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5:10-18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2. 시작 기도
만물 위에 계신 나의 아버지!
당신은 각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나이다.
사람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할 곳을 정하시나이다.
어찌 내 스스로 존재하며 어찌 내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주께로 왔으되 주께로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죄의 세력은 복음과 생명의 진리로 영혼들을 섬기는 중에도 역사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역사한 어제의 충만함은 사라지니 오늘도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나이다.
가난한 심령으로 주를 목말라 하오니 나의 양식은 아들의 살과 피이옵니다.
이 모습 이대로 아들을 힘입어 당신께 가오니 나를 당신의 품에 감추소서.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음같이 내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여 당신 품에 있기를 사모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던 38년 된 병자를 말씀으로 낫게 하신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10절).
그가 대답하였다.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다"(11절).
유대인들이 그에게 묻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하였다(12절).
그러나 병 나은 사람은 자기를 고쳐준 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이미 그곳을 떠나셨기 때문이다(13절).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 말씀하셨다.
"이제 네가 다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렇지 아니하면 더 심한 병으로 고생할지도 모른다"(14절).
그 사람은 나가서 자기를 낫게 한 사람이 예수라고 유대인들에게 말하였다(15절).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신다 하여 그를 박해하였다(16절).
그 때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17절).
유대인들은 이 말씀 때문에 더욱 더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셨기 때문이다(18절).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다.
그러자 병자는 즉시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가 자리를 운반한 것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으로 보고 그를 고소하였다.

물론 안식일에 자리를 운반하는 것을 금하는 일은 모세율법은 아니다.
이것은 미쉬나 율법에 의해서 금해진 것이다.
거기에서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일은 무려 40가지나 되며, 그 중 하나는 '어떤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만일 살아있는 사람을 자리에 눕혀 운반한다면 그는 안식일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리는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자리 위에 아무도 없다면 그것을 운반하는 사람은 안식일 법을 범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 그 사람은 안식일 법을 범한 것으로 고발당하고 있다.

이에 그 사람은 자기를 낫게 한 사람이 자리를 들고 가라고 했다고 해명한다.
유대인들이 그가 누구냐고 묻자, 나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다른 곳으로 피하셨기 때문이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병 나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면서,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더 심한 것으로 고생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죄가 이미 용서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의 신체적인 질병이 낫게 된 것보다 그가 예수를 알고 그를 통해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해결을 넘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구원의 실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막 2:10-11).

병 고침이나 문제해결은 그 자체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 죄 사함을 받는 데에 이르러야 한다.
그 때 그는 죄로부터 해방되며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나아간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가 예수라고 말하였다.
유대인들은 이 일로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16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창세전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아들 안에 있게 하셨다(5:26).
그리고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딛 1:2).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 창세전 미리 정하신 바 되었다(벧전 1:20).
그리고 이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쉬지 않고 일하신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그 일을 행한다(19절).

한편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칠일에 안식하셨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2-3).

여기 '안식했다'는 헬라어 번역(70인역)은 '쉬다'(헬, 카테파우센)를 뜻한다.
이는 '멈추다'(헬, 에파우스아토)와 다른 말이며, 창조행위 자체를 멈추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필로).
다시 말해 하나님은 창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세전 자기가 행하신 약속의 성취를 위해 일을 멈추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게 창조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그의 아들 예수께서도 행하신다.
그 일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며, 아들의 말을 듣고 그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다(5:24; 6:40).

한편 유대인들은 예수를 더욱 더 죽이고자 하였다.
이는 그가 안식일을 범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볼 때 안식일을 범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그가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기독교의 구원관은 문제해결 상황해결이 그 요체였다.
나아가 어느 종교든지 문제해결을 해주면 거기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적 사상이 힘을 얻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은 더 이상 효력이 없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를 문제해결의 열쇠를 지닌 구원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스터키처럼 삼아 이생의 복을 구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각 사람의 취향에 맞는 '부호'(cypher)가 되고 기독교는 미신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20세기 중반 들어 몇몇 신학자들을 통해 이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구원의 내용이 성경적으로 재정립되었다.
예수께서는 문제해결의 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왔다는 것이 규명되었다.
이후로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히 죄와 죄의 결과로 빚어진 고통이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는 것으로 천명되었다.
'기독교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궁극적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로 들어가는 것이다'(탐 스매일, 잊혀진 아버지).

4. 나의 묵상
나는 오랫동안 구원을 오해한 자였다.
문제해결, 상황해결이 신앙의 내용이요 목적이었다.
죄사함을 관념으로 그쳤고 그것이 가져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도 땅의 나라에서 번성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었다.
내 인생을 얻고자 하는 보란 듯한 삶, 성공하는 삶, 풍요와 안락의 삶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 붙잡힌 인생은 그 길을 걷는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았다(렘 10:22).
내 뜻과 목적은 거듭해서 좌절되고 꿈이 이루어지는듯하면 무너졌다.
마치 시지프스의 고통이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고통 끝에 심판이 임하였다.
말씀 없이 생명 없이 지은 인생과 사역의 집이 다 무너져 내렸다.
내 인생과 사역의 탑이 무너진 곳, 바벨이 하늘 문이 되었다(바벨의 어원적 의미는 '하늘문').
무덤에 누운 자 되었다. 자리에 누운 자 되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 갇힌 자 되었다.

그 때 내가 알 수 없는 자가 내게 다가왔다.
나에게 임한 어둠, 고통, 재앙, 그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핸 주님의 손 그림자였던 것이다.
나의 무덤에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와 함께 장사되어 그의 무덤 안에서 일으킨바 되었다(골 2:12).
창세전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실재되었다.
그 때까지 하나님이 일하시고 그 안에서 아들이 일하셨다.

생명의 복음, 이 일에 빚진 자 되어 빚을 갚는다.
오늘까지 각처에서 온 영혼들에게 영생의 복음을 전한다.
첫날은 혼돈의 날이었으나 어제는 빛의 날이었다.
계시로 밝히 드러난 복음 앞에 영혼들이 무너졌다.

동역자 김목사님이 중국사역중이라 새벽부터 밤까지 홀로 말씀을 전했다.
장사복음, 무덤의 복음을 전하고 밤늦게 숙소로 오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새벽에 알 수 없는 힘이 내게 임한다. 말씀을 사모하며 주 앞에 달려 나간다.
그리고 쉬지 않고 일하시는 아버지와 아들을 본다.
내게 그리 일하신 아버지와 아들, 이제는 내게 보내신 영혼들을 위해 그렇게 일하신다.
그들에게 창세전 세계, 비밀이 계시되고 거기로부터 시작된 영생의 구원이 임한다.

더 많이 수고해도 이는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문제해결을 넘어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 그 은혜와 그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오직 내 문제 해결, 이생의 복락을 위해 예수를 믿던 자였습니다.
오랫동안 미신이나 다를 바 없는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생명도 진리도 영원도 복음도 언약에도 무지한 자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요원한 채 땅의 나라를 위해 질주하던 자였습니다.
그런 자에게 심판이 임하였나이다.
홍수가 나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다 휩쓸려 갔습니다.

아버지여...
심판 중에 긍휼을 베푸신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나의 무덤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말씀이 존재되어 내게 찾아왔습니다.
말씀으로 나의 죄악을 드러내어 심판하시고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아버지...
오늘도 빚진 자 되어 이 복음을 전하나이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들, 저들을 참된 구원으로 이끄소서.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사 저들을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소서.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알고 누리도록 이끄소서.
아버지께서 일하시고 아들이 일하시니 그 일을 누가 막으리이까!
주여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이들을 향한 당신의 약속을 이루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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