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 1906-45)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케리그마신학연구원(원장 김재진 박사) 주관으로 진행 중인 디트리히 본회퍼 세미나의 강사로 12일 서울신학대학교 이신건 교수(조직신학)가 나섰다. 이날 오후 7시 신촌성결교회에서 진행된 수업에서 이신건 교수는 '보이는 교회'(나를 따르라, p. 284~318)를 주제로 강의했다.

■ 예수, 인간이 된 '하나님의 몸'

먼저는 이 교수는 '인간의 몸으로 온 예수'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서 공간을 차지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됨으로써 인간들 가운데서 공간을 요구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땅에 왔다. 그러나 그가 태어날 때, 인간들은 그에게 마구간을 주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인간들은 그를 자신의 땅에서 추방했고, 그의 몸을 땅과 하늘 사이의 형틀에 매달았다. 성육신은 이 땅에서 자신의 영역을 요구한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진리, 하나의 교훈, 하나의 종교는 자신의 공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것들은 몸이 없다. 이것들은 들려지고, 학습되며, 이해된다.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인간이 된 하나님의 아들은 단지 귀나 마음만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육체적인 인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몸으로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며 "이 하나님 아들의 공동체는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은 그들의 공동체 위에 분명히 드러났다"며 "제자들은 그의 공동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고, 고난과 박해를 받아야 했다"며 "예수의 공동체 안에서 행동하고 일하고 고난을 받은 몸들이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다.

▲ 이신건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오상아 기자

■ 주의 몸,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다

이신건 교수는 "높이 들린 주의 몸은 말씀의 설교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며 "'그들은 항상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했다'(행 2:42)에서 가르침이란 모든 종류의 종교적 담론과는 달리 설교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어 "가르침이란 이미 일어난 사실을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해야 할 내용은 객관적으로 확정되어 있다. 그것은 다만 '가르침'을 통해 전달하는 것만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전달은 본질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에 제한된다. 만약 이것이 알려져 있다면 계속 전달할 의미가 없다. 따라서 '가르침'의 개념은 자기 자신을 불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최초의 교회는 이런 가르침을 '계속' 지켜 나갔다"며 "다시 말하면 이런 '가르침'은 자신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고 '지속성'을 요구했다"며 "하나의 실질적인 필요가 이런 '가르침'과 '지속성'과 묶어놓았던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최초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며 "사도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계시 사실을 증언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예수의 육체적인 공동체 안에서 살았고, 육체가 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자를 보았으며, 그의 몸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져보았다.(요일 1:1) 그들은 하나님과 성령이 말씀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증인들이다"고 그는 말했다.

이 교수는 "사도들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의 육체적인 사건에 관한 증언이다"며 "그 이후의 모든 설교는 이 토대 위에 세워짐으로써 그 자체로서 사도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와 최초의 교회의 일치는 사도들의 말씀을 통해 세워진다"고 설명했다.

■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우리 가운데 친히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

이신건 교수는 "사도들의 말씀은 인간의 말씀 안에서 나타난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며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취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다. 그것은 교회를 향해 움직이는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는 하나의 말씀, 하나의 진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어서, 설교자가 이 말씀을 교회 안으로 가져가기 위해, 이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기 위해 이 말씀을 취하고 다루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씀은 완전히 스스로 이 길을 간다. 설교자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오직 말씀의 이런 독자적인 운동을 위해 봉사하고 이 운동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왔는지, 그것이 어떻게 육신을 취했고 이 육신 안에서 어떻게 온 인류를 취했는지를 스스로 보았다. 이제 사도들이 증언해야 할 유일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을 취하고 용서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설교도 바로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말씀 안에서 성령이 친히 온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은 '사도들의 가르침'이요, 사도들의 설교다"며 "이 가르침은 결코 자신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창조한다. 교회가 이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는 까닭은 교회가 말씀에 의해 취해졌기 때문이고, 이 사실을 날마다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하나의 보이는 교회를 창조한다"고 강조했다.

■ 세례와 성만찬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몸'

이어 이 교수는 "그리스도의 몸은 말씀의 설교 안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례와 성만찬 안에서도 볼 수 있다. 세례와 성만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으로부터 나온다. 세례와 성만찬 안에서 말씀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한다. (롬 6:3이하; 고전 11:6)"며 "세례와 성만찬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몸으로 다가오며, 우리를 자신의 몸의 공동체의 한 지체로 만든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성만찬 안에서 우리는 주의 몸과의 육체적인 사귐을 선물로 받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몸의 지체들과의 육체적인 사귐을 선물로 받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몸의 지체들과의 육체적인 사귐도 선물로 받는다"며 "말씀은 신자와 불신자를 향해 선포되지만 성례전은 오직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체에만 속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교회는 하나의 조직화된 전체다. 교회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의 조직과 질서를 포함하고 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몸의 형태는 조직화된 형태다(롬 12:5; 고전 12:12 이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은 선포의 공간과 함께 질서의 공간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교회의 질서는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것이다. 교회의 직무는 '봉사'다.(고전 12:4) 교회의 직무는 하나님에 의해(고전 12:28), 그리스도에 의해(엡 4:11), 성령에 의해(행 20:28) 교회 안에 제정된 것이지, 교회를 통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스스로 직무를 분배할 경우에도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 아래 분배한다(행 13:2 등)"며 "직무와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처음부터 동일하다. 직무는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 직무는 오직 이러한 봉사 안에서만 영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서로 다른 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직무, 곧 '여러가지 봉사'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예루살렘 교회의 직무는 바울의 선교 공동체의 직무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성령이 개인에게 선사하는 은사들도 교회에 대한 봉사의 규율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고전 14:32) 바로 이를 통해 성령은 모든 것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전 12:7)"고 했다.

■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 올바른 집행에 관심 기울여야

이신건 교수는 "교회의 직무 담당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되는지를 보살피는 일에 항상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선포는 선포자의 임무와 은사에 따라서 항상 다양하고 상이하다. 그러나 바울에게 속하든 베드로에게 속하든, 아볼로에게 속하든 그리스도에게 속하든 이 모든 것 안에서 분리될 수 없는 한 그리스도가 인식되어야 한다.(고전 1:11 이하)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한다.(고전 3:6)"고 주문했다.

이어 "학파 형성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분쟁을 낳는다(딤전 6:5, 20; 딤후 2:16; 3:8)문제를 삼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향도 쉽게 생겨날 수 있으며, 분명하고 단순한 진리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다(딤후 3:7)"며 "이와는 반대로 건전하고 유익한 가르침은 선포의 목표가 되고(딤후 4:3, 딤전 1:10; 4:16; 6:1, 딛 1:9,13; 2:1; 3:8) 올바른 질서와 일치를 보장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학문적 견해와 거짓된 가르침의 경계선을 인식하기는 항상 쉽지 않다. 따라서 다른 교회가 이미 이단으로 배척한 하나의 가르침을 학문적 견해로 허용하는 교회들이 많다(계 2:6, 16 이하)"며 "그러나 만약 거짓된 가르침이 분명히 드러난다면, 완전한 분리가 요구된다. 거짓 교사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와 인격적 사귐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갈 1:8, 고전 16:22, 딛 3:10, 요이1:10 이하)"고 했다.

■ 성례와 성만찬에서 시작하는 '주님과의 사귐', '지체들간의 사귐'

이 교수는 또 "교회는 단지 예배와 질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지체들의 일상적인 삶을 위해서도 이 세상에서 공간을 요구한다.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모든 삶이 전개되었다"며 "이제는 보이는 교회의 삶의 영역에 관해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수가 제자들과 나눴던 사귐은 삶의 모든 관계들 안에서 이루어진 온전한 사귐이었다. 이러한 사귐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가진 존재였다는 사실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다"며  "첫번째 제자들의 모습은 주가 있는 곳에는 그들도 있고, 그들이 있는 곳에는 주도 세상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바로 예수의 공동체의 사귐 안에서 그 지체로서 행하는 것이다"며 "그리스도의 몸에 관해서도 한 지체가 있는 곳에는 온 몸도 있고, 몸이 있는 곳에는 지체도 있다"고 했다.

이어 "지체가 몸을 벗어날 수 있거나 벗어나기를 원하는 삶의 영역은 없다. 지체가 어디에 있든, 지체가 무엇을 행하든, 이 모든 것은 '몸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다"며 "모든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수용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거나 약하다.(빌 4:13; 고후 13:4) 그는 '주 안에서' 일하고, 힘쓰고, 기뻐한다.(롬 16:,12, 고전 15:58, 빌 4:4)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권면한다.(고후 2:17, 빌 2:1)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롬 16:2) 그는 주 안에서 결혼한다.(고전 7:39) 그는 감옥에서도 주 안에 있다.(빌 1:13, 23) 그는 주 안에서 종이다.(고전 7:20)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인간적인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품에 싸여 있다"고 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세상의 결혼과 다르게 보인다. 그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몸을 섬김으로써 거룩하게 되고, 기도와 절제의 훈련을 받는다.(고전 7:5) 이런 점에서 그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된다. 그의 결혼을 교회가 된다(엡 5:32)"며 "교회는 여전히 세상 안에서, 육신 안에서 살아가지만 교회는 하늘을 바라본다"고 했다.

끝으로 이신건 교수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에 관한 첫번째 설명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직 기도하기를 힘썼다' '그리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 는 말에서 사귐이 말씀과 성만찬 사이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교훈적이다. 사귐이 항상 말씀으로부터 시작되고 항상 거룩한 성만찬을 지향하며 항상 거룩한 성만찬에서 완성된다는 것은 사귐의 본질에 대한 우연한 설명이 아니다. 사귐은 예배에서 시작되고 예배에서 끝난다"며 "여기서는 '부족한 자가 전혀 없었고, 서로가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었으며, 제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러한 사건은 강요할 필요가 없는 복음의 완전한 자유를 알린다. 그들은 참으로 '한 마음과 한 뜻'이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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