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5:39-47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일찍이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언약 밖의 사람들이라도 돌보시나이다.
한 때 영생의 사귐으로 기뻐하던 이가 공동체를 떠나가는 아픔이 저를 짓누릅니다.
주께서 그를 돌보심을 믿나이다.
이 새벽 광야의 외로운 자가 주를 앙모하오니, 불쌍히 여기사 구원해주소서.
마르고 황폐한 심령이 주를 갈망하오니, 주의 성소로 이끄소서.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 가오니, 이는 팔레시아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비참한 자, 아들을 인하여 용납하시오니, 무엇을 더 원하며 더 바라리이까?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 내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오니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대적자 유대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 자신의 관계를 밝히 보이신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주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생명의 관계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에게 자기의 본질을 계시하시고 자기의 행위를 다 맡기셨다.
아들은 아버지 품에 거하여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그대로 행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기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며, 자기를 믿지 않는 자에게 심판을 집행하는 것이다.

영생을 얻은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마지막 날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
영생이 없는 자는 이미 심판에 이르렀으며 마지막 날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이 모든 일은 아들 자신의 뜻이 아닌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임을 증거하는가?

그에 대해 세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세례 요한의 증거이며, 둘째 보내신 이 아버지의 역사를 완전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 구약성경의 증거이다.

예수께서 대적자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39절).
이 성경은 나를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생명(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지 않는다(40절).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받지 않는다(41절).
너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내가 알고 있다(42절).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는 나를 영접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그를 영접할 것이다(43절).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절).
내가 아버지께 너희를 고소하리라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소망을 두고 있는 모세이다(45절).
너희가 모세를 믿었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기록한 것이 내게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46절).
그러나 너희가 모세의 글을 믿지 않았거든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47절).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연구하되 이 성경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알고 있다.
여기서 '연구하다'(헬, 에레우난)는 랍비들에 의한 성서연구과 주석을 뜻하는 전문용어이다.
그리고 이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목적이고 이를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그 자체로 완전하거나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은 세례요한이 완성한 '율법과 선지자'로서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이 점에서 구약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오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불신앙의 사람들로 규정된다.
더구나 이들은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죽이려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알지 못하면, 결국 성경으로 말미암아 파괴적인 삶에 도달하게 된다.
"성경에 대한 그들의 '연구'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의 말에 귀머거리가 되게 하였다"(Bultmann).

구약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수건이 벗겨진다(고후 3:14).
즉 바울의 경우처럼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어야 비로소 구약성경이 조명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예수를 조명해 준다기 보다는 예수가 구약성경을 조명해준다'(찰스 바레트).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성경 자체의 연구에만 몰두한 채 그 성경이 지시하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그래서 영생을 알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람의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들의 인정이나 찬사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단호히 그들의 불신앙을 드러낸다.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는 주님께서는 그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들은 서로 영광을 구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참 신앙은 영생을 얻게 한다(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이처럼 참된 신앙은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것이다(17:24).
그는 더 이상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도리어 빛 가운데에서 비참한 존재로 드러나 아들과 함께 아버지 안에 감추어지게 된다(골 3:3).

그러나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성경을 알고도(?) 불신앙의 길에 서 있다.
그들에게 성경은 종교성을 만족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며, 결국 패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체계에 갇히게 된다.

그들을 고소할 자가 있는데, 그는 그들이 소망하는 모세이다.
모세가 그들을 고소하는 것은 그들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계명) 자체를 목적하기 때문이다.
곧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최종적인 종교체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가 율법을 준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목적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는 바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행 3:22-24).

그러므로 그들이 모세를 바로 믿었다면 아들을 믿었을 것이다.
곧 모세가 지시하는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몰이해하여 결국 아들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모세와 그가 기록한 성경을 가지고도 결국 불신앙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구약성경은 원시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로 구성된 하나님의 구원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아들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딛 1:2).
구원사로서 구약성경은 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인 아담에 대한 증거이며, 창세기 3장은 죄를 범한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과 가죽옷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다.
창세기 4~말라기까지의 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아들에 대한 증거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

바울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된 아들을 계시로 깨달은 것을 '나의 복음'이라고 하였다.
이 복음은 창세전부터 감추어졌다 나타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이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 있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알게 하였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그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한편 선지자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것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신약시대 사도들을 위한 것이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2).

신약시대 사도들은 구약성경을 근거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즉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속의 사건을 성경을 근거로 증거하여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 것이다.
이 영생은 하나님과 그 아들과 더불어 사귐으로써 현재에 선취되면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완성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구약성경뿐 아니라 신약성경이 주어져 있다.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된 그리스도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원의 확증까지 증거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성경연구 자체에 머물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삶에 이르지 못한다면 불신앙의 길로 가고 만다.

성경말씀이 풍성한 한국교회 안에 과연 참된 신앙이 있을까?
진실로 진실로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이며, 그는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이다(6:47, 54).
아들의 살을 먹고 아들의 피를 마시는 자는 아들의 죽음 안에 거하는 자이다(6:56).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그 안에 있는 자이다.
그는 아들의 생명과 함께 아버지 안에 감추어져 더 이상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이 있는 곳에 그와 함께 있어 창세전 아버지가 그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자이다(17:24).

그런데 과연 이렇게 영생을 알고 누리는 신자가 몇이나 될까?
많은 이들이 성경을 안다고 하나 영원한 생명의 실제가 없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끼리 영광을 주고받는다.
심지어 목회자들은 사람의 영광을 버리지 못해 신자들의 불신앙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결국 신자들의 마음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그들의 마음 안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있을 뿐이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롬 2:28-29).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다.
아들의 구속의 사건에 연합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 그가 진실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4. 나의 묵상
말씀묵상을 할 때마다 놀람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땅에 성경공부, 성경연구, 설교, 신학교가 넘쳐나지만 영생의 실재는 희귀하다.
아, 어찌할꼬! 생명 없는 기독교는 강고한 종교체제가 되어 영혼들을 가두고 있다.
성경을 알고도 패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종교에 매몰되어 있다.
세속화로 치달으며 사람끼리 영광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 영생에 무지한 교회의 끔찍한 현실이다.

나는 어떠했는가?
한 달에 성경을 일독하며 수백구절을 암송하였다.
한 때 성경박사, 걸어 다니는 성경사전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성경이 증거하는 영생에 무지하였고 영생을 누리지도 못하였다.

어찌 내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겠는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했으나 실상은 탐심에 가득찬 자였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세상을 사랑하던 자였다.

또한 서로 서로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였다.
인간적인 말로 값싼 위로를 하고 사람의 찬사를 받는 자였다.
저들의 불신앙을 드러낼 수 있는 진리, 나는 거기에 무지하였다.

내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정당하였다.
말씀 앞에 가보니 주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운 것임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생명 없이 얻고 행한 모든 것들이 홍수에 휩쓸려 갔다.
홍수심판으로 참담하게 변한 그 자리에 무지개가 떴고 언약이 주어졌다.

심판의 자리, 티끌과 재에 누운 자에게 창세전 약속된 영생이 주어졌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무덤에 성전이 지어져, 날마다 하나님과 사귐이 시작되었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과 그 아들과의 교제이다.

오늘도 한국교회를 보며 애통해한다. 수많은 신자들을 보며 탄식한다.
설교, 성경공부가 넘쳐나지만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 가슴아파한다.
결국 불신앙의 자리에서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일들만이 편만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 신음한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백성들, 이들의 눈을 밝혀주소서.

5. 묵상 기도
아버지...
성경을 안다했으나 무지한 자였습니다.
영생에 무지하여 그리스도와 교회를 박해하는 자였습니다.
은밀하게 세상을 사랑하며, 드러내놓고 사람의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성경을 알고도 불신앙의 자리에서 유리방황하는 자였습니다.
그런 자에게 임한 당신의 심판은 진실로 참되고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심판 중에 긍휼을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나이다.
홍수로 휩쓸어간 자리, 티끌과 재 가운데 누운 자리는 아들의 무덤이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셨습니다.
비로소 성경에서 영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영생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
이 땅의 교회와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소서.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를 듣고 묵상을 하지만 영생을 알지 못합니다.
성경을 가지고도 불신앙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주여, 탄식과 신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어찌하오리이까!
다만 긍휼을 구하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보내사 당신을 알게 하소서.
성경을 통해 영생의 진리를 알고 누리게 하소서. 주여, 도우소서. 속히 구원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말씀묵상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