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선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평통기연 고문)

[기독일보=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필자는 그녀를 1988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났다. 6.25 한국전쟁을 겪은 지 실로 38년 만에 남한의 NCC 에큐메니칼 기독교 대표들과 북조선의 그리스도교도연맹 대표들이 두 번째로 모이는 자리였다. 그녀는 북조선 대표들의 영어 통역관으로 이 모임에 왔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북조선 여성은 남한 대표들과 WCC 여러 나라 교회 대표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의 영어 실력은 북조선 교회 대표가 미리 준비한 우리 말 강연을 따라 영어로 옮기는 정도가 전부였다. 회의에서 오고 가는 대화를 영어와 우리말로 통역할 만한 실력은 부족했다. 가끔 통역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고, "교수님, 좀 도와주세요." 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가까워졌다.

회의를 마치고 남북 교회 대표들이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북조선 대표들의 인사말 시간이 있었다. 그녀는 회의 중에 통역을 맡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저는 서울에 가서 영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이화여자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가 제네바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남북 교회 대표들이 하는 성경이야기나 신학적인 어려운 말들을 통역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제네바에서 평양으로 돌아 간 그녀는 북조선의 유일한 개신교회인 봉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있고, 집사가 되었다는 소식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1995년엔가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미국의 한인기독학자회의에서 주최하는 남북 기독교 지성인들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회의에 북조선 대표로 그녀가 왔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났다. 환영 만찬 석상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그동안의 소식을 나누면서 재회의 회포를 풀었다. 제네바에서 평양으로 돌아 간 이후, 기독교인이 된 이야기며,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주고 싶은데 어디 가서 무슨 선물을 사는 게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다 주었을 테니 경험을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없이 "레고"라는 장난감을 소개했다. 어느 백화점에 가도 쉽게 살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나는 그녀가 자기 아이를 위해서 "레고"를 사가지고 평양에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내 주머니에서 남은 100불이라도 주면서 "이 돈이면 레고 한 통은 살 수 있으니 받아서 쓰라"고 하지 못한 게 아직도 한스럽다. 우리나라 반공법에 저촉되지 않나 싶어 감히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2004년에는 내가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봉수교회 일요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해서 봉수교회 앞들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준비한 선물 봇다리를 들려 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군대에 갔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자기는 서울에 와서 공부할 기회를 영영 놓친 게 아니냐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는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헤어졌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분단 70년, 우리는 평양에서나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난 주 2012년 5.24조치로 중단된 민간단체의 대 북조선 인도적 지원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들었다. 4월 28일 경의선 육로로 비료 15톤 등 지원물자를 싣고 황해도 사리원 지역에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도 이달이나 다음 달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꽉 막힌 남북교류가 정부 차원과 민간 차원에서 다시 열릴 수 있을까 싶다. 미국이 일본을 무장시켜 앞장 세워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한다고 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하는 이른바 '공동방위협력지침'에 미국과 일본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워싱턴에서 들려온다.

우리는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의 악몽을 다시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다. 그 역사적 악몽이 21세기에 다시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속수무책, 무섭고 답답하다. 그래서 남한의 우리만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의 평화와 안녕을 생각하게 된다. 이름 밝히기를 삼가야 하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과 봉수교회 교인들, 나를 눈물로 환영해 주고 눈물로 평화와 통일을 기도하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우리는 다시 만나야한다. 제네바에서, 북경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평양과 서울에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자주 많이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치되고, 휴전선을 뜷고 개통되는 경의선을 타고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서울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내가 그녀를 환영하게 되는 꿈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글ㅣ서광선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평통기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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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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