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들어가기(서론): ‘나라 전체가 고고학 박물관인 나라’, 그리스 25개 도시 기행
“나라 전체가 고고학 발물관이자 돌무더기 하나에도 역사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신화와 역사, 철학과 축제의 나라 그리스를 만나다” (책 뒤 표지)
그리스는 어떤 나라일까? 민주주의 발상지, 신화의 나라, 파르테논 신전! 고대 철학의 도시, 축제의 나라. 동·하계 올림픽이 열릴 때 마다 성화의 출발지! 사도 바울(전도팀)이 누비며 전도했던 도시들과 여러 섬들의 나라! 고린도, 아테네, 빌립보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그리스의 신화와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진리는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신과 인간의 경계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서양문명의 밑바탕을 이루었다” (p. 8, 저자의 머리말, 서구 문명의 못자리가 그리스이다)
<그리스 도시를 걷다>(산지니, 2026, 271페이지). 저자 김수길 선교사는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후 부산에서 개척목회를 하다 1997년 어린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온가족이 그리스에 도착하였다. 그는 그리스에 거주하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종족과 30년’을 살아왔다.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 이동하며 살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많은 곳을 다니게 되었다. 그간 기록하여 모아두었던 글들, 한국의 기독교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와 연재하였던 글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이 본서이다.
CBS 8부작 다큐멘터리 <바이블 루트>, 4부작 <크리스천 르네상스>, <신 사도행전>의 그리스 현장 코디로 참여. CGN 다큐멘터리 <땅끝의 증인들> 김수길 선교사 사역이야기 소개. 최근 2024에 방영된 CGN 다큐멘터리 <바울로부터>에서 현장 코디로 함께하였다. 저자는 복음기도신문에 <십자군 이야기>를 현재도 연재중이다.
전체 3장: 1장 ‘그리스 도시를 걷다’ - 신화와 역사의 길을 따라서 (10개 도시). 2장 ‘사도바울의 길을 걷다’ – 성경 속 그리스 이야기 (15 도시와 섬). 3장 ‘그리스인의 영혼 속을 걷다’ – 철학과 축제 그리고 삶. 서평자는 ‘성경 속 그리스 이야기’와 ‘철학과 축제 그리고 삶’ 일부를 간단히 요약하며 서평을 할 것이다.
1.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BC 356-323)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만화와 이야기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익숙하게 보고 듣던 그리스인들이다. 사실은 알렉산더 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이다. 알렉산더가 13살 무렵부터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 아리스토텔레스다. 마게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는 오랜 친구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신의 아들을 위해 특별한 배움터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혼자만 가르치지 않았다. 당대의 장군과 대신들의 아들 또래들을 함께 모아 합숙 훈련을 시켰다. 그곳이 마케도니아의 펠라 왕궁안의 ‘미에자 아카데미’. 후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아카데미’로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김수길 선교사는 어느 날 4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서 철학과 정치, 의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가르쳤다.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과 지적 태도를 심어 주었다. 훗날 알렉산더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아마 이 시기의 교육 덕분이 아닐까.” (p. 204, 김 선교사의 역사를 꿰뚫어 읽어내는 시선이 날카롭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알렉산더는 각각 어떤 관계였을까?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과 사제지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의 스승이다. 그는 물리학/형이상학/시/생물학/동물학/논리학/수사학/정치학/윤리학/도덕/과학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저술하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철학자!
- 알렉산더는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BC356년에 태어났다. 필리포스 2세는 알렉산더가 13세 때 아리스토텔레스를 초청 3년간 윤리학.철학.문학.정치학.자연과학.의학 등을 가르침을 받았다. 알렉산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감명 깊게 읽어 동방 원정 중에도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교정한 일리아드를 읽었다.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갑자기 암살당했을 때, 알렉산더는 20세 청년이었다. 갑자기 왕관을 쓰게 되었지만 그는 오랜 그리스인들의 숙원, ‘페르시아에 대한 복수’라는 시대적 사명 완수위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했다.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12년 만에 ‘세계를 정복’한 그는 BC 323년 아직도 젊은 나이(32세) 세상을 떠났지만 그로부터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우기 시작하였다. 마게도냐에 수년 전에 방문했을 때, 거리 곳곳에 알렉산더의 동상이 서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의 만남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선 사건이었다. 철학자와 장차 세계를 정복할 왕의 만남은 곧 헬레니즘 세계의 씨앗이 되었고, 함께 배운 동료들은 제국을 이끌어가며 인류 역사의 거대한 전환을 이끌어 냈다” (P. 208)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와 소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품으려는 정복자’가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사실상, 헬라의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이 만남 속에서 헬레니즘 문화라는 꽃이 만개했다.
2. 그리스 ‘집시(보헤미안)’는 누구인가? “나는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원한다”
한국교회(개신교)가 파송한 선교사는171개국, 21,6221명이다(한국선교연구원(KRIM) 2024년 통계) 김선교사는 집시를 대상으로 선교를 감당하는 유일한 선교사다. “집시는 어떤 사람들일까?” “왜 그들은 방황하며 여러 지역과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할까?” “왜 집시일까?”
“각 시대는, 우리 시대도 예외는 아니지만 집시의 존재에 의해 축복받은 혹은, 마지막 시대라고 여겨져 왔다. (중략) 즉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자들, 이제는 길들여졌고, 유랑하던 그들의 삶의 방식도 유행을 벗어났으며 마침내 집시의 시대가 과거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집시들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보존해 가고 있다” (pp. 252-53, <집시: 유럽의 운명>에서 인용)
‘집시(Gypsy)’는 이집트서 도망친 사람으로 ‘에집션(이집트인)’으로 불렀다. 각 나라의 집시를 일컫는 단어도 다양하다. ‘보헤미안’은 프랑스에서 집시를 일컫는 말이다.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서 14세기 보헤미아 왕이 유랑민족인 집시에게 거주와 통행을 허락하자 이 지방에 집시가 많이 살게 되었고 15세기경에 프랑스인은 집시를 보헤미안이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부 도망자’란 뜻의 ‘플라멩코’ 집시는 ‘안달루시아의 집시’이다. 이들은 산속의 토굴과 광산에 거주하며 농노(農奴)로 살았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한판 음악축제를 벌였다. ‘플라멩코’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삶의 절규요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었다.
‘플라멩코와 집시’: → 스페인의 최고의 관광 상품/국민 예술
집시들의 태동과 이동경로에 대한 정확한 문서와 사료도 없다. 따라서 그들의 민족 기원 이론들도 다양한 가설들일 뿐이다. 유럽의 집시들은 “그들을 보호해 줄 자치 군대나 그들을 대신할 정부도 없었다. 죽어 한 조각 뼈 묻을 고향도 그들에겐 없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도는 생활이었기에 통일된 언어 체계와 가장 기본적인 사회구조 형성조차도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약점을 가진 집시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적인 억압과 편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다” (p. 259, 참으로 집시들의 나그네 중의 나그네다.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처량한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마25:40-45)다)
이런 가장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집시들을 주목하며 집시선교를 시작한 김 선교사가 갑자기 더 위대하게 보인다. “아내와 내가 27년 전 그리스에서 로마(집시) 사역을 시작할 때는 주로 알바니아에서 그리스로 넘어온 알바니아계 집시를 대상으로 했다” (p. 260) 현재 그리스에는 이렇게 알바니아와 루마니아, 튀르키예에서 온 집시가 대부분이다.
“집시 민족의 언어에는 ‘소유’와 ‘의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유와 의무를 몰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았으며 또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의무’와 ‘소유’는 삶에서 잃어버린 두 단어이지만, 다른 두 단어 ‘사랑’과 ‘자유’는 그들의 찾고자 하는 전부였다” (p. 267, <집시: 유럽의 운명>에서 인용)
3. ‘그리스인의 영혼 속을 걷다’(3장): 철학과 축제 그리고 자유로운 삶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 축제와 신화의 나라요 헬라 문명을 꽃피운 나라였다. 지금은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 IMF 구제금융을 받는 가난한 나라다. 현재 그리스 인구는 천 만을 조금 넘는다. 한국의 1.5배인데 인구는 생각보다 적다. 그리스 인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해외에 살고 있다. 그리스 하면 이아손, 아이네아스, 안티고네, 디세우스 등 신화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의 수많은 젊은이 들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얼마전 알바니아에 방문했을 때 젊은이들이 대부분은 고국을 탈출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 나가서 학업과 직업을 찾아 나간다고 하였다. 그리스 역시 고국을 떠나서 유랑길에 나선 사람들은 일상의 삶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는 투쟁이다. 그래서 집 떠나면 고생이다고 했던가?
“신화와 비극에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
“매년 그리스에 여름이 오면 시내의 극장과 대중 관람시설은 찾는 사람이 없기에 문을 닫는다. 대신 야외 극장을 열거나 가까운 유적지의 원형극장에서 한밤 공연을 연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더운 날씨 탓이기도 하리라. 오래된 유적지 안의 원형극장에서 달빛과 조명이 고대 그리스 비극을 공연하는 공연자를 비추면 관객들은 모두 연극에 취하게 된다. 과거와 현실을 구분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착하게 살자’라는 비극의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느끼는 것이다” (pp. 213-14, 그리스 여름밤의 ‘비극’공연과 카타르시스)
4. ‘사도 바울의 길을 걷다’(2장) - 성경 속 그리스 이야기 17곳 흥미진진한 ‘성지순례길’
그리스는 사도 바울이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이 2,000년전 당시 ‘전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였다. 본서에서 바울이 발길이 닿았던 지명들을 17곳을 생동감 넘치게 소개하고 있다. 서평자가 볼 때 2장(pp. 89-202)이 본서의 하이라이트이다.
바울이 환상 속에서 마게도니아 사람을 만난 곳(네아폴리스), 유럽 기독교화의 첫걸음(필리피), 바울이 거닐었던 시장터가 남아있는 도시(데살로니키), 신사적인 사람들의 도시(베뢰아), 바울이 베뢰아에서 배를 타고 떠난 항구(디온), 작고 소박한 항구에서 발견한 바울의 흔적(메토니), 아레오 파고스 언덕에서 벌어진 논쟁(아테네), 로마인에 의한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도시(코린토스), 네로 황제가 사랑한 도시(이스트미아), 소아시아로 가기 위한 관문(겐그레아), 유럽 최초의 문명이 태동한 곳(크레타), 바울이 겨울 보내기를 원했던(니코폴리스), 에게해의 발코니(사모트라케), 바울의 발길이 닿은 그리스 섬(로도스, 코스, 가브도스), 천국의 비밀을 열어준 계시의 섬(파트모스). (pp. 87-199, 바울 전도팀의 발걸음 소리가 저만 치에서 들리는 듯 하다)
바울선교팀이 2번째 선교여행 중에 소아시아 끝인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행16:9,10) 당시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 사람은 서로 구별할 어떤 근거가 있을까? 어떻게 사도 바울은 꿈속에 나타난 그 사람이 마게도니아 사람인 것을 알았을까? 환상속에서 바울을 불렀던 문제의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고 김선교사는 소개했다.
텐트메이커(tentmaker) ‘바울과 네로황제’
바울이 2,3차 선교여행 중 2년 여간 머물렀던 전도에 힘썼던 코린토스를 떠나며 그는 뵈뵈 집사에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냈다. 코린토스 광장서 바울이 설교했던 강단이 지금도 남아있다. 코린토스 운하 절반 지역이 ‘이스트미아’다. 네로 황제의 이스트미아 제전(AD 62)은 2년마다 개최되었다. 당시엔 4년마다 열리던 올림피아 제전보다 아테네인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이스트미아 제전에서 우승한 아테네 사람에게 100 드라크마 우승상금을 주었다.
2년간 코린토스서 살았던 바울은 경기가 열렸을 때 자신이 만든 작은 천막들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참관했던 경기 종목들, 선수들을 보면서 후에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네로 황제도 사도 바울도 다 같이 코린토스와 이스트미아는 특별한 지역! 불행하게도 네로의 광기에 의해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던 것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9:24-25)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아레오 파고스에서 사도 바울의 설교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그리스 인구의 1/3이 몰려서 산다.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적과 유물들은 고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아테네를 너무나 좋아했던 하드리아누스(AD 117-138) 황제는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을 자신의 신전으로 만들었는데 그가 세운 신전의 대문이 지금의 ‘하드리아누스 문’이다. 아테네가 자랑하던 파르테논 신전은 UNESCO를 상징하는 로고이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철학자들에게 변증설교하는 바울 선배 선교사의 음성이 저만치 서 들리는 듯하다.
5. ‘역사와 신화의 길을 따라서’(1장) -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수도원 ‘마테오라’
신화와 역사의 고향(텔피), 마게도니아 왕국의 첫 번째 수도 (베르기나), 천년의 전통을 지켜온 동방정교의 성진 (아토스), 수천 년을 변함없이 흘러내리는 온천 도시 (테르모필레),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수도원 (메테오라), 강으로 둘러싸인 양면의 도시 (암피폴리), 영화와 신화의 도시 (볼로스),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요아니다), 선박왕 오나시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섬 (레프카다), 그리스 속의 영국 (케르키라).
저자는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10곳을 직접 방문하였던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직접 발로 걸어서 역사와 신화가 숨 쉬고 있는 현장을 답사한 후에 쓴 글이라 더욱더 흥미진진하다. 그러면 역사와 신화는 어떻게 서로 다를까? 그 경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적 기록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그리스의 출신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BC 484-425)는 그의 <역사>에서 밝혔다. “오 나그네여! 스파르타에게 말해다오! 우리가 여기에 누웠다고, 약속을 지켰다고. 헤르도토스, <역사> 중에서” (p. 49)
10 곳 중에 서평자가 유일하게 방문하였던 ‘마테오라’!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을 보면서 “와우! 세상에 이런 곳에 어떻게 수도원을 세웠을까?” 놀람과 감탄사를 연발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마태오라는 ‘하늘에 뜬 돌, ‘공중에 메달린 돌’이란 뜻이란다.
“내 눈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묘막측(神妙幕測)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 위에 인간의 믿음으로 세워진 수도원들이 영화 속의 무대가 되기도 하며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불러 모은다” (p. 51, 서평자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을 이곳에서 처음 보았다)
나가는 말(결론):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삶의 흔적이자 신앙의 여정이었다”
“그리스의 햇살 아래에서 살아온 소소한 일상과, 신앙 속에서 겪어온 기쁨과 눈물의 이야기들이 이 책을 집어 든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다가가기를” (김수길 선교사)
<그리스 도시를 걷다> 이 책을 쓰게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선교현장의 선교사로서 글쓰기를 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감당해야 할 수많은 일과 사역들. 늘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기에 바쁘다. 크고 작은 사건들과 상황 속에서 마음 속 울림들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어느 날 그리스에 후배 교수가 찾아왔다. 대화중에 그는 “그리스 현지에 사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 이곳에 사시면서 직접 보고 겪은 이야기를 글로 남기신다면, 참 귀한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p. 5, 후배 교수가 들려준 지혜의 조언에 따라 글쓰기를 시작하여 첫 번째 나온 책이 본서이다)
역사와 신화의 나라에 살면서 집시영혼 구원을 위해서 이곳저곳 함께 그리스를 누비면서 경험한 것들을 녹여내어 쓴 글들이기에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저자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끝으로 김수길 선교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서평독자들에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스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유적을 밟는 일이 아니다. 그 길 위에는 수천 년의 신화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대리석 계단을 오를 때, 나는 페리클레스의 발걸음과 플라톤의 눈빛을 동시에 느낀다. 신화 속에서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머물렀다는 언덕은, 사실 인간의 희망과 두려움이 빚어낸 거대한 이야기의 무대였다.
“오랫동안 살아온 나라지만,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여전히 새로운 떨림을 느낀다. 도시의 돌 하나에도 이야기가 스며있고, 이름 없는 골목에도 신화의 잔향이 남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며 그리스의 도시가 들려주는 속삼임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pp. 6, 7 저자 머리말)”
“나는 바울이 기도하며 눈물로 글을 남겼던 교회들을 떠올린다. 테살로니키, 필리피, 코린토스… 그곳에 가면 여전히 그의 숨결이 남아 있다. 돌무더기와 유적만 남은 곳 같지만, 그 도시들은 지금도 살아 있다. 바울이 그토록 사랑했던 영혼들의 흔적이 그 땅의 공기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단순히 옛 교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첫 숨결과 기도의 눈물을 함께 마주하고 싶다” (p. 7)
서평후기
김수길 선교사는 총신 신대원에서 함께 공부했다. 그는 가진 것 없지만 언제나 넉넉하고 부요하다. 환하고 호탕한 그의 ‘털보웃음’은 백만 불짜리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의 집시를 주목하였을까? 30년전 선교의 하나님의 강권적(强勸的) 부르심에 대책 없이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였다. 개척하던 교회를 인계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어린 4남매(11살, 8살, 6살, 4살)를 데리고 그리스로 향하였다. 지난 5월 본서가 출판되자마자 곧바로 내게 보내주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종족을 따라 그리스를 곳곳을 떠돌며 선교할 수밖에 없었다. 정처 없는 나그네 선교사 생활! 그런 과정에서 그리스 곳곳의 숨겨진 역사를 알게 되었다. 신화의 나라이기에 호기심 많은 4자녀들에게 재미있는 신화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자상한 모습이 보인다. 언젠가 김 선교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도 바울의 전도현장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데이트하는 그날이 오기를 지금부터 학수고대(鶴首苦待)하며 기도한다.
<그리스 도시를 걷다>는 대충 읽고 넘길 책이 결단코 아니다. 서평자는 사도 바울 선교팀이 발길이 가장 많이 남겼던 나라가 그리스임을 본서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전 세계 선교현장의 동료 선교사 모두에게 강추하면서 1권씩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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