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금천교회 이선규 목사] 벧엘로 올라가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누구며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을까요? 현재 야곱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야곱은 세겜땅에 있었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할 때에 나타나신 하 나님께 감사 하며 서원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세월이 끝나자 하나님과의 약 속을 새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과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그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주시고 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에게 있어 세겜은 어떤 곳입니까? (창34:1-7)

첫째, 세겜은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던 곳입니다.

사랑하는 딸 디나가 이방인에게 욕을 당하던 상처가 있는 곳입니다. 디나의 사건을 접하고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칼로 살해하고 노략하여 짐승들과 재물을 빼앗아 왔습니다. 정말 그들의 삶이 앞뒤를 분간하기 어두운 암흑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문제는 하나님을 잊은데 있었습니다.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삶의 환경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신앙을 외면하므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곱은 신앙을 잊어버리고 세겜에 속하여 세겜 사람들이 하는 대로 잘못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야곱에게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함께 살던 하란에서 떠나와서 산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원한 기도는 잊고 자손들과 식솔들이 이방신상을 섬기는 것으로 대치해 버렸고 드린다고 약속한 십일조는 드린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고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는 일은 세상일로 인하여 멀어져서 뒤로 미루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그 가정은 잘못 살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환란의 바람이 몰려온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한 일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갈 결단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 야곱을 사랑 하셔서 먼저 명령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아! 네가 네 형의 낯을 피하여가던 그때 괴로 왔던 그때에 버림받은 것 같은 너에게 내가 사다리를 펼쳐놓고 너와 대화했던 벧엘을 너는 잊었느냐? 너는 왜 잊어 버렸나? 너는 이제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야곱이 결단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깨달을 수 있도록 명령을 하신 것은 은혜를 받은 야곱이 불순종 하지 않고 벧엘과 멀어졌던 생활을 회복하기 위하여 온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가 제사를 드렸던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가을의 새 바람과 함께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우리 삶에 벧엘로 올라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기에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 명령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첫째 : 일어 나라입니다.

일어나라는 것은 행동하기 위한 첫 단계 조치입니다. 일어나지 않고 움 직 일수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고는 어떤 새로운 일도 기대 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의 변혁과 새로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머물러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자리에 언제까지 그대로 있으려느냐? 이제 일어나라! 는 것입니다.

서원한 것은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너는 벧엘에서 감격스럽게 서원했던 그것을 잊어버리고 언제까지 살려느냐? 너는 제단 쌓는 일을 미루어놓고 게으르게 살고 있는데 너희 식솔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대로 앉아만 있겠느냐?

지금 야곱이 일어나야 할 그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제단이 무너진 자리요. 은혜를 잊어버린 배은망덕의 자리입니다. 신본주의를 떠나 인본주의 삶의 자리요. 거룩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리가 아닌 세속에 물들어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곳은 머물러 있을 자리가 아닌 즉시 일어나야 할 자리였습니다. 신앙의 앉은뱅이들은 모두 일어나 뛰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 서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 입니다.
일어나야 할 때에 일어나야 합니다.

■ 둘째 :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벧엘은 하늘의 문이 열린 곳이요 하늘의 전입니다.

네가 살아야 할 땅은 지금 우상을 섬기는 여기가 아니고 거기 돌을 세워놓고 기름 부으며 기도하던 거기로 가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서 속에서 생을 바로산 사람들은 모두 올라간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성서 속에서 후회하고 잘못 살은 사람은 모두 내려간 사람들입니다. 올라간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들 이었고 내려간 사람들은 사탄에게 끌려간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풍년이든 땅을 찾아 애급으로 내려갔으나 하나님의 뜻은 묻지도 않고 내려갔다가 패가망신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오미가 모압땅으로 내려갔다가 마라의 쓴 고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줄 알고 내려갔으나 오히려 불행이 왔고 다 잃어버렸습니다. 존귀를 잃고 명예를 잃고 믿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내려가서는 안 되겠기에 일어나 올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벧엘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곳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곳입니다. 올라가는 곳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따릅니다. 내려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면 올라간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세상에서의 삶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으로 변화의 길 로 가 라 는 말이요 세상과 친숙했던 삶이 하나님과 친숙하기 위하여 새로운 발걸음으로 옮기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향락을 붙들고 살던 삶이 하나님을 붙드는 삶이요.

성령이 탄식하는 자리에 있던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로 옮기는 것입니다. 땅에 속했고 육에 속하여 살던 우리가 위에 속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욕된 삶의 옷을 벗고 부끄러운 삶의 모습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복된 자리 로 올라가야 합니다.

■ 셋째 : 제단을 쌓으라

제단을 쌓는 생활은 하나님과의 대신 관계에 있어서 속죄함을 받는 길입니다. 관계를 개선하고 회복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힘 있는 길입니다.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는 방법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리라”, “너희 자신을 정결케 하라”,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지시 합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말은 삶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요. 각오를 새롭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더럽고 부끄러운 옷을 입고 숨어 보았자 헛된 일입니다.

불신앙의 옷을 신앙의 옷으로 갈아입읍시다. 불충했던 옷을 충성스러운 옷으로 갈아입읍시다. 사탄을 따라 갈 때 입던 옷을 진리의 갑옷으로 갈아입읍시다.

무화과 입으로 만든 치마를 가리 우려고 했던 아담의 그 옷을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환난의 날에 응답의 체험을 얻은 곳입니다.(3)

야곱의 인생이 절박한 상황으로 내 몰리던 때에 야곱의 소원을 들어 주시던 체험이 있던 곳이요. 하나님께 서원했던 곳 하나님은 지금 그곳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살아온 야곱에게 하나님은 지난날에 헌신과 서원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벧엘은 야곱이 지난날 하나님과 깊은 영적 체험을 했던 곳입니다.

그러면 거기 올라가서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첫째: 거기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1절) 하나님의 위로와 응답이 있었던 그곳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신앙의 체험이 있던 그 곳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9-13)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명령과 복을 함께 약속 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약속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오늘날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겜은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벧엘로 올라가는 지혜로움이 ‘위기의 시대를 이기는 지혜로움’입니다.

<요한계시록 2:5>에서도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오랜 신앙생활 속에서 은혜에 대한 감격을 잃은 신앙으로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신앙은 날마다 솟구치는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깨뜨리고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지 못했던 것을 예배 생활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습니까?

지난날의 신앙적 잘못들을 깨닫고 우리도 야곱처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우리의 신분을 확 실히 하고 무너진 제단 생활에 힘쓰십시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임하실 것입니다. 의복을 바꾼다는 ‘하라프’는 갈아입다.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제단은 히브리어로 ‘미즈베하’라는 말로 희생을 뜻합니다. 제사 드리는데 희생 없이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생의 제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십시오. 단을 쌓고 무릎 꿇을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같이 일어나라 올라가라.

‘제단을 쌓으라 하신 쌓으라’하신 말씀 앞에 새롭게 일어나 벧엘의 신앙으로 회복하여 우리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 의 영광을 들어내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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