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손정도 목사의 84주기 추모예배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개최됐다.   ©오상아 기자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개신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해석(海石) 손정도 목사 제84주기 추모제 및 손정도 목사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재출판기념회가 26일 서울 종로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그레이스홀에서 손정도목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날 유족 대표로 인사한 손정도 목사의 '손자' 손명원 회장(제니스파트너스코리아 회장, 전 현대미포조선·쌍용자동차 사장)은 "할아버님은 제가 태어나기 10년전에 돌아가셨지만 이모님을 통해서 들은 손정도 목사님의 삶의 철학은 걸레정신이었다"며 "걸레는 남이 피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그 장소를 깨끗하게 치우고 나온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즐긴다. 하지만 걸레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필요할때 또 청소를 하고 청소한 다음에 또 사라진다. 걸레정신이라는 건 내가 뭘 했으니 대가를 바라거나 자신을 영웅이라 생각하거나 그걸로 영광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이 어려워서 못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고는 조용히 안보이는 곳에 있는 그런 마음이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손정도 목사의 손자인 손명원 회장이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상아 기자

손 회장은 이어 "저는 할아버님의 걸레정신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거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며 "(일제 식민 치하에서)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는 국민들을 위해서 할아버님이 내가 할 일이 뭐냐 고민하며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해서 나가서 해방과 독립을 준비하는 일이 당시 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걸레정신이란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한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예수님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듯이 (할아버님도) 목숨을 바쳐야되는 것이 아니냐 생각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때만 하더라도 독립선언서에 사인(sign)한 그 다음날 자기 생은 끝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각오를 하고 그 사인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역사가 미래의 거울이다. 2000년 전 돌아가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읽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안 잊고 역사를 존경하면서 산다는 말이다"며 민족과 나라의 운명을 자기 생명보다 소중히 여겼던 독립 투사들의 '역사'를 기억할 것을 강조하며 "걸레정신이 우리 삶의 철학이 되고 정치의 철학이 되고 국민을 살리는 철학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할아버님이 바라는 원하는 그런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끝맺었다.

손명원 회장의 어머니이자 손정도 목사의 '며느리' 홍은혜 권사는 99세의 노령의 나이에 휠체어로 거동함에도 이날 추모예배의 반주를 맡고, 인사말도 했다. 홍은혜 권사의 남편이자 손정도 목사의 장남인 故손원일 제독은 해군참모총장 재임기간 중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에 참전했으며, 해군병학교(현 해군사관학교), 해병대 등을 창설해 대한민국 해군의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손정도 목사의 며느리 홍은혜 권사    ©오상아 기자

홍은혜 권사는 "'너 이 다음에 커서 걸레가 돼'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며 "손정도 목사님은 참 다른 세상을 살았다. 고향의 자기 소유의 논을 다 팔아서 중국에 갔을때 어려운 동포들에게 다 나눠줬다. 또한 50평 되는 교회를 지어서 잘데가 없는 가난한 독립운동가들이 돈 없이 잠자고 돈 없이 밥 먹는 곳을 만든 것도 저희 시아버지가 하신 일이다"고 손정도 목사의 업적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홍 권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믿는 것'이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지만 믿으면 하겠네'하는 찬양 가사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저희 시아버님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걸레가 돼야한다"며 '통일'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통일이 돼야 하는데 예수님을 본받아서 서로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남을 인정해주고 그 사랑이 잘 되도록 자기는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마음을 가져야만 우리나라 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내비쳤다.

이날 기념사는 박유철 광복회장, 국가보훈처 문태선 서울북부지청장, 정세균 국회의원, 기독교대한감리장로회 전국연합회장 이강전 장로가, 격려사는 11.13대 국회의원 신진수 신일대학 총장이, 추모사는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전재혁 대표회장이 각각 전했다. 이들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한 고인의 업적을 높이 사며 또한 애국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세균 의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운동 세력이나 민주화운동 세력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거나 뜻을 제대로 받드는 일을 게을리 한 것 같아서 이래선 안되겠다 생각한다"며 "정치권에서도 민족 정기를 잘 이어나가는 노력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강전 장로는 "손정도 목사님께서는 정치가이셨으며 고귀한 신앙인이셨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정치인은 있지만 신앙인이 없다라고 자책하고 있다"며 "우리 대한민국이 그 위기에 있을때마다 기독인이 그 중심에 있었다. 삼일운동때 그 중심에 있었으며 광복과 정부수립에도 그 중심에 있었음을 잘 안다. 나라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같다는 손정도 목사님의 뜻을 저희들도 행하는 것이 그분의 뜻일 것이다"고 했다.

▲손정도 목사   ©흥사단

이날 추모행사에 참여한 기독교역사문화보존국민운동본부장 백영찬 장로는 "손정도 목사(1872~1931)는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1931년 2월 19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23세 때 관리등용시험을 보기 위해 평양에 가던 중 우연히 묵게 된 목사 집에서 기독교 교리를 접하고 개종을 결심했다. 이후 27세인 1909년에 협성신학당(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평양 남산현교회와 진남포교회 등에서 전도사를 목회를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도산 안창호와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조직한 항일비밀결사대 신민회에 가입하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해 전라남도로 귀양살이를 가기도 했다. 그러나 1914년에는 동대문교회 13대 담임목사로 1915년에는 정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교회를 부흥시켰다. 당시 동대문교회에서는 김상옥 의사, 정동교회에서는 유관순 열사를 길렀다고 손정도 목사가 회고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편집자 주: 손정도 목사의 며느리인 홍은혜 권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 김활란 여사도 손정도 목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백 장로는 "3.1운동을 준비하다 발각될 위험해 처해 손정도 목사는 1919년 2월 중순 중국으로 망명해 그곳의 망명객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조직해 1919년 10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당시 대통령에 이승만, 내무총장에 안창호, 초대 의정원(국회) 의장에 손정도 목사가 선출됐다"며 "1921년 임시정부를 떠난 손정도 목사는 북만주 길림으로 가 목회를 하며 교회를 거점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의 자택과 예배당은 의지할 곳 없는 동포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독립운동가들의 비밀아지트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손정도 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는 고향의 땅을 모두 팔아 동포들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하며 농업공사의 조성으로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1931년 2월 19일 일제로부터 받은 고문 후유증이 악화돼 49세의 나이로 가족도 없는 외지에서 파란만장했던 고난의 세월을 마감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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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목사 #대한민국임시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