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중앙교회(담임 최종천 목사)는 재적 성도 1만3천여명의 규모와 분당 신도시 1호 교회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교회였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최종천 담임목사의 성품 때문이었다. 개척 후 지금까지 언론사 인터뷰가 단 2회에 불과할 정도다.

그러나 지난해 말 엄청난 파고를 겪으며 분당중앙교회와 최종천 목사는 졸지에 엄청난 유명세를 치렀다.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인 쪽으로. 최 목사가 한 여집사와 부적절한 관계이며 재정 비리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언론 보도와 소송까지 잇따랐다.

지난 10월 10일 소속 노회(예장 합동 평양노회)에서 발표된 5인조사위와 중앙회계법인의 조사 결과 누명이 풀렸지만 아직도 교회 내 일각에서는 그를 반대하고 있고, 잘못된 언론 보도를 접한 많은 이들도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교회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놔야 할 막중한 책임이 최 목사에게 주어졌다. 지난 1월 강단을 떠나 약 10개월 동안 자중하며 지내온 최종천 목사를 어렵사리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각오를 들었다. 다음은 최 목사와의 일문일답.

▲개척 후 지금까지 큰 고비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목회를 해왔던 최종천 목사는,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강단을 떠나신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만을 만나길 소원하고, 은혜만을 간구하고, 아무런 계획과 의도도 없이 하나님만 마주하길 바라며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 저의 부족한 것과 인간적 생각을 다 씻어내고, 하나님만 바라는 마음으로 바꾸시는 것 같았다.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뼈저리게 느낀 중심의 말이다.

처음 안식년에 들어갔을 때는 거의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고, 주일에는 내가 드러나지 않을 만한 큰 교회에서 조용히 예배드렸다. 지난 10개월 가장 부러웠던 것은 다른 교회들이 평화롭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28년 동안 사역자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다고 느낄 정도였다. 정말 마음이 힘들 때는 글을 썼다. 혹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고 싶어서. 그리고 ‘어려울 때 내가 해야 할 일 12가지’를 적어서 벽에 붙였다. ‘다른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만나는 일에 주력하자’, ‘어떤 경우도 나 자신을 표현하지 말자’, 그리고 맨 밑에 ‘절대 우울증에 빠지지 말고 마음을 밝게 가지며 하루에 몇 번씩 억지로라도 웃자’, ‘아내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며 마음을 다지자’ 등을 적었다.

그렇게 기도하자 다른 이들에게 소망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난 죽었다가 성도들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이기에, 앞으로 내 목회 인생은 성도들이 덤으로 준 제2의 인생일 뿐이다. ‘내게 은혜를 끼친 모든 분들에게 꼭 보답하자’, 그것이 내가 일어서야 할 이유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고통의 시간이었는데, 다들 내색하지 않고 믿음으로 잘 견뎌 줘서 고맙다.”

-이번에 노회에서 담임직 복귀 및 당회장권 회복을 결의한 데 대한 소감은.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의 모든 일을 결정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마음의 용기를 가지라고 하시는 듯하더라. 내가 가진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길 원하시고.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생각과는 관계 없이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 10개월간 강단을 쉬게 하시면서 깊은 눈물의 시간을 주셨다가, 다시 꺼내서 하나님의 은혜의 길로 인도하셨다. 지난해 교회에서 1천번제 기도를 시작할 때 첫번째 기도제목이 ‘분당중앙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렇게 될 것 같다. 정말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는 것이 어느 순간엔가 와닿았다. 지난 봄 노회에서 내 사임서가 보류됐을 때, 그만 두려 해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뒤부터는 그저 기도해왔다.

교회를 안정화시킨 뒤에 다른 교회를 개척해 떠나려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어떤 목사님이 ‘목사를 위해 애쓴 성도들을 버리고 가면 어떡하느냐’고 말씀하셔서 생각을 고쳤다. 구덩이에 떨어진 목사가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도들로 하여금 목사를 꺼내주게 하셨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정말 이 목회자의 자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서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그러다가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았나. 사람의 계획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그분께 삶을 맡기고 가는 것이다.”

-목사님에 대해 제기됐던 여러 의혹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내 입으로 이야기한다는 게 쑥스럽다. ‘날 설명하려 들지 말자’, ‘나를 설명할 때가 되면 모든 일을 그만 두자’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내가 목사인데 목사로서 나에 대해 의심을 해야 할 정도가 되면 목회를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적극 변호하고 그러지 않았다. 성도들과 진실공방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소신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더라. 모든 일들이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주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사과문을 쓰면, 그것이 언론 보도와 형사 고발의 증거자료가 되어서 돌아왔다. 인간 사는 세상의 씁쓸한 면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재정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지금껏 목회해오면서 단 한 번도 개인적으로 촌지를 요구하거나 부당한 지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어떤 교인에게도 개인적으로는 신세진 적이 없었다. 교회에서 나를 공적으로 전적으로 책임져줬고, 나는 교회에 내 모든 것을 헌신했다. 그래서 나 자신은 항상 떳떳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그런 마음도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동안 치열하게 주의 일만 하다가 때가 되면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지려고 숨어지냈는데, 이제 내 모든 부족함이 샅샅히 다 드러났다. 오히려 감사하다. 숨길 것도 변명할 것도 없다. 나 같은 사람도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성도들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는 최종천 목사. ⓒ김진영 기자

-왜 그리 서둘러 사과문을 내고 사임을 발표하셨는지 의문이 남는다.

“사과문은 처음에 저에게 문제를 제기하던 분들이 내면 좋겠다고 하기에 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이 썼다.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더 낮아지고 돌이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진정성이 없다고 하고, ‘목사가 얼마나 죄가 많으면 사과문을 쓰겠느냐’고 하니 난감했다. 상대방의 사과까지도 그렇게 해석한다면 서로 진정한 교통과 교제가 이뤄지기 어렵지 않겠나.

사임 발표 역시 자꾸 하지 않으면 언론에 보도하고 고소하겠다고 하니 불가피하게 했다. 그 땐 교회가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세상의 모범이 안 되며 반기독교 세력에 의해 폄하당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 하나 그만 두면 깨끗이 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결국 그것이 아니었다(반대측은 최종천 목사가 사임서를 낸 뒤에도 그를 고소하고 언론에 보도를 강행했다. -편집자 주).

내가 자꾸 말을 번복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참 힘들다. 처음엔 내가 그만둔다고 했었는데 노회에서 유보하니 ‘하나님 뜻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 비우고 지리산으로 내려가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고소하겠다고 하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고소고발만은 싫었다. 성도들과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게……. 그런데 피할 래야 피할 수 없게 됐으니 할 수 없이 이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처음엔 나를 비판하는 분들이 의로운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일을 그분들과 상의해서 진행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아무리 힘 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서 있을 때 뒤에 누군가 와서 밀면 넘어지게 돼 있다. 나도 목회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야단 칠 때가 있는데, 앞으로는 가급적 덜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용서, 사랑, 이해, 포용이 더 필요하다.”

-강단 복귀 시점은 언제쯤인가.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서두르지 않고 기도하며, 주변 분들의 모든 의견을 들어서 가장 좋은 시기에 할 것이다.”

-교회 정상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려 하나.

“모든 일을 성도들과 함께하고, 당회와 의논하며 할 것이다. 어려움을 겪어 보니 내 마음과 뜻이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무책임한 말 같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만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한다.

우리 교회는 사실 행정이나 모든 시스템이 잘 돼 있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규정도 잘 준수했고. 그런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라는 게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기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기준을 만들어서, 거기에 맞춰서 가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목회를 잘해보겠다거나 위대한 사역을 이루자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양들과 잘 교류하며, 돌보고 돌봄받으며……. 지금까지 제가 양을 돌본 줄 알았는데 양들이 날 돌보더라. 어리숙한 목사를 성도들이 살렸다.

이제 우리 교인들에게 ‘나를 보라’고만 하면 설교가 될 듯하다. 어제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러 갔을 때도 ‘나를 보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있고 참고 견디다 보면 결국 해결된다고. 기도하면 결국 응답해 주신다고. 삶의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싶다.”

▲최종천 목사는 이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교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지금까지는 ‘나는 이런 사람이니 이렇게 간다’는 게 내 소신이었다. 내 소신껏 분당중앙교회가 이렇게 왔는데, 그게 개척자의 장점이자 한계더라.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나를 반대하건 찬성하건 하나님의 사랑이 안에 있으면 나머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그에게 없던 허물이 새로 생겨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그 허물은 있었지만, 그를 사랑하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부족하다면, 그동안도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잘 돌봐주셨던 것이다. 그동안 돌봐주신 것만이라도 감사하다. 그러나 저를 아직도 반대하시는 모든 분들도 사랑의 마음을 다시 회복하시고, 부족함과 허물을 덮어주시는 더 큰 사랑의 마음에 휩싸이셔서 마음이 편해지셨으면 한다.

이것은 오해받을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는 예전에 설교할 때도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라고. 그것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 끝날 때까지 그렇게 산다면 서로가 기쁜 삶이 될 것이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억지로 파내서 알려 하지 말고, 그저 덮어주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고치게 돼 있다. 그것이 더 큰 사랑, 위대한 사랑이다.

나에겐 한국교회가 15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사회에 무언가를 기여하기를 바라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걸 보면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군가 나를 이해 못하면 야속하다 생각 않고, 오히려 그를 이해하고 나를 수정하면서 살겠다. 이해하기로 작심하고 살아야 한다.”

-분당중앙교회의 일은 교계 전체에 있어서도 큰 아픔이었다. 한국교회에 하시고픈 말씀이 있다면.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릴 자격이나 위치가 되지 못한다. 다만 마음의 소원이 있다면 더 큰 사랑과 은혜를 가지고, 보다 멀리 보고 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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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 #분당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