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물교회가 27일부터 29일까지 신년부흥회를 개최, 현영갑 목사가 3일간 특강했다.
  • ▲샘물교회의 올해 부흥회는 예년과 달리 학구적인 분위기로 진행됐다.

뉴욕샘물장로교회(담임 현영갑 목사)가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신년심령부흥회를 열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기독교인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도전적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모색했다.

현영갑 목사가 강사로 나선 이번 부흥회에서 현영갑 목사는 첫째 날 ‘나를 부수고 나오라’, 둘째 날 ‘믿음으로 극복하라’, 셋째 날 ‘상생만이 살 길이다’ 라는 제목으로 열강을 전했다.

기존의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부흥회의 형식을 벗어나 특강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부흥회에서 현영갑 목사는 직접 칠판에 핵심 내용을 필기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 해결책에 하나씩 접근해 갔다.

현영갑 목사는 부흥회에서 부의편중과 양극화 등의 현상으로 대변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세상의 이론은 한계가 있으며 기독교인은 오로지 하늘나라의 법도를 갖고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다음은 현영갑 목사가 전한 강연 내용.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의 보배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먼저 왜 이런 주제를 정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에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외에 주의가 있는가. 없다. 지금은 온 세상이 민주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30~40년 전만해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옳다고 싸웠지만 공산주의는 70년만에 무너지고 북한 하나만 남았다. 온 세상이 모두 민주주의가 됐고 세상은 민주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정말 그런가. 2008년 미국에 금융대란이 일어나면서 모든 경제학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말 우리 사회에 가장 좋은 정치 시스템인가 생각하게 됐다. 자본주의가 무너지게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실상을 보자 작년 한 해 미국에서 집을 잃은 사람이 250만 명이다. 홈리스는 900만 명이 생겼다. 9조원의 돈이 사라지게 됐다. 상위 1%의 부자가 전체 부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부의 편중 수치는 대공황 때와 비슷하다는 통계다.

민주주의 신봉하는 속에 자라난 자본주의가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어 줬는가. 실상은 저런 통계다. 앞으로 더 엄청난 문제에 당면할 것이다. 자본주의, 이 부의 정의가 녹아내리고 있다. 우리가 신봉한 세상 이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믿고 살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나는 홈리스가 되고 가족은 흩어지는 세상이 됐다. 과연 이 세상이 선이냐 정의인가 이 문제를 풀어 보자. 1년 동안 이것이 무슨 일인가 고민하고 연구했다. 학창시절 민주주의 가치를 두고 싸웠다.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런 민주주의도 최고가 아니라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고민끝에 성경에서 답을 얻게 됐다.

오늘날 세상은 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여러분은 아틀란타에 자주 갈 것이다. 그곳에는 노름장이 있는데 그곳이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창문이다. 두 번째는 시계 세 번째는 거울이다. 창문을 보고 세상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을 보면 비교하게 되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까 없앴다. 시계를 보면 아차 우리 가족이 기다리는구나 출근해야 하는구나 그러면서 돈을 못쓰게 되기에 없앴다. 거울을 보면 밤새 씻지 않고 초췌해진 모습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반쯤 남은 돈을 갖고 집으로 간다. 이 노름장 주인들은 진실인가. 사람들은 노름장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오게 된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로 시계가 없다. 또 마찬가지로 창문이 없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다. 모든 것을 쇼핑에 최적화 되게 했다. 엘리베이터 대신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지그재그로 다니며 그 안의 모든 물건을 사라는 것이다. 백화점이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는가. 여러분의 옷은 깨끗해 질 수 있지만 가진 돈을 다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은 여러분의 건강을 0.1%도 생각 않는다. 오로지 돈만 생각한다. 5초 30초 15분 맥도날드와 웬디가 만든 전법이다. 5초동안 주문하고 30초동안 음식이 나오고 15분만에 먹고 나가라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의 의자는 뒤로 기울어져 있지 않다. 지방에 몸이 망가지는 것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음악은 절대 클래식을 안튼다. 빠른 해비메탈을 튼다. 클래식을 틀면 음미하게 되고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없어서 빠른 음악을 틀어주게 된다. 세상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눈 뜨고 코베는 것이 세상이다. 백화점 맨 안쪽에 우유나 생활용품이 있다. 그것을 사러가다 다른 물건을 다 사게 된다. 그리고 계단대에 아이들이 보챌수 있는 것을 진열해 뒀다. 정신을 안 차리면 당하게 돼 있다.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해주지 않는다.

은행이란 곳은 어떤가. 은행은 철저히 돈이 돈을 먹는 곳이다. 은행에 돈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가. 아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서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오히려 가난하고 돈을 못 갚는 이들의 돈을 떼어서 은행에 돈을 쌓아둔 부자들에게 가져다 준다. 이런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어디든 함정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고민에 빠지게 돼 있다. 나는 아파트에서 적당히 사니까 난 상관없다고 할 것인가. 세상은 여러분을 좋은 세상으로 이끌지 않는다.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봐야 한다. 이런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왜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는가. 창세기 2장 16절 17절을 보자. 그리고 창세기 3장 1절~5절을 보자. 분명히 하나님은 동산 안의 과실 중 하나만 못먹게 했다. 그런데 사탄은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느냐면서 반대로 말하며 유혹한다. 사람이 거짓에 물들게 되면 하나님이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게 된다. 사탄의 거짓말에 빠지게 된다. 하와와 뱀의 대화에서 인류의 최초의 거짓말이 나온다. 4가지 거짓말이 있다.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는 너희 눈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 네 번째는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네 가지 거짓말을 잘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죽지 않는다고 했으므로 사람들은 이 사탄의 말을 곧이 듣고 그 다음 뭘 찾게 되는가. 죽지 않는 불로영생의 불로초를 찾게 된다. 인류 사회에 이런 거짓말이 들어온다. 정녕 죽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을 찾아 다닌다. 불로영생술이 들어오는데 이것이 신비주의다. 영생교 같은 사이비가 나오는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도 점괘를 보는 사람이 있다. 창세기 4장 25절을 보자. 에노스라는 말은 너는 죽는다는 뜻이고 그 때 비로소 사람이 하나님을 찾게 됐다. 사람은 내가 에노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무한존재를 바라보게 돼 있다. 사람은 에노스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두 번째,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경험주의가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과학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저는 길을 동물적 감각으로 찾아내는데 GPS를 갖고 있으니 몇 번 같은 곳을 가도 어떻게 갔다 왔는지 기억이 없다. 과학이 영원히 사람을 살려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과학은 사람을 편하게 할지라도 인성은 점점 죽이게 된다.

세 번째, 사람이 선과 악을 알게 되면 도덕주의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고 자기 자신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가시만 생각하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눈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네 번 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는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성경은 하나의 길 만을 말한다. 이 길 밖에 없다. 그러나 다원주의는 다른 길을 말한다. 돌아가는 길도 말한다. 이 세상은 사탄의 거짓말에 의해서 온 세상이 거짓에 물들게 한다.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 세상이 바른 길로 인도해준다고 생각하지 말라.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믿었더니 오히려 그것이 나를 가난으로 내몰게 하는 세상이 됐다. 그럼에도 세상은 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믿는데 바로 봐야 한다. 세상은 진실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길이 있다면 오시지 않았고 진리가 있다면 오시지 않았고 생명이 있다면 오시지 않았다. 거짓의 아비에게 속아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오신 것이다. 분명히 세상은 우리를 진실로 인도하지 않는다.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봐야 옳고 그름을 깨달을 수 있다.

오늘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오늘날 세상을 난세라고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난세라면 오늘날 우리가 영웅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믿음으로 안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세상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세상은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창세기 28장을 읽은 이유가 있다. 그곳의 주인공은 야곱이다. 이 야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족장의 시대였고 나라의 국경선도 없고 법도 없다. 힘센 사람이 이기는 시대였다. 야곱은 쌍둥이였다.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하나님의 축복권이 장자에게 내려가는 것인데 이것을 얻고자 늦게 났지만 먼저 나오기 위해 발꿈치를 잡았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장자에 대한 고민을 갖고 사는가. 여러분은 고민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다. 오늘 고민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어떤 철학자는 나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끊임없이 고민했던 야곱의 인생이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와 자기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뺏었다. 그런 사람이 길을 하란으로 떠나는데 원래 자기 어머니가 살던 밧단아람으로 떠난다. 야곱은 불확실한 시대 누구도 보호해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 상태에서 길을 떠났다. 홀홀단신으로 길을 떠난다. 약 800킬로를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루스라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됐다. 꿈 속에서 환상을 보는데 사닥다리를 통해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됐다. 야곱은 깜짝 놀랐고 끊임없이 장자권을 위해 노력했던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끊임없이 장자에 대한 축복권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하나님이 드디어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야곱의 고백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복받는 것만 생각했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기복신앙을 갖고 있다. 야곱이 첫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완전히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민했었기 때문이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고민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다. 아이폰을 하나 팔면 이익금이 37% 남는다고 한다. 보통 제조업은 8~10% 순이익을 남기면 성공했다고 한다. 스티븐 잡스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대학 중퇴자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대학을 차마 다닐 수 없었다. 그가 했던 연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의 인생을 알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구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인물이다. 여러분은 보민하면서 살고 있는가. 사람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희망인 줄 알고 살아가는가. 내 인생이 그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임을 알고 살아가는가. 또 하나는 보국이다.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천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궁즉통이라고 했다. 배가 고파야 통한다는 것이다. 궁즉변, 변즉통, 궁즉통이다. 야곱은 궁즉통의 상황이다. 최고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야곱과 같이 절박해봐야 한다. 밧단아람으로 가면서 어느 순간 짐승이 와서 잡아 먹을지 도적이 나타나 재산과 목숨을 빼앗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여러분은 삶 속에서 절박함을 만났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또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얼마나 투자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팔꽃은 밤이 지나 아침에 꽃이 피는데 계속 빛 가운데 있으면 꽃이 피지 않는다. 장미의 원산지 불가리아다. 장미오일이 향기가 가장 많이 날 때가 장미향이 가장 진하게 날 때가 새벽5시다. 캄캄할 때 또 가장 날씨가 추울 때 장미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낸다. 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편하다. 혹은 안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나는 어두운 밤을 갈 것이다. 어려운 길이지만 지나갈 것이라는 절박감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것인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가장 추울 때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장미꽃과 같아야 한다. 맹자는 안락에 빠지면 죽게 되고 지금 겪는 환란이 나를 살린다고 했다. 메기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활어를 먼 거리에서 공수해올 때마다 죽어 메기를 넣었더니 메기로부터 살기 위해 활발하게 헤엄치면서 오히려 활어들이 다 살게 됐다. 어려운 환란을 겪게 되면 우리는 살아난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 십자가 고통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다. 십자가의 고통이 없다면 부활의 찬란한 아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히브리라는 말이 유프라테스강을 건넌 사람이라는 말이다. 하란으로부터 가나안땅으로 온 사람들을 히브리라고 한다. 야곱이 자기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그의 어머니의 보호 아래 계속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떠났다. 떠나는 인생이 돼야 한다. 자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 그는 정말 히브리 사람이 됐다. 여러분은 어디를 떠난 사람들인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거룩한 땅으로 왔다. 우리는 인생의 요단강을 건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히브리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돌아가면 히브리인이 아니다. 우리가 떠나 왔다면 가나안 땅에서 살도록 해야지 왜 자꾸 돌아가려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고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들이다. 야곱처럼 떠나기 바란다. 목계지덕, 나를 부셔야 진짜 내가 된다는 말이다. 나무로 만든 닭과 같은 모습이 아니면 강한 싸움 닭이 될 수 없다.

나를 부수고 나와야 한다. 우리 신앙도 유프라테스강을 건넌 히브리 사람이라면 과거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 일본의 JAL항공은 가장 잘 나가던 항공사인데 얼마 전 부도가 났다. 일본 최고의 대학 동경대 졸업생들이 그곳으로 갔는데 내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자기 것만 옳다고 생각하다가 세상 변화의 추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 ANA항공사도 망해가고 있다. JAL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ANA로 간 것이 이유다. 스티브 잡스는 연설에서 바보가 돼야 한다고 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그가 나와서 배울 수 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을 때 배울 수 있다. ‘가시나무새’라는 노래가 있다. 예수님을 내 속에 들어오게 하려면 나를 부수고 나를 깨야 한다. 예수님은 내게 나와 배우라고 하셨다.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런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야곱과 같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정말로 던졌는가.

후라이 계란과 병아리 계란이 있다. 내가 내 자신을 깨버리고 나오면 생명이 있는 병아리가 된다. 그러나 누군가 깬다면 죽은 후라이가 될 뿐이다. 세상이 정의라고 진실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이 히브리인이라고 칭해 주셨음에도 강을 다시 건너려고 하는 모습은 없는가 살펴야 한다. 떠난 곳을 되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등고거제라고 했다. 높은 곳을 올라온 사다리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타고 온 배를 불살라야 한다. 밥을 해 먹는 솥을 깨야 한다. 우리가 오늘도 끊임없이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닌가.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 야곱은 배게했던 돌을 세우고 서원하는데 어제까지도 하나님을 몰랐던 이가 당장 하나님께 서원한다. 여러분이 믿음생활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교회 나갈 때는 믿음을 문 앞에 다 쌓아두고 나가서 믿음없는 사는 모습은 아닌가. 오늘 야곱처럼 하나님과 1:1로 만나는 담대한 신앙이 돼야 한다. 반드시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라고 1:1의 관계를 맺으시기 바란다. 과거엔 리브가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이젠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돌배게 했던 돌에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전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집이 내 속에 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전이 돼야 한다. 그리고 1/10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했다. 이 세가지가 우리 신앙의 기본이고 틀이다.

신앙의 기본 틀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는 하나님의 전이 돼야 한다. 세 번째 십일조다. 이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이것이 하나라도 없으면 신앙이 무너진다. 이 셋 중에 하나라도 무너지면 우리 신앙은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이 벧엘의 신앙이라고 한다. 벧엘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세상은 자신이 진실인 줄 알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보게 됐다. 이제 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는데 그렇다면 이제 벧엘의 신앙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오늘 우리는 이 벧엘의 신앙을 깨닫고 과연 어떤 신앙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이 신앙의 기본 모델이자 틀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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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샘물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