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제 야곱과 에서는 팥죽 사건과 축복 가로채기로 인해 서로 원수가 되어 20년 동안 이별의 세월을 브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던 야곱은 400명의 사병을 이끌고 온다는 에서의 소식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얍복 나루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치열하계 씨름하며 자신의 꾀를 내려놓은 야곱은 깊은 영적 변화를 겪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얻었습니다. 400명을 거느리고 다가오던 에서는 변화된 야곱을 마주하자마자 오히려 그의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리며 극적인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는 것이 관계 회복의 유일한 열쇠라는 점입니다. 남북문제 역시 서로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나부터 그리고 우리 공동체부터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임용석 - 통일을 묻고 성경이 답하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감정에 갇히지 않습니다. 감정은 사랑의 불꽃일 수 있지만 사랑은 그 불꽃을 지키는 장작입니다. 감정은 바람처럼 왔다가 가지만 사랑은 떠나고 싶은 남에도 남아 있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성경적 의미의 사랑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의지와 헌신으로 완성된다." 가끔씩 사랑을 감정으로만 생각하면 큰 오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설레지 않으니 사랑이 끝났나 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설렘은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입구일 뿐입니다. 입구가 사라졌다고 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얼마나 뜨겁게 느끼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책임질 수 있느냐"로 추정됩니다. 결국 사랑은 심장의 떨림이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감정은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 수 있지만,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언제나 선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마지막에 우리가 기억하는 사랑은 우리를 설레게 했던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곁에 머물러 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인생의 끝에서 사랑은 우리에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설렜느냐"고, 대신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끝까지 곁에 있었느냐"고 말입니다.
김응설 - 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가지 질문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고, 맡은 은사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기 위해 충성하게 하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은 신자의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특권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욕망이 있는 자들이다. 단순히 한 모금의 생수가 아니다. 온 몸을 적시는 물을 원한다. 온 영혼을 새롭게 하는 생수, 다시는 목마름이 없는 생수를 원하는 것이다. 사모하는 심령을 언제나 만족케 하시는 주님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처럼 온전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장성한 분량이 차기까지 성장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자기 희생이며,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목사의 존재 이유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각오로 사역하는 데 있다. 성도의 품격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데서 드러난다.
서창원 - 하나님이 해 주신 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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