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다문화를 이루고 있는 크릭사이드 교회에서 교직원들이 매달 모이는 세미나 모임 때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팀을 이루고 교회의 현 팀 구성원들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자체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평가를 위한 자료는 저자 페트릭 렌시오니(Patrick Lencioni)가 쓴 "한 팀의 다섯 가지 불기능(The Five Dysfunctions of a Team)"이었다. 거기에 보면 다섯 가지의 불기능은 1) 신뢰의 부재, 2) 갈등의 두려움, 3)위임의 부족, 4) 책임의 회피, 5) 결과의 무시로 구분이 되어 있다. 하나의 조직체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다섯 가지의 불기능들은 팀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된다. 이것을 하나로 함축해 본다면 좋은 팀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의 팀이 전문화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신뢰해야 한다. 그 이유는 팀의 구성원들 각자의 능력만 가지고는 팀의 능력을 원만하게 발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도서 4:9-12절을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것을 사람들은 각자가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두 가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첫째로 연합하는 자는 수고에 대한 상을 얻는다. 이것은 연합의 아름다움에서 주어진 하나의 결과이며 곧 선을 말하는 것이다. 삽포의 말에 의하면 "아름다운 것은 선하고 선한 자는 곧 아름다워진다." 이 말은 사람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한 것이다. 시편133:1절을 보면 사람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형제의 연합은 시대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공동체에 주어져야 하는 필수적인 요인이다. 연합이 되는 공동체는 건강한 팀웍이 이루어지기에 각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쁨으로 주어진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 이와 반면에 어느 공동체나 완벽하지 아니하기에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팀은 항상 각자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나누어야 하며 공동체가 단절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12 부족을 하나로 통일을 시킨 하나님이 원하시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번째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정을 원활하게 다스리지 못하는 불행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으로 이스라엘의 군대 장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것을 숨기고 그 사실을 덮기 위해 우리아를 맹렬한 전투에 참가하게 하여 죽게 한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쿠테타로 인해 그를 피해 눈물로 도망자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압살롬이 죽고 다윗은 다시 이스라엘 왕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미치는데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북은 이스라엘, 남은 유다로 분열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분열이 되는 배경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분열은 곧 갈등의 결과이다. 그것들은 미움, 증오, 분노, 죽음과 분리와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수 없이 경험한 다윗왕은 시온성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올라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과정에서 형제의 연합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해 노래한다. 그리고 그 연합을 이루시는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누구이신지를 알린다. "헬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여기서 말하는 헬몬산은 높은 산들이며 높은 산들에 내리는 이슬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고 시냇물들이 모여 강물을 이루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이루시는 분은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곧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데 그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사람을 하나로 연합하게 하시는 주체이시기도 하시고 영원한 생명체를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단절을 회복시키신 중간자이시다.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맛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4:12) 두 사람 이상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분열되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두 번째로 "사랑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공동체 가운데 주님이 존재되어야 만이 민족, 언어와 문화를 초월할 수 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데는 항상 어려움이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전(challenging)이 주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랜동안 기다림(patient)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다림은 인간의 혼자의 힘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팀으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팀의 구성원들 가운데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야 한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아는 방법의 하나는 기름부음이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시편133:2) 기름의 냄새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구약에서 말하는 제사장에게 부어진 기름 냄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거룩하고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도들 간에 하나님이 임재 하는 그리스도의 향내가 나타나야 한다. 가정의 공동체도 이러한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이 존재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은 완전한 생명체이시고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생명이신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의 연합과 가정이 하나 되는 공동체을 이루는데 있어서 분명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죄인된 인간의 세계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의 피로 죄인들의 죄 값을 지불하셨다. 이것을 하신 하나님의 목적하심은 예수님을 통해 죄인이 하나님과 형제가 형제와 화해하고 연합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며 그의 사랑은 진실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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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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