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하비 키야니 박사의 기고글인 ‘로마보다 갈릴리가 중요한 이유'(The importance of Galilee over Rome)를 10월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키야니 박사는 말라위 선교사이자 신학자로서 CMS(영국) 개척자 미션 트레이닝의 아프리카 기독교 프로그램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발리에서 열린 하가이 인터내셔널(Haggai International) 글로벌 자문위원회 강연에서 필자는 첫 슬라이드에 “갈릴리에서 나를 만나라”라는 문구를 띄웠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초월하다’(Transcend)였다. 주제 본문인 이사야 55장 7~9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높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강연 제목은 복음서의 부활 기록에서 가져왔다.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며,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리라고 전했다(마 28:7; 막 16:7). 무덤을 떠난 여인들을 만나신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마 28:10).
열한 제자는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께서 지정하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경배했지만, 여전히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대사명을 맡기셨다(마 28:16–20).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부르심은 의미심장하다. 마태복음의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는 장소로는 다소 의외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제국의 주요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나 안디옥, 혹은 수도 로마로 시선을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이끈다.
왜 로마가 아니라 갈릴리인가
갈릴리가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순수한 공간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중심은 악하고 모든 변두리는 선하다는 단순한 구분도 적절하지 않다. 갈릴리 역시 고유한 역사와 사회적 위계가 존재하던 현실의 장소였다.
마태복음에서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가르치시며,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현장이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사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갈릴리로 오라는 부르심은 지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교회가 어디에 서서 누구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묻는다. ‘로마가 아니라 갈릴리로’라는 표현은 제도적 권력의 중심보다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서 교회의 사명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초대다.
사역을 계획하기 전에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통제하려 하기보다 겸손히 섬겨야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사람과 장소에서 복음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더 높은 길은 일상을 새롭게 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길보다 높다고 말한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면은 그 고백을 구체적인 장소에서 생각하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그분의 길을 배웠던 갈릴리로 부르셨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일이 권력의 중심을 장악하는 데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가르치고 치유하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섬기며, 이웃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는 드러난다. 하나님의 더 높은 길은 일상에서 멀어지는 길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하는 길이다.
갈릴리는 제자들이 선교를 배우는 현장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시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통을 살피며, 긍휼로 응답하는 법을 배웠다. 복음은 말씀의 선포와 함께 치유와 환대, 식탁의 나눔과 관계의 회복을 통해 드러났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부르신 일은 그곳에서 배운 삶을 기억하게 한다. 제자들은 전해야 할 메시지뿐 아니라 그 메시지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방식도 배웠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영향력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그들의 증언에 포함됐다.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던 장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선교는 누구의 목소리에서 시작되는가
오늘날 교회와 선교단체는 전략과 프로그램, 예산과 목표를 세우며 사역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준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지에 앞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회의실에서 세운 계획만으로 지역사회에 접근하면 그곳을 해결해야 할 문제의 집합으로 보기 쉽다. 이미 답을 정해놓은 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경청은 이러한 순서를 바꾼다.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두려워하는지 먼저 묻게 한다. 또한 그들의 삶 속에 이미 어떤 희망과 역량이 자리하고 있는지 발견하게 한다.
마태복음은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을 보여준다. 주님은 병들고 배고픈 사람, 슬퍼하고 배척당한 사람, 삶에 지친 사람을 보셨다. 그들을 메시지를 전달할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으셨다.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만나 필요에 응답하셨다. 마태복음 9장에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첫걸음도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할 만큼 곁에 머물고, 이웃에게 기꺼이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혜와 도움이 언제나 우리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만 흐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변두리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복음
마태복음은 이사야가 예언한 ‘어둠 속에 비치는 큰 빛’의 이미지를 통해 갈릴리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한다(마 4:12–16).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치셨다. 공생애가 시작된 갈릴리는 복음서의 마지막에 모든 민족을 향한 사명이 주어지는 장소로 다시 등장한다.
갈릴리는 가난과 소외를 뜻하는 추상적인 상징만은 아니다. 성경 역사 속에 존재했던 실제 장소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어부들을 부르고 무리를 가르치셨으며,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셨다. 쉽게 배제되던 이들에게 함께할 자리를 마련하셨다.
이러한 사역은 복음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줘야 한다. 마태복음에서 복음은 가르침으로 선포되는 동시에 치유와 음식의 나눔, 환대와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하는 내용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누구의 삶을 통해 복음의 의미를 배우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이미 편안함을 누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가난과 이주, 인종차별과 외로움, 소외를 겪는 이들에게 복음이 어떤 소식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의 시각이 성경과 신학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놓쳐온 가르침과 과제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
교회는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교회는 이미 다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점이다.
제도와 조직은 사람을 보호하고 선한 일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조직이 섬겨야 할 사람보다 자신의 평판과 성장, 권력자와의 관계를 우선할 위험도 있다. ‘파급력’과 ‘도달 범위’처럼 익숙한 사역 용어조차 사람을 성과와 실적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길을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주님은 권세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 큰 사람이 되려는 이는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공적인 문제에 침묵하거나 정의를 위한 행동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교회가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그 불의를 만들어낸 독선과 지배의 방식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다시 갈릴리의 마음으로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경배하는 가운데서도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명을 맡기지 않으셨다. 자신이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사명의 토대는 제자들이 확보한 세속적 권력이 아니라 주님의 권위와 약속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배운 가르침을 전하고, 그분의 길을 살아가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증언하도록 부름받았다.
‘로마가 아니라 갈릴리로’라는 부르심은 교회의 삶이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배우고 있는가. 누구의 아픔과 필요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가. 다른 사람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교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길은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셨던 갈릴리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웃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겸손히 섬기는 법을 다시 배우는 데서 교회의 사명은 새롭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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