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대 주도홍 교수   ©주도홍 교수 페이스북

12월 24일,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적 전통과 역사를 가진 나라들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를 쇠는 명절로 지낸다. 그래서 성탄 이브인 오늘밤은 그 분위기가 한 마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거리에는 정적이 흐르고 각자의 가정에 찾아들어 구주의 성탄을 고요하게 거룩하게 맞이한다. 성탄절의 빨간 색상의 옷들을 입고 온 가족이 부모의 집으로 함께 모여든다. 하루 종일 오븐에서 구워진 맛있는 칠면조 요리를 주요리로 하여 촛불을 사이에 두고 가장 성대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성탄의 기쁨을 만끽한다. 만찬이 끝난 후 장소를 곱고 이쁜 장식으로 꾸며진 성탄트리가 빛을 발하는 응접실에 모여 그 트리 밑에 이미 놓아둔 각자의 선물을 서로에게 주고 받으며 성탄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른다. 그런 후 선물을 주제로 한 동안의 이야기 꽃이 펼쳐진다.

유학 시절 거기에는 외로운 유학생들이 초대를 받아 성탄하객으로 참석하는데, 한국식 성탄을 상상하는 그들에게 서구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놀라운 축복과 설레임으로 다가가게 된다. 미쳐 선물도 준비하지 못한 싱글 유학생들에겐 주인 아줌마의 배려로 뜻밖의 선물을 받아 함께 기뻐하며 환호한다. 밤이 깊어갈 때 달콤한 초코렛을 한 조각씩 먹을 때 다시 기운이 오르고, 벽난로에는 모처럼 때 만난 장작들이 신나게 타올라 그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거기다 종종 나오는 독일의 따끈한 포도주 귈루바인은 성탄의 분위기를 드높인다. 모두의 볼을 빠알간 앵두로 만들어 서로를 바라보며 상기됨을 기뻐한다.

오늘 한국의 나는 조금은 서먹한 성탄 이브를 맞으며, 유일한 소망을 교회성탄이브 축하예배에 두고 있다. 찾아오는 이들도 없고, 그윽한 냄새 넘쳐나는 오븐에서 익어가는 맛있는 칠면조 요리도 없다. 기독교 역사 130년 이지만, 서구의 아름답고 이쁜 성탄의 역사를 한국교회는 정착시키지 못했다. 조금은 우리식의 성탄이브로 바꿔 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불신문화가 더욱 기세를 부려 성탄절 분위기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경제탓이라고 한다면, 너무도 살벌한 세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 어렸을 적에 한국은 분명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꽤나 신나게 성탄절을 지냈던 것 같다. 성탄절 새벽송도 잇었고, 신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도 있었다. 서로에게 안겨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분명 주고 받았다. 오늘 이 성탄 이브에 나는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잃어버린 한국의 성탄문화를 가슴 아파한다. 그래도 성탄은 인류의 소망이며, 생명의 계절이며, 거룩한 명절임이 분명한데, 한국의 성탄절은 그 아름다움과 그 기세가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 한국교회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너무 세속화로 치닫던 한국교회는 성탄의 거룩성을 훼손해버렸다. 대신 자기들이 원하는 부유한 살진 예수를 낳게 하였고, 그 자리에 세속의 가치관과 문화를 가져다 놓았다. 예배도 엔터테인멘트로 바꾸었고, 하늘의 축복을 세상의 부귀영화로 대신하고 말았다. 그 초라한 아기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 축복임을 망각하고 말았다.

유대 베들레헴 마구간은 가난하고 추워서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토록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화려하고 찬란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번영에 반대되는 너무도 소박한 곳이어서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번영과 축복의 메시지를 신나게 전했던 한국교회는 가난한 아기 예수를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기는 했으나, 실상은 마음을 주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요렇게 크리스마스를 시시하게 추방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가장 낮은 자로 가장 천한 곳에 우리를 구하러 저들 밖의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알렸던 거룩한 성탄의 의미를 다시 제대로 인식하여 겸손히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야 오늘 세계가 가난한 자로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와 함께 복 있는 자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는 바로 지금 학교 사무실에서 업무를 위해 수고하고 일 년을 함께 보낸 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려 한다. 작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무엇이 좋을까? 그 유명한 초코렛, 페레로 로헤라든가? 그들이 일하는 책상 앞에 놓아주면 기뻐할까?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축복하며 작은 마음을 주고 싶다. 내가 독일과 미국에서 축복으로 누렸던 그 낭만적이며 거룩했던 성탄절 이브를 말이다! 아니 내가 어릴 적 그토록 기다렸던 그 성탄절 이브를 전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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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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