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신학회   ©오상아 기자
김요섭 교수   ©오상아 기자

신앙고백 위에서의 교회의 일치를 목적으로 진행됐던 도르트회의를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가 진행됐다.
29일 한국장로교신학회는 제23회 학술발표회를 '도르트 회의와 한국 교회'라는 주제로 양재 횃불선교센터에서 개최했다.

도르트회의(1618-19)는 칼빈의 '예정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알미니우스주의자들과 칼빈주의 목회자들의 신학적 갈등을 해소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교리를 정리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로, 도르트회의의 결정문인 도로트신경(Cannons of Dort)은 네덜란드의 개혁교회의 3대 신조가 되기도 했다.

당시는 1560년대 이후 라인강 하구 저지대지방의 17개 주가 연대해 합스부르크 왕실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개혁파 교회가 국가를 위한 교회의 제도로 채택되는 과정이었다.

교회의 분열이 사회의 분열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네덜란드 국내은 물론 영국, 팔츠, 헤센, 스위스,나사우-베터라우, 제네바, 브레멘, 엠덴 등 유럽의 개혁파 목회자들까지 모인 자리였다.

이날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요섭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는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서의 교회의 일치: 도르트 회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연구)에서 "네덜란드 개혁 교회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벨기에 신앙고백과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해 동의한다는 서약을 요구해 왔다"고 소개했다.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 ca. 1564-1609)는 레이든과 제네바, 바젤, 취리히 등을 거치며 여러 개혁파 신학교와 교회를 접하며 신학을 공부한 유능한 신학자이며 목회자였다.

특히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은 베자로부터 직접 예정론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1587년 네덜란드로 돌아와 암스테르담에서 개혁교회 목회자로 사역하며 1591년 설교한 로마서 9장의 예정과 관련한 구절을 통해 자신은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지 않음을 드러냈다.

암스테르담의 또 다른 개혁교회 목사였던 플란키우스는 알미니우스의 설교와 사상이 소니니우스주의이며, 벨기에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신학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공격했다.

2년 뒤 이 설교가 문제가 되자 알미니우스는 자신은 벨기에 신앙고백에 동의한다고 말하면서도 예정론을 다루는 16조에 대해서는 전적인 동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벨기에 신앙고백과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알미니우스의 비정통주의적이며 이중적인 태도는 1603년 레이든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네덜란드 개혁교회 내의 공적인 문제로 부각됐다.

1604년 알미니우스는 '예정에 대한 논제들'이란 글에서 '예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작정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영원 전부터 자신이 믿음을 부여하시기로 작정하신 신자들을 의롭게 하시고, 양자로 삼으시며 영생을 주셔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시도록 모든 영원 전부터 결정하신 작정"이라고 정의했다.

김요섭 교수는 이 발제에서 "알미니우스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은 믿음을 가진 자를 구원하시기로 한 것이지 누구에게 믿음을 주시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벨기에 신앙고백이 구원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로 이해하는 데 반해, 알미니우스는 구원의 대상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한 것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알미니우스가 이와 같이 수정된 입장의 예정론을 주장한 데에는 하나님께 유기의 책임을 부과하지 않으려는 신학적 의도와 더불어, 믿음을 소유하고 끝까지 믿음의 살 것을 독려하고자 한 윤리적 동기부여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대상을 이미 모두 예정하셨고 그들에게만 믿음을 주신다고 보는 정통 칼빈주의의 예정론은 결국 인간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운명론이었다"고 했다.

알미니우스의 주장은 같은 레이든 대학의 교수였던 개혁주의 신학자였던 고마루스가 보이게는 용납할 수 없었고, 두 신학자 사이의 의견 대립은 홀란드 개혁교회 내의 치열한 신학적 논쟁으로 발전했다.

알미니우스는 이에 1608년 10월 홀란드 지역 의회에 출두해 벨기에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받았고, 자신이 반대하는 것은 베자와 고마루스의 선택전 타락설이고 그들의 사상은 벨기에 신앙고백 14, 16조나 하이델베르고 요리문답 20문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알미니우스는 "예지(foreknowledge)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원 전부터 그의 선행하는 은혜(prevenient grace)에 의해 믿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셨고, 그의 뒤따르는 은혜(subsequent grace)에 의해 끝까지 견인할 사람들을 아셨다"며 '예정의 작정이 하나님의 예지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했다.

김요섭 교수는 "그러나 알미니우스 자신은 자신의 예정에 대한 주장이 벨기에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입장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마루스와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알미니우스가 말하는 예정론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설명하려 한 예정론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면에서 성경적인 예정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레이든 대학과 홀란드 지역에서 발생한 이 신학적 논쟁은 1609년 알미니우스가 사망한 이후 네덜란드 국가 전체의 문제로 발전해 이 문제가 개혁파 교회의 일치를 파괴할 수 있는 상황으로 확대됐다"고 했다.

이에 "홀란드 개혁파 교회는 알미니우스의 예정론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거을 금지하고 이 사상을 설교하는 목회자들을 제제하려 했다"며 "알미니우스의 주장을 따르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세속 집권자들이 이 신학적 논쟁에 개입해 칼빈주의자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들은 이 요구의 공식적인 제시를 위해 에피스코피우스와 아이텐보게르트를 대표로 해 1610년 구다에 몽 이른바 '항론파'(Romonstrants)의 모임을 갖고 46명 목회자의 서명으로 홀란드와 서프리슬란트 의회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항의서는 네덜란드 교회의 표준 문서들을 개정해 줄 것에 대한 요구와 본문에서 수정이 필요한 핵심적 사항들을 이른바 '알미니우스 5대 신조'로 정리한 것이었다.

이는 '선택', '대속의 범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사죄', '믿음을 제공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거부 가능성', '성도의 견인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김요섭 교수는 "항의서 첫째 조항은 요한복음 3장 36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을 보존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가를 조건으로 삼아 이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로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영원 전에 변하지 않는 작정을 하셨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구원의 작정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벨기에 신앙고백 16조의 내용과 다른 주장이다"고 덧붙였다.

둘째 조항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죄의 구속과 용서를 얻게 됐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대속을 실제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김 교수는 "3장과 4장은 함께 묶어서 검토했는데 장은 일단 3장의 인간의 무능력에 대한 주장과 연결해 비록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협력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선을 행하거나 유혹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며 "또한 인간은 그 은혜를 거절하는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덧붙여 "인간의 합당한 반응이 있어야 구속의 은혜가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항의서 5장은 "우선 거듭난 사람의 삶 속에서 설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통해 승리할 수 있음을 말하면서도 역시 후반에서는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은혜를 상실한 가능성이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가르치기 전에,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특별한 검토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그는 "주어진 구원의 은혜의 확실성에 대한 이와 같은 항의서의 의문 제기는 구원을 완성해 주시는 은혜의 충족성을 강조한 벨기에 신앙고백의 진술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고 말했다.

항의서의 이 주장과 관련해 1611년 헤이그에서 양 진영의 목회자가 각각 6명씩 참여한 헤이그 회합이 소집됐고, 칼빈주의자들은 이 회의에서 '반항의서'를 제정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칼빈주의자들은 '반항의서'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은 알미니우스와 항론파가 말한 것처럼 예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기꺼움과 은혜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며 "'성령의 은혜에 대한 거절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들은 벨기에 신앙고백 14조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문답의 입장을 재확인하여 믿음과 회심은 부분적으로라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해서 불확실성을 제기한 항론파의 주장에 맞서 성경의 근거와 신앙고백 29조와 34, 35조의 내용을 근거로 삼아 성도의 견인의 확실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했다.

이같은 반항론파의 신학적 입장은 1613년 델프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다시 확정됐고 이 신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회의가 국가적 주도로 소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항론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도르트회의가 전국적인 회의로 소집됐다.

김 교수는 "이 모든 과정이 불합리한 정치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시 개혁파 교회들이 세워져 있던 다른 나라의 개혁파 목회자들을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려 했던 개혁주의의 신학적 기준과 이 기준 위에서 바른 신앙고백을 확립하고 공유함으로써 일치를 지키려 했던 교회', '그리스도의 주권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를 비롯한 사회구조 속에서 그의 몸인 교회를 구별된 신앙고백 공동체로서 세우려 했던 실천적 노력' 등을 높게 평가했다.

김요섭 교수는 "이런 가치들은 양적인 성장이나 세속적 영향력 확대에 도움이 세속적 효율성이 중요시되는 오늘 한국 장로교회의 상황에서 더 크게 주목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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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신학회 #김요섭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