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란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수 천년 동안 정치철학을 관통해온 중요한 질문들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접목시켜내며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번엔 법을 집행하는 판사의 입장에서 '예수의 정의'에 대해 풀어보는 자리가 마련돼 이목을 끌었다.

2일 서울 은평구 팀비전센터에서 진행된 제6회 기독법률가회전국대회에서 선택강의를 한 김진하 판사(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는 강의 주제인 '법원에서의 기독법률가'에 대해 "제목이 매우 도발적이다. 적어도 공무원인 내게는 그렇다"며 "내가 재판하는 것이 나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재판을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종교적 신념이 종교 편향으로 오해될 여지가 상당히 많이 때문에 더욱 그렇다"며 "법률가로서 특히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은 법과 양심에 따라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그 사람이 법을 공부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형성된 정의감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종교가 내세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정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며 또 "그 사람이 통전적 신앙을 갖고 있다면 해당 종교에서 말하는 정의가 현행법령과 사건을 바라보는 데 하나의 관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 정의가 해당 사회에서 논의되는 정의에 대한 관념에 배치되지 않는 한 자신의 종교적 배경에 따라 형성된 정의에 대한 관념이 그 법률해석자의 선이해로 작용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다"며 "왜냐하면 해석자는 선(先)이해를 통해 해석대상을 바라보고 그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예수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깊은만큼 사회정의와 제도에 관심이 많다"며 "예수가 말한 정의는 이미 우리의 법률 안에 스며들어 있기도 하고 법령의 해석이나 입법에 새로운 통찰을 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률가는 어려운 사건을 만날 때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며 "변호사가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법률적 주장을 구성할 때, 검사나 판사가 기소여부 내지 소송의 결론을 고민할 때 잠 못드는 밤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고백했다.

또 김 판사는 "때로는 존재의 심연에서 중요한 결단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순간에 최종적인 정당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아니 누구인가?" 물으며 "그 순간에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한 몸에 이루신 그 분을 만난다"고 했다.

김 판사는 예수의 '정의'(Justice)에 대해 '보편성'과 '편파성'으로 구분지어 설명했다.

그는 '보편적 정의' '창조자 예수'라고 정의내리며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면서 시공간과 자연법칙을 제정하고 각 피조물의 본성을 정했다"며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과 사회 각 영역에는 창조자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하나님이 예정한 규율원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의 목적은 이를 발견하고 이에 따라 해당 영역을 규율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또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셔서 우리는 사유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며 "인간에게 담긴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사람에 대한 절대적 평등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사람에게 기본적 인권, 인간다운 생활을할 권리를 보장하여야 할 근거가 되고, 난민협약상 난민을 보호하여야 할 근거가 되고, 아무리 중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절차적 보장을 받아야 하는 근거가 된다"고 부연하고 "자유에서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도출되고 재산권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건 내지 전제가 된다"며 "그래서 사적 자치와 사유재산권의 인정 및 보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문화명령(Culture Mandate)에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제2의 창조활동을 한다"며 "이러한 잠재적 창조성의 역사적 결과물은 사회 각 영역의 분화이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 등 각 영역에는 하나님이 부여한 고유의 목적 및 구조·규범이 있다. 그러한 각 영역에 숨겨둔 하나님의 뜻이 가장 발 발현되고 꽃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며 "크리스천 법률가는 본인이 담당하는 전문 영역에 대한 법리와 재판원리, 증명방법 등을 정립하고 개발하는 소임을 다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수의 '편파적 정의'에 관해 설명하며 '해방자 예수'라는 표현을 썼다. '편파적'인, '가난한 자를 편드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김 판사는 "성육신한 하나님이 그렇게 살았고, '나를 따르라' 설명하셨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사실 아무런 논증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며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하고, 그러면서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 본인의 사명이라고 선언하였다"며 "재벌 기업가의 거액이 담긴 헌금보다 수입이 적은 비정규직 근로자 내지 실업자로 보이는 과부의 적은 헌금을 기쁘게 받으셨고, 간음한 여인의 편에 서고 노숙자, 윤락녀와 함께 식사하고 친구가 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편드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로날드 사이더의 말을 인용해 "가난한 자들은 계시의 중심에 있다(고전 1:27~30)"이라고도 했다.

그는 "하나님은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다"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아무도 그 분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전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할 때 우리는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우리가 그토록 만나기를 고대하는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모습을 한 예수를 만난 것이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우리가 현실에 당면한 사건이나 문제를 해결할 때 창조자 예수와 해방자 예수는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해 줄 것 같은 난감함에 직면하게 된다"며 "절대적 평등에 입각한 관점과 실질적 평등에 입각한 관점이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창조자 예수와 해방자 예수는 충돌하는가? 보편적 예수와 편파적 예수는 모순되는가? 질문하며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판사는 "왜냐하면 죄로 왜곡되고 뒤틀린 사회현실에서는 약자에 대한 편파적 편듦을 통해 비로소 보편적 정의가 실현되기 때문이다"며 "즉 예수는 편파적 정의(해방자 예수)를 통해 비로소 보편적 정의(창의적 예수)를 회복하고 실현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가 정당화될 수 있는 지 여부가 이 지점에 서 있는 문제 중 하나다"며 "경제구조가 정상적이라면 위와 같은 규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중시하는 시장경제에서 정당화되기 어려운 영업권 제한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정치권에서 합의하여 이와 같은 법률을 만들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법류에서 허용한 최대치의 규제를 하는 것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 유통시장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면서 "이와 같은 규제의 취지 역시 재래시장에 대한 편파적 보호를 통해서 시장의 균형과 건전성을 보편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라드부르흐는 법은 가치와 현실 사이에 있는 가치관계적 현실이라고 하였다"며 "법에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정법으로서는 법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라드부르흐 역시 그가 제안한 공식에서 법적안정성의 요청이 정의의 요청보다 일반적으로 우선한다고 보면서 다만 참을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법적안정성을 상대화하여 정의의 요구가 우선할 수 있다고 보았다"며 "우리에게 이와 같은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청했다.

김 판사는 또 "실무 법률가로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사건을 처리할 때 기존의 법리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 무엇인지,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충분한 증거를 갖추고 있는지 고민하면 족하다(크로노스)"며 "그것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그 사건을 담당하는 법률가로 부르신 목적에 순종하는 것이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직 선례가 없어 새로운 법리의 정립이 필요한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경우, 참을 수 없는 모순으로 인해 법적안정성의 요청이 상대화되어 법리의 변경이 필요한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 경우, 잠 못 드는 밥을 보내면서 새로운 법리를 연구해서 주장하고 이를 채택할 지 여부를 고민하는 순간들을 통해 먼저 그러한 삶을 산 예수의 흔적이 우리의 현장(법정)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질문하고, "그러한 고민과 결단과 시도들을 통해 우리가 부름받은 법률영역에서 예수의 가치가 선취되는 멋진 날(카이로스)들을 기대해본다"고 강의를 마무리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김진하판사 #기독법률가회전국대회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