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뭘 의도했는지 묻지 말라. 그래야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이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 사회봉사관 소극장에서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영화로 읽는 기독교 역사 Ⅰ'> 세 번째 시간으로 장미의 이름(감독 장 자크 아노, 1986)이 상영됐다. 이날 강의는 '장미의 이름과 중세 수도원 문화'라는 주제로 최용찬 연세대 강사(서양사학자)가 맡았다.

최용찬 연세대 강사(서양사학자)

이 영화는 이집트 출신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움베르트 에코의 이 소설은 기호학자 최초의 역사 소설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의 책이 번역 돼 들어오자 '에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굉장히 인기있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책 제목이 '장미의 이름'인데, "무슨 뜻이냐"라는 궁금증이 나왔고 이에 움베르트 에코는 질문들을 모아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라는 책을 내고 책의 내용에 대해 풀어주었다.

움베르트 에코가 처음 소설의 제목으로 생각한 건, 주인공인 아드소가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회고 방식으로 쓴 '아드소의 후기'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고를 다 쓴 다음 '장미의 이름'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원고 앞에 이름을 붙였더니 멋있었고, 이에 그와 같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은 '살인 사건' 얘기이다. 중세의 수수께끼 같은 얘기가 신비롭게 다가온다. 책 제목은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최 강사는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1장에서 작가는 작품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그래야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 이론에서 '수용자 이론'이라는 대단한 얘기"이라며 "책을 읽을 때 작가가 뭘 의도했는지 묻지 말라는 것이다. 1970-1980년대 수용자 미학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이런 측면에서 나온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독자에게 해석의 권리를 넘겨준 것이다.

이 책은 세계적 기호학자가 쓰다 보니 굉장히 난해하다. 최 강사는 "기호학은 굉장히 어렵다"며 "제가 50세가 다 돼 가는데 정복하기 어렵다. 어떤 용어만 기억에 남아있고 전혀 기호학이라는 산에 못 올라가고 있다"고 말하며 책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원작에선 '장미'가 등장하는데 반해 영화 상에서는 한 송이도 보이지가 않는다. 원작에서는 말미에 보면 "그녀의 몸에서 장미 냄새가 난다. 내게 있어서 그녀가 장미였다"는 내용을 통해 여주인공이 '장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같은 내용이 한 번도 없다. 최 강사는 "'장미'가 도대체 뭐냐라는 것이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것"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건 기독교 안에서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세에서는 카톨릭을 믿는 사람에게 상징적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수도원에서 어떤 것들이 수도사들에 의해 장미라고 하는 것으로 상징화 돼 나타날까 라는 것이 숨은 그림 찾기의 힌트"라고 덧붙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최 강사는 첫 번째 장면에 대단한 의미가 담겨있다면서 "화면이 검은 바탕에서 6분 동안 늙은 수도사의 음성만 들리는데 이것이 이 영화에서는 의미가 있다"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이 나온 1980년에 중세를 어둡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중세가 과연 어두운가, 어두움에서 살아간 사람들에게 빛이 있었다라는 독특한 중세관을 갖고 있었다. '제2의 중세'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

상영이 마치고 영화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최 강사는 "소설과 영화가 나오기 전 중세는 '암흑기'라고 말했었다. 특히 개신교에서 이런 입장이 많았다"며 "움베르트 에코와 장 자크 아노는 중세는 어둡기만 할지, 그 시대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다채로운 얘기가 있지 않을까라 생각했고 새로운 중세를 담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공간은 기호학적으로 표현된다. 그는 "기호학이라는 건 이중적"이라며 "공간 자체는 표면과 내면으로 그져져 있다. 공간의 겉과 속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했다. 먼저 표면은 중세 수도원에 대해 거룩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군데군데 수도원의 거룩한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내면에 대해서는 "수사가 거꾸로 처박혀 죽어있는 이 한 장면으로 설명된다"며 "성스러운 공간이 뒤집히면 세속적으로, 세속보다 더 타락한 공간으로서의 이미지를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최 강사는 "영화에서 세 가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매춘과 남색(男色),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살인 마저도 행한다"면서 "세속적인 공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며 이는 독특한 공간적, 기호학적 글 쓰기이고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장미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둘 째로 마을이라는 공간은 기호학적으로 표현된다. 웃음이 있는 마을과 웃으면 안 되는 수도가 비교되며 수도사에서는 퇴출 당한 감성이 마을에서는 살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여기에서도 장미는 발견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장서관 즉, '지성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는 겉 모습은 보물 창고의 이미지이나 장서를 가두고 있는 문학 감옥으로서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여기서도 발견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결국, 가시적으로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한다.

최 강사는 영화에서 중세 수도회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3가지(베네딕토, 프란체스코, 돌치노) 수도회 운동이 있었다. 영화에서 강조하는 건 세 수도회의 차이가 아니라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 수도회가 동질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보여지나 뚜껑을 열면 각각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살펴보면, 윌리엄은 파랑을, 우베르티노는 보라, 아드소는 빨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은 과학자적으로 나타난다. 과학적이고 치밀한 수사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대단히 지성적 인간으로 그려진다. 우베르티노는 Mythos적 인간이다. 살인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아드소는 감성적인 인간으로 나온다. 기쁨과 분노, 슬픔의 갖가지 감성을 보인다.

최 강사는 "왜 영화가 인간의 세 가지에 종류에 대해 말하고 있나? 독특한 중세적 세 가지 유형의 인간들"이라며 "이들이 장미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장미의 상징성은 '사랑'인데, 먼저 윌리엄이 갖고 있는 사랑은 지성적 사랑이다. 책이라는 것은 '노랑 장미'를 의미하는데 노랑 장미는 지성적인 존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 그것이 현실 세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윌리엄의 사랑의 대상인 '책'이다. 우베르티노는 영성적 사랑을 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우베르티노의 사랑이 영화에서 나오는데, 마리아는 중세 성당에서 창의 장미로 상징화 돼 나타난다. 장미가 마리아로 대체 돼 있는 것이다. 아드소에게서는 감성적 사랑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아드소가 혼자 남겨져 있는 장면에서 딥 포커스가 된다. "이 사람의 심리가 어떨까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며 "마을의 소녀와의 사랑, 홀로 남겨진 아드소에게 꺼지지 않는 불씨가 남아있는데, 이건 소녀를 장미로 했을 때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장미'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최 강사는 자신이 풀지못한 것이 있다면서 "기독교적 문화적 다양성이 생기는 이 지점이 왜 하필 중세였는가 하는 점"이라며 "카톨릭 문화 뿐 아니라 현대 문화에서도 다양해지는 것이 말세의 지름길이냐 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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