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도통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과 그 어머니이니까 여염집 모자처럼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인데, 성가족 그림에서 아기예수가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자랐는지에 대한 실감나는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기예수의 유아시절의 놀이는 무엇일까 궁금할 뿐이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공생애 이전 기사는 적은 편이다. 성전에 아기를 바치러 올라간 후에는 '나사렛에서 순종하며 받드시더라'는 기사와 열두 살 되던 해 유월절에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으며,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란 기록이 있다. 의사 출신의 과학도인 누가가 전해준 예수의 유소년시절은 효도와 지혜와 사랑과 은혜란 용어로 함축할 수 있으나 정경에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화가들은 외경과 전설을 인용하여 유년기 주제를 그리고 있다.

성모자 그림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보면 아기예수의 장난감이나 놀이가 차지할 영역이 극히 제한적임을 이해하게 된다..

AD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성모에게 "신을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란 뜻에서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이름과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 때부터 성모와 아기예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아기예수는 손에 두루마리 성경을 들고 성모 옆에 정좌해 있다. 아기예수는 작게 그렸지만 얼굴을 보면 어른 형상이고 인간에게 복을 내리는 모습이다.

13세기는 마리아의 전성시대였다. 많은 대성당들이 마리아를 높여 부르는 존칭인 "노트르담"이란 이름으로 봉헌되고, 마리아 송가가 울려 퍼졌다. 이 당시 성모자를 대형 제단화로 그린 마에스타(Maesta)에는 옥좌에 앉은 장엄한 마리아가 중심이고 예수는 엄마 옆에 서있는 작은 왕자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오면 아기는 옷을 벗은 순진한 모습으로 더러는 엄마의 젖을 먹으며 옹알이를 하는 도상도 나오지만 다정하게 웃는 모습은 찾기 어렵고, 아기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얼굴은 오히려 슬픈 기색이다. 훗날 예수의 수난을 예감한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성서화 중에서 엄마와 아기의 채취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 하나가 있다.

마사초ㅣ<마돈나와 아기예수>ㅣ1426년경ㅣ파넬에 템페라ㅣ우피치미술관, 피렌체 MasaccioㅣㅣC.1426.ㅣTempera on panelㅣ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마사초의 <마돈나와 아기예수>이다. 마사초의 후원자이자 이 그림의 소장자의 이름을 따서 '카시니추기경의 마돈나(Madonna Casini)'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 그림이 더 유명한 것은 '턱을 간질이는 마돈나(The Tickling Madonna)'라는 애칭을 갖고 있으며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두 손가락을 나란히 펴서 아기예수의 턱을 간질이고 있다. 아기는 "엄마, 간지러워요!"하며 엄마의 손을 붙잡고 웃음을 참고 있다. 마치 요즘의 엄마들이 아기에게 간지럼을 태우면 아기는 까르륵 까르륵 하며 웃는 그런 행복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참으로 파격적인 구도이다.

아기의 목에는 양쪽으로 늘어뜨린 붉은색 장식옷(pendant)를 입고 있다. 이런 옷은 르네상스 시대에 아기들에게 인기 있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성서화에서는 아직도 이 옷이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의 양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모의 얼굴에는 아기에 대한 보살핌, 사랑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우울함이 함께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마리아가 이 아기의 앞날에 닥칠 죽음에 대한 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손가락을 목에 대고 슬픈 모습으로 축복하는 것과, 모자간에 놀이하는 순간을 가지는 두 가지 몸짓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성가족의 놀이그림에는 모두 음울함에서부터 행복을 발산하는 기운이 함께 감도는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젊은 화가인 마사초의 본명은 구이디(Tomaso di Somone Guidi)로서 일찍이 스승 마솔리노를 도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브랑가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여기서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누드로 그리면서 아담의 하체를 나뭇잎으로 가리지 않고 그려서 이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낙원추방 앞에서 무안하게 하기도 한다.

마사초는 그 때 이미 오늘날의 원근법과 같은 명암기법을 그림에 적용하여 성모자와 안나, 삼위일체, 성전세를 바치는 예수 등 불휴의 명작을 남겼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그의 천재성을 시기한 한 경쟁자가 그에게 독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예수의 실제 삶은 어떠했는가? 교회만 보이던 암흑기였던 중세의 아기예수 그림에서처럼 인간의 채취가 나지 않는 고고한 자태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의 공생애는 뜨거운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땅에서 버림받은 과부와 창기와 여인들, 죄인과 세리들, 장애인과 병자와 어린이 등 소외된 무리와 함께한 열정적인 삶이었다. 복음서에 이러한 희망이 없는 민중들을 나타내는 용어가 이른바 "오클로스"(oklos)이다.(성종현, 신약총론, 장신대출판부, 1991. p.459)

유대의 구질서로부터 배척당한 그 분이지만 신약에서만 175회가 나타나는 천대받던 오클로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기원전과 기원후의 분기점이 되었다.

"엄마! 간지러워요"하던 아기예수와 엄마간의 사랑의 대화와 넘치는 인간미가 기원후의 인류 역사를 관통하여 면면히 흐르고 있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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