “여호와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이미 있었던 샘이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창21:19)

성경의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살았으며 애굽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하는데(창21:21) 이슬람의 이스마엘은 메카 부근에 살았으며 주르훔 족의 아랍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마엘을 추방한 후 죽을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아브라함은 최소한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첫째 방문: 하갈 모자를 추방할 때 메카까지 데리고 와서 버리고 갔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둘째 방문: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릴 때 메카 부근에 와서 번제로 드렸다고 한다.(꾸란37:102-106) 셋째 방문: 카아바 신전을 지을 때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같이 지었다고 한다.(꾸란2:127) 넷째 방문: 이스마엘이 처음 결혼한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혼을 명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Hadith) 다섯째 방문: 아브라함의 명에 따라 이스마엘은 첫 번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랍 여인과 결혼을 했더니 아브라함이 다시 와서 그녀를 보고 만족해하면서 축복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Hadith) 아브라함이 성경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살았다면 직선거리로 1,000 Km도 넘는 거리를 10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다섯 번이나 왕래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자동차와 고속도로가 깔려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의 미움의 대상도 아니고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그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속아왔던 피해자들이다. 앞으로 무슬림 방문객들이 우리 주변에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잠시 다녀가는 관광객들에게는 좀 무리가 된다고 하지만 장기 체류자들은 그대로 돌려보내지 말고 복음을 듣고 갈 수 있도록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교회가 예산을 세워 적극적으로 전도해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 속아왔던 무슬림들에게, 죄 사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방문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얻는 것임을 알려야 할 것이다. 사막에 천사가 내려와서 기적을 일으켜 잠잠(Zam zam)이라는 새 우물을 파줘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눈을 떠서 보기만 하면 먹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무슬림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사는 유일한 상생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상기 글은 한국이란인교회 홈페이지(4him.or.kr)에 게재된 글을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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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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