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길(장신대, 기독교윤리학자) 교수   ©박성민 기자

"악법은 악이 될 수도 있고 법이 될 때도 있다. 아주 제한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만 악법이 법이 되야 하는 것이다. 악법이라는 것이 일상의 평화적인 때에도 지속된다면 법이 아니라 악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회퍼가 말하는 것이다."

최근 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 사회봉사관 소극장에서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영화로 읽는 기독교 역사 Ⅰ'의 마지막 영화로 '본회퍼(에릭 틸 감독, 2000)'가 상영됐다. 고재길(장신대, 기독교윤리학자) 교수가 '본회퍼와 독일 나치 시기 기독교 저항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이 영화는 독일의 행동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이다.

고 교수는 "그의 삶의 특징은 그가 주장했던 신학적 내용이 삶 가운데 대부분 실천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언행일치'가 그의 삶 가운데 드러났다. 그런 부분들이 보면서 놀라게 되는 부분"이라며 "영화를 보면 갈등과 고뇌의 장면이 매우 많이 나온다. 그 과정을 밟아서 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영화에 대한 설명에서 고 교수는 "제자도에 대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이 되면서 라인홀드 니버(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본회퍼에게 독일로 돌아가지 말고 미국에 남아 교수 생활을 하라고 붙잡는다. 그러나 본회퍼는 1939년 9월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데, 그전에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당시 일기를 보면 전쟁이 끝난 이후 독일로 돌아가서 독일 교회 재건 운동을 하려면 독일에 있지 않고 만약 미국에 머물러 있다면 전쟁이 끝난 후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많은 사람들이 붙들지만 그는 그 때 돌아갔다"라며 "그 때 읽었던 성경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말인, 겨울이 오기 전에 너는 속히 오라는 그 이야기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내용을 읽으며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겠다고 하며 독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는 1939년 8월 부터 시작해서 1945년 4월 9일, 그가 교수형을 당하는 새벽 아침까지의 시간이 나온다. 고 교수는 영화 상영 전, 배우들이 주고 받는 대화들을 신경쓰며 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본회퍼가 지향하는 기독교 윤리의 내용들을 추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악한 행위보다 더 나쁜 것은 악한 존재다." 악한 행위는 내가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악한 존재는 한 번 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는 악한 행위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악한 존재로 봤다. 본회퍼는 악한 행동보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악한 존재로 본 것이다.

또 "진실한 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악한 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낫다"라는 대사가 있다. 악한 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은 가증스럽다는 것이고 차라리 진실한 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악한 자가 진실을 말하는 경우를 히틀러로 볼 수 있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본회퍼는 진실을 추구하려고 했다. 본회퍼와 같은 사람이 때로는 거짓말을 할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게슈타포 검찰과 본회퍼가 질의응답을 할 때 본회퍼는 거짓말을 한다.

다른 장면인 간수와 얘기하는 대화에서는 간수가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니, 본회퍼는 "모든 자에게 진실을 말할 의무는 없다"고 말하고 이에 간수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을 말하면 된다"라고 설명한다.

고 교수는 본회퍼가 지향하는 기독교 윤리의 본질, 중심 내용은 철학적 윤리하는 사람들이나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윤리를 전공하는 다른 신학자들과 비교할 때 다른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칸트의 경우 그의 윤리학을 읽다보면 규범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되는 정언명령을 지키는 삶이 윤리적인 삶이라고 칸트는 이야기한다"면서 "본회퍼의 경우 규범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 규범을 위반해서 선을 실천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상황주의적 요소가 인간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구체적 삶 가운데 나타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본회퍼의 윤리학 책에서는 칸트와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무론적인 윤리와 규칙, 계명 윤리와 같은 것들이 매우 익숙해 있는데 본회퍼의 윤리 지향성은 때로는 규범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위반할 경우에 오히려 규범을 지키는 것보다 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고 고 교수는 말했다.

본회퍼는 당시의 독일의 비인간적 삶, 많은 이들이 희생당한 그러한 상황 속에서 히틀러가 규정하고 있는 계명, 히틀러가 따라오라고 하는 규칙이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다고 그는 전했다.

고 교수는 그 당시 상황처럼 기존의 법이 오히려 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법이라면 그것은 법이 아니라고 본회퍼는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회퍼는 악한 법을 제거하고 법의 본래 정신, 생명을 살리고 인간의 선한, 인간의 행복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는 법의 본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 당시의 히틀러가 만들어 놓은 악마같은 그 법을 깨뜨린 것이다라고 전했다. 기존에 있는 법을 깨뜨림으로 본래 법의 정신을 회복하고 새로운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거다.

고 교수는 "본회퍼는 대부분의 윤리가 지향하는 바가 선이,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구하는 과정이 철학적 윤리이고 일반 윤리의 특성"이라면서 "기독교 윤리, 특별히 본회퍼가 생각하는 신학적 윤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질문하고 답한다. 답을 구해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의 본질이고 핵심이라고 얘기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게 과연 쉬운일일지 그는 물으며 고 교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큰 계명이라는 것, 정의를 확대시켜 나가고 선을 행하는 일과 같은 것들이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때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때로는, 제한된 경우이지만 한계 상황에서 폭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본회퍼는 말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본회퍼'

그는 또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 있는 이 한복판 가운데 이 영화를 본다는 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에서 억울하게 죽어갔던 꽃 같고 별 같은 어린 생명들 처럼 그 당시 사람도 그렇게 죽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이와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고. 정의로운 하나님이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이런 질문들이 그 당시에 나타나게 됐다고 했다.

고 교수는 "거기에 대해 본회퍼는 마지막으로 신학적 답변을 했다. 영화 마지막 끝에서 10분이 중요하다"며 "그 때 본회퍼가 감옥에서 남긴 옥중서신에 나오는 독일 교회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2차 세계 대전이 마친 후 독일 교회가 어떻게 재건되어야 하는지 미래 비전을 얘기하는 설교가 나온다. 그 부분을 주목하면 교회, 그리스도인 각자가 어떤 생각과 삶을 살아야하는지 답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역시나 이날 강의는 그와 연관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질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연관 돼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나왔다.

고 교수는 "영화 엔딩 부터 거꾸로 10분 장면을 생각해보라. 본회퍼가 죄수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 시골 교회당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스탈린의 친구라고 하는 한 사람이 오늘 주일인데 설교를 한번 해보라고 한다. 그 때 본회퍼가 얘기한다. 신이 부재한 시대에, 하나님이 없는 이 시대에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라며 "그러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하나님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앞으로 교회가 해야할 일이다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대해 그 무신론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냐"라고 묻는다. 영화 상에서 본회퍼의 옆에 독가스실에서 히틀러의 졸병으로 생체 실험 까지 했던 의사가 있는 상황에서 본회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고 미래를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는 "이 부분이 세월호로 전 국가적으로 큰 슬픔을 안고 있는 이 상황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세월호를 통해 가장 큰 아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인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일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는 전교생이 예배당에서 특별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학생들은 희생자들 수와 실종자 수에 맞춰 촛불을 준비해 강대상 위해 빨간 초를 올렸다. 이날 예배에 안산제일교회 담임 목사인 고훈 목사가 왔다.

설교에서 고 목사는 "교리를 떠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그 아이의 종교가 무엇인지 상관이 없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그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면 좋겠다. 하나님의 품 안에 그들이 안식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헛된 죽음이겠냐"고 말했다고 고 교수는 전했다.

고 교수는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갈텐데라고 그 상황 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너무 교리에 훈련이 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고훈 목사님이 엄청난 얘기를 하고 가신 거다. 교리를 떠나서 하나님이 그 모든 아이들을 다시 받아주셔야 된다는 것이다"라며 "지금은 살아나올 수 없지만 부활의 날에는 그 아이들이 다시 우리들과 만나야 되고, 그 부모님들과 만나야 된다고 오죽하면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행동은 단순히 조문 행동으로 마쳐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안하고 그리고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지금은 애도하는 기간이고 마지막 한 명까지도 기대감을 가지고 실종자를 찾아야 되는 기간이다. 그 이후에는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고 교수는 '십자가 사건'을 언급하며 "세월호 희생자들이 예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대속적 죽음이라는 신학적 특성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건의 죽음은 대속적인 죽음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리적인 죽음의 성격은 있다"면서 "잘못을 범한 어른들이 거기에 가서 죽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죄 많은 어른들을 대신해 죽은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본회퍼의 신학은 고난의 신학인데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고난받는 것이 본회퍼 신학의 핵심이라고 했다. 고 교수는 "유대인들이 죽어간다. 죽어가는데, 걸어가면서 곧 총살 당하는 상황인데 6살 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물어본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라며 "엄마는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계신다고, 그리고 저기에서 죽은 사람과 함께 또 계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본회퍼 약혼녀의 아버지와 오빠가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죽었다. 약혼녀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고, 왜 죽어야 되느냐라고 묻고 본회퍼는 여기에 잘모르겠다고 대답한다"라며 "어쩌면 우리는 이번 사고를 겪으며 너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확실한 답을 내리는 일을 멈춰야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 답을 안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고 교수는 "우리가 해야되는 일은 이 상황 속에서 고통을 나누는 일"이라며 "그 일을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폭력'에 대한 내용이 언급 되기도 했다. 그는 "악의 세력에 저항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폭력과 비폭력인데,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 속에서 정직하게 기도하면서 할 수 밖에 없다"며 "비폭력은 끝까지 비폭력으로 가야되지만 폭력의 부분에서는 공격적인 폭력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폭력, 즉 정당방위는 가능하다고 본다. 집에 강도가 들어와 가족을 헤치려고 한다면 남편은 기도를 해야하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싸워야 되는 것이죠. 정당방위적인 폭력 행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또 "악법은 악이 될 수도 있고 법이 될 때도 있다. 아주 제한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만 악법이 법이 되야 하는 것"이라며 "악법이라는 것이 일상의 평화적인 때에도 지속된다면 법이 아니라 악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회퍼가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원파'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이단의 한 부류인 구원파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관되어 있는 것이 시간이 지나며 밝혀지고 있다. 사실 구원파가 왜 이렇게 유행하느냐 하는 것은 기독교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이단이 득세하는 것이다"라며 "기독교 안에서 제대로 된 공동체성을 경험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린다면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성에 있다가 그쪽으로 간 사람들이 많다. 구원파 문제도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우리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이단을 줄여나가는 방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오대양 사건과 비슷하게 잘못된 이단 집단들이 나서서 이런 사고를 일으켰다는 식으로 희생양을 만드는 논리로 가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종교 문제를 떠나서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범죄 행위가 있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 모두가 동의와 합의를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찾아서 법적으로 책임을 묻고 제도 개선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한편,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운동으로 히틀러에 대항하다 처형된 독일고백교회의 목사이자 신학자다. 전쟁을 반대하고 유대인을 옹호하며 그들의 독일 탈출을 도왔다. 독일이 패전하기 불과 한 달 전인 1945년 4월 8일, 39세의 나이에 처형당했다. 길지 않은 그의 삶의 행적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역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독일의 지성과 신학계, 목회자의 양심이라고 까지 별명을 갖고 있다고 고 교수는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 그 당시 신학자들이 히틀러를 추종했지만 본회퍼를 포함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남았는데, 끝까지 남은 사람이 본회퍼였다. 그 이후에 남긴 유산들과 신앙적 삶의 내용이 독일 교회의 변화의 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1945년 4월 9일, 본회퍼가 죽고 난 후 3주 뒤 히틀러는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자살을 했다. 5월 8일, 독일은 항복 선언을 한다. 본회퍼가 한 달만 더 살았다면 죽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고 교수는 "참 안타까운 마지막 장면"이라고 했다.

본회퍼가 죽고 난 다음에 그의 시신은 수천구의 유대인 시신과 함께 큰 구덩이에 쓰레기 처럼 버려진다. 그리고 불에 태워졌다. 그는 이렇게 죽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아내는 본회퍼가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영국에서 나치의 만행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예배가 열렸다. 설교자는 조지 벨이었다. 설교를 통해 본회퍼가 그와 같이 죽었다는 것이 BBC 라디오로 유럽 전역에 방송됐다. 그 때 베를린에서 부모님들이 자기의 팔 남매 가운데 여섯 째인 본회퍼가 그처럼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본회퍼가 처음 잡혀갈 때는 단순한 부패 사건에 연루됐다고 봤다. 유대인들을 피신시켜 주며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그런 일들을 군부의 한 그룹에서 해왔다. 이 일로 돈을 벌었던 그룹도 있었다. 그러나 본회퍼가 가담한 해당 군부 그룹은 그 일을 통해 실제로 유대인들을 피신시켰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기 까지 본회퍼는 약 2년 동안 테겔 형무소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문서가 발견됐고 그 안에 본회퍼의 이름이 기록 돼 있는 것이 나타나고 그러면서 반역죄로 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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