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도에 들꽃피다 4' 표지   ©엘레빗 제공

남성 못지않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눈부신 활약을 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시를 통해 선보인 시집이 눈길을 끈다.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피다 4>(도서출판 얼레빗, 2014년 2월)는 좌우익을 총망라해, 여성독립운동가 20인을 발굴해 시와 삶의 얘기를 선보였다. 특히 이윤옥 시인은 <서간도에 들꽃피다1~3>을 통해 이미 60명의 여성독립운동가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시로 승화시킨 장본인이다. 4편까지를 합하면 8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세상에 소개한 셈이다.

이번 시집 4권은 앞서 펴낸 1~3권의 시집과 달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어떤 독립운동가는 옥중 수감사진을 게재했고, 가족사진, 증명사진을 게재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특히 촬영한 사진이 없으면 단체사진을 통해서라도 인물을 노출시키기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옥중사진을 선보인 고수복(1910~1933) 여성독립운동가는 1932년 9월 좌익노조준비위의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했고, 스물두 살의 꽃다운 나이에 고향 함경도를 떠나 경성에 와 독립운동을 하다 숨을 거둔 애국지사이다.

여성항일 조직인 한민애국부인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에 앞장선 김숙경(1886~1930) 애국지사는 남편 황병길 애국지사의 항일투쟁을 뒷받침했고, 해산일이 얼마 남지 않는 가운데도 일본 순사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남편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남편 황병길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김숙경 애국지사는 연설실력이 뛰어나 그의 연설장에는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김숙경·황병길 독립운동가 부부 이야기는 1991년 중국잡지 <연변여성> 10월호에 실리기도 했다.

김씨부인(1899~1919)은 남편 강태성과 함께 1919년 4월 5일 경기도 항남면 발안 장날 장터에서 시위군중 1000여명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을 하다, 무차별 발포를 한 일제 만행으로 남편과 함께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죽산 조봉암 선생과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낳았고,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해 활동하다 일본 순사에 의해 검거된 김조이(1904~납북) 여성독립운동가는 1931년 코민테른(국제공산당) 동양부의 지시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노력했고, 조선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남편인 죽산 조봉암(1898~1959) 선생은 이승만 자유당 정권시절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으로 유명을 달리한 인물이다. 사형 전에 그가 한 말은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죽산은 2011년 1월 대법원 무죄선고로 사형집행 52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다음은 사형 바로 전 밝힌 최후 진술이다.

"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수가 있느냐, 길 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60이 넘은 나를 처형해야만 되겠다니 이제 별 수 있겠느냐, 판결은 잘 됐다. 무죄가 안 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 사람이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 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난 1959년 7월 간첩죄로 사형 집행된 죽산 조봉암의 아내 김조이는 죽산 선생이 사형집행 9년 전인 1950년 6.25 전쟁이후 7월 중순경 서울에서 강제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3.1운동 당시 평양시내에서 시위를 주도한 박현숙(1896~1980) 애국지사,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박옥련(1914~2004) 애국지사,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봉준 애국지사의 아내로 중국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힘쓴 노영재(1895~1991) 애국지사, 병약한 몸을 이끌고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에 힘썼던 신의경(1898~1997) 애국지사, 해공 신익희 선생의 딸이며 독립운동가인 남편 김재호와 함께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펼친 신정완(1917~2001) 애국지사, 일제의 총부리도 뿌리치고 경기 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임명애(1886~1938) 애국지사 등의 활약상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임종선(1897~1923) 여성독립운동가는 대구 달구벌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애국지사이다. 조화벽(1895~1975) 애국지사는 비정규학교를 세워 피폐한 농촌의 학생을 모아 문맹을 떨치고 민족운동을 실천한 사람이다. 특히 조 애국지사는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 애국지사의 부인이다. 당시 조 애국지사가 영명학교로 부임하자 당시 1919년 4월 1일 유관순과 함께 만세운동을 한 유관순 부모(부 유중권, 모 이소제)가 현장에서 순국(1919년 4월 1일)하고 유관순 역시 잡혀갔으며, 유관순의 오라버니인 유우석도 감옥에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조 애국지사가 천애 고아가 된 유관순의 어린 두 동생을 친동생처럼 돌보았다. 이후 1923년 조화벽 애국지사는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 애국지사와 결혼했다.

감자골 양양의 민족교육자

조화벽

삼월 하늘 핏빛으로 물든
아우내 장터 비극
천애고아 된 시동생 거두며
불처럼 솟구치던 가슴 속
용암 덩어리

만세운동 현장에서
가슴에 총 맞고
선혈이 낭자하던 시부모님
끝내 숨지고

떠나온 고향땅 양양에서
아우내 솟구치던 애국혼
다시 되살려

삼일정신 올곧게
민족학교 이어간
그대는
양양 독립의 화신이어라

이 시집은 유관순(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애국지사 가족의 독립운동사도 기록했다. 부친 유종권(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과 모친 이소제(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작은 아버니 유중무(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사촌언니 유예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조카 유제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이종조카 한필동(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등도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인정해 훗날 정부에 의해 훈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3.1운동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일제의 요시찰 맹렬여성으로 낙인찍힌 주세죽(1899~1953) 애국지사는 박헌영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부위원장의 아내다. 1931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여성이기도 하다. 남편 박헌영은 1955년 북한 김일성 주석에 의해 남로당 숙청이 자행될 때 미국 첩자라는 이유로 처형된 사람이다. 주 애국지사는 상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주도하던 김단야와 재혼했으나 김단야도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일제 첩보기관의 밀정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한 차경신(태어난 지 모름~1978) 애국지사, 육아일기 쓰며 독립의 횃불 든 최선화(1911~2003) 애국지사, 의사이며 교육자로서 제주에서 독립운동의 화신이 된 최정숙(1902~1977) 애국지사, 동포의 비분강개를 토해냈던 여장부 최형록(1895~1968) 애국지사, 군자금 모아 광복 꽃피운 한영신(18871969) 애국지사, 천안 입장면 양대리에서 만세운동 전개한 14살 소녀 한이순(1906~1980) 애국지사, 한국교회 대표단 일원으로 기독교 민족운동을 전개한 홍애시덕(1892~1975) 애국지사 등의 항일 독립운동의 발자취도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 이윤옥 시인은 <문학세계> 시부문으로 등단했다. 한국외대 연수평가원교수, 일본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세계문인협회 정회원, 문학세계문인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데도 일조하고 있다.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이 있고,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1~4>을 펴냈다.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는 한중일로 번역해 출판했다.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최근 영문판 시집도 나왔다. <신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일본 속의 한국 출신 고승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 국어사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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