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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일보 김종엽 기자]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지난해 1월 104달러에서 최근 50달러대까지 떨어지면서 국내 산업계가 '저유가 충격'에 휩싸였다. 유가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정유업계는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고, 유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건설업계와 조선업계도 중동 지역 산유국이 원유·가스와 해양플랜트 등의 발주를 줄이면서 저유가 충격을 받고 있다. 항공과 해운업계 등은 상대적으로 유가 하락에 따른 수혜를 입고 있지만, 마냥 박수만 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산유국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의 경제가 삐걱거리면서, 그 여파가 국내 산업계에 전달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 거래된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일 대비 0.58달러 내린 배럴당 52.69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석유거래소(ICE) 선물시장에서도 같은 날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0.91달러 하락한 배럴당 56.42달러에 마감됐다.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일 대비 0.33달러 하락한 배럴당 53.27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정유업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유산업은 50년 만에 국가 주요 수출 산업으로 성장, 최근 3년간 석유제품 수출실적이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제 유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정유업계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지고 있다. 유가가 하락할수록 정제마진(최종 석유제품의 판매가격에서 원유수입 가격을 뺀 것)이 감소하고 재고평가손실이 증가해 정유업계의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저유가의 충격은 조선업계에도 전달되고 있다. 저유가 국면에서 해양 유전개발 유인이 떨어지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측은 "유가가 80달러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오일메이저들이 해양 플랜트 발주량을 늘리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발주량을 줄인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 업황 침체 속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해양플랜트를 미래 먹거리로 주목했지만,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이 같은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운시장의 침체로 선박 수주량의 변동 폭은 컸지만, 해양 플랜트의 수주량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수주에 매달린 측면이 있다"면서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저유가 충격의 영향권에 있다. 유가 하락으로 산유국의 경기가 악화되면서 중동의 원유·가스 플랜트 발주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수주와 유가의 상관관계는 높은 편이다. 해외건설협회가 1973년부터 2013년까지 중동 수주와 두바이 유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상관계수는 0.88로 나타났다. 중동 지역 산유국들은 신규 발주를 대폭 줄이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2011년 이후 단일국가로 수주액이 가장 많았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한 금액은 29억5000만달러로 전년(99억7000만달러)보다 70%가량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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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리나라의 10위 수출 상대국으로, 한국이 러시아에 주로 수출하는 품목은 승용차, 자동차부품, 합성수지, 건설중장비 등이다. 이미 러시아발(發) 위기는 국내 산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대(對) 러시아 1위 수출 품목인 승용차는 지난해 10월말까지 전년 동기 대비 20.5% 감소한 22억 달러를 수출했다. 같은 기간 합성수지는 15.2%, 화물자동차는 29.5%, 건설중장비는 37.1% 감소했다.

유럽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모라토리엄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산업계는 더욱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이 현실화될 경우 2009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이 예상돼 러시아 수출은 -1.1%, 대 유럽 수출은 -1.8% 감소할 것"이라며 "이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6%p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번째 갈래는 국제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0.8%를 기록하면서 1999년 9월(0.8%) 이후 15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최근 국제 유가의 하락세를 감안할 때 올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가격이 많이 내려가면서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이 다시 0%대에 진입했다"며 "유가 하락이 계속되고 있어 당분간 하방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도 저유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올해 평균 유가를 배럴당 62.75달러로 예측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1월만 해도 배럴당 104.01 달러(두바이유 기준)를 기록했지만, 그런 시절은 당분간 찾아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금의 저유가 국면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되며 산업계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유가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예방책을 강구하는 동시에 저유가 국면에 적응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성근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제조업 베이스이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제조비용이 절감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현재 유럽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저유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유럽 경기가 악화 일로를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에 자금 대출을 해준 유럽 금융기관이 많아, 러시아의 위기는 곧 유럽으로 퍼질 공산이 크다"며 "이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선임연구원은 "무엇보다 러시아 및 유럽에 대한 수출 부진에 대비해야 한다"며 "시장 다변화 및 대체 수출 시장 확보 노력이 선행돼야 저유가 충격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저유가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이 현실화되거나, 그 불똥이 유럽으로 튈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어 국내 산업계가 휘청거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가 하락에 따라 소비자물가가 하방 압력을 받아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 있는 점도 문제"라며 "유가 하락이 얼마나 지속될지, 산유국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이 저유가를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따라 저유가 충격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계는 사전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유가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면, 소비가 지연되고 실질부채가 증가해 우리 경제 체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원유 의존도가 높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 기업들이 성장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가 하락에 따른 실(失)을 최소화하면서 득(得)을 최대화할 수 있을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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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산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