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5:30-38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죄의 세력은 십자가에 무장해제되고 무력해졌습니다.
그러나 나를 속이고 죽을 몸을 지배하여 몸의 사욕을 따르게 합니다.
허탄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자로 전락시키려고 합니다.
주여!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하소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가오니 불쌍히 여기사 받아주소서.
아들의 의로 말미암아 회복된 언약, 내 몸을 쳐 복종시켜 당신께 나아감으로써 지키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는 자기를 박해하고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 자신의 관계를 밝히신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거하여 아버지가 행하시는 일을 그대로 행한다.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여 의존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본질의 계시)
아들을 통해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거절하는 자에게 심판을 집행하신다.
아들이 영생을 주는 것도(12:50), 아들이 심판을 행하시는 것도 아버지께 들은 대로 하는 것이다(30절)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이 없고 이미 심판을 받았다(3:18).
그는 악을 행하는 자로서 마지막 날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29절).
물론 이 심판은 아들 스스로 행하지 않는다.
그가 아버지께 들은 대로, 곧 보내신 이의 뜻대로 심판하시며 따라서 그의 심판은 참되다(30절).

예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 자신의 일을 증거하면 그 증거는 참되지 못하다(31절).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그의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나는 안다(32절).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요한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다(33절).
나는 사람의 증거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는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한다(34절).
요한은 타올라 빛나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잠시 동안 그의 빛 가운데 즐기려 하였다(35절).

그러나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완성하라고 주신 일,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다.
이 일이 바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증거이다(36절).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고 계시다.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은 일이 없고 그의 모습을 본 일도 없다(37절).
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38절).

예수께서는 스스로 자기를 증거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그가 정한 방식으로 아들 자신을 증거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세례 요한의 증거이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가 누구인지 증거하게 하였다(1:19).
그 때 요한은 '진리'에 대해 증거하였다. 요한의 증거는 참이며 곧 아들에 대한 증거였다.
그래서 그것은 구원에 이르게 한다.
유대인들이 사람을 요한에게 보낸 것은 그로 인해 열광적인 종교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한이 증거한 아들에 무지한 채 요한의 빛에 즐거이 머물기를 원한 것이다.

둘째 세례요한보다 더 큰 증거가 있다.
그것은 아들이 보내신 이의 역사를 완전하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여러 가지 표적으로 나타나며 궁극적으로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다(20:31).
유대인들은 그 증거를 눈으로 보면서도 아들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말씀이 그들 속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는다.
아들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아들을 보내신 이를 믿을 때 영생을 얻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셋째 증거는 그들에게 주어진 성경(구약성경)이다(39절).
구약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을 목적하며 그 생명을 주시는 아들을 증거한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들에게 나오지 않는다(40절).

이 세 가지 증거는 모두 참된 증거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2차적인 권위밖에 지나지 않는 파생된 증거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증거들이 제시하는 아들을 믿고 보내신 이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의 비극은 이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증거들로만 만족하고 증거의 내용에는 진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증거가 증언하는 예수께 나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이것이 증거의 목적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수에 대한 증거가 넘쳐난다.
그 증거들은 성경에 근거하며 기독교 전통과 역사에 근거하며 실로 풍성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주시는 궁극적인 선물, 영원한 생명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들 속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 한시적인 요한의 빛에 머물기를 즐거워한다.
결국 지나가고 마는 종교적 활동, 사역, 은사, 체험들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한다.
하나님의 완전한 증거는 신자가 영생을 알고 날마다 생명의 말씀 안에 머무는 것에 있다.

4. 나의 묵상
나는 다수의 한국인처럼 종교성이 강렬한 자였다.
처음 교회를 다니면서는 순응하는 학생처럼 성실하였다.
교회의 요구를 그대로 따랐고 성경공부도 충실하게 하였다.
성경공부에 빠지지 않은 것은 사실 은혜를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완벽주의 성격으로 인해서였다.

성가대 봉사도 그러하였다. 교회 성도들은 그런 외적인 모습만 보고 나를 인정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성가대 총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명예(?)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였으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낙심과 회의 가운데 있을 때에 여러 가지 신앙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방언, 병고침등 각종 은사를 받고 갑자기 뜨거운(?) 신앙으로 돌변하였다.
지식신앙이 체험신앙으로 바뀌었고 고양된 감정으로 교회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신대원에 들어갔다.
이후로는 복음에 붙잡혀 사는 자를 자임하면서 그 일에 전심을 다하였다.
전도사 시절 성경도 부지런히 연구하여 십여권의 성경공부 책도 만들었다.
담임목회를 하면서 열심히 예수를 증거하였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기관에서 헌신하였다.
그것도 부족하여 내적치유 기관에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었다.

내게 예수의 증거는 참으로 풍성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죽어서 가는 천국정도로 아는 관념적인 지식에 그쳤다.

아, 유대인들의 비극이 나의 비극이었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요한의 빛에 즐거이 머문 자였다.
한 때 지나가고 마는 목회방식, 종교적 열광을 추종하는 자였다.
야곱의 우물에서 다시 목마르고 마는 물을 계속해서 마시는 자였다.

영생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24절).
그러나 영생이 부재한 자는 반드시 심판에 이른다. 이것이 진리이다.
내게 진리대로 심판이 임했다. 심판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내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셨고 나는 악을 행하였으나 주는 진실하게 행하셨다(느 9:33).
그 앞에서 나는 심판을 받아들였다. "주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도다"(계 16:7).

아, 그런데 주의 은혜는 기이하고 놀랍고 형언할 수 없다.
심판 중에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그의 인자와 긍휼하심으로 진멸되지 않았다.
도리어 아들의 죽음과 무덤에 연합되어 영원한 생명을 사는 자 되었다.
날마다 말씀 안에 머무는 자 되어 창세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자 되었다.
그리고 때를 따라 그것을 증거하는 영생의 증인으로 삼으셨다.

연말과 연초, 파도에 휩쓸린 듯 지나갔다.
거의 한 달 동안 복음과 생명의 진리를 전하는 사역에 나를 바쳤다.
한적한 주간, 여유 있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머문다.
그런데 내 영혼은 다시 말씀으로 사명으로 불붙는다.

이 땅의 교회를 보며 탄식한다.
한국교회는 물론 열방의 교회마다 예수의 증거가 넘쳐난다.
교회마다 목사마다 성도마다 예수를 증거한다.
기독교TV, 각종 매체, 인터넷, 스마트폰까지 성경을 강해하고 그것에 질식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 증거들은 다들 진실하며 정당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영생의 삶은 희귀하다.
유대인의 비극이 우리 시대 교회의 비극이다.
저마다 잠간 지나가는 요한의 빛에 머물기 원한다.
종교적 열광은 잠간의 즐거움을 주나 이내 걷잡을 수 없는 공허감으로 괴롭힌다.
야곱의 우물은 성분도 좋고 넘치나 다시 목마르고 만다.
많은 신자들이 고요함도 안식도 없이 유리방황한다.

다시 목마르고 마는 것,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지 않는 것!
그것들은 아무리 탁월한 증거라도 결국 야곱의 우물에 속한다.
영생을 알고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무는 자, 그것만이 하나님의 참된 증거이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아들에 대한 수많은 증거를 가진 자였습니다.
아니 그 증거를 열렬히 전하는 자였습니다.
수많은 전도, 설교, 성경연구, 배움 등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역을 감행했습니다.
아, 그러나 영생이 부재했고 영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 끝은 심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버지여...
진리대로 심판하신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내가 당한 모든 일은 당신의 공의였습니다.
나는 실로 악하게 행하였고 당신은 진실하게 행하셨나이다.
진멸 받아 마땅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셨나이다.
오, 주여! 제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나이다.
진실로 구원의 감격이 넘치나이다.

아버지...
이 땅을, 이 땅의 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곳곳에 예수의 증거가 넘쳐납니다. 그 증거들은 참이며 정당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영생에 무지합니다. 다만 요한의 빛에 즐거이 머물 뿐입니다.
다시 목마르고 마는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길을 뿐입니다.
주여, 당신의 공의로 심판하소서. 그래서 다시 세우소서.
영생의 말씀이 들려지기까지 그리하소서. 당신의 공의를 찬양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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