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서평은 ‘4편의 주옥 전도설교의 요약’인 셈이다)
들어가기(서론)
“우리 삶이 예수를 믿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복음전도 사명을 감당하며 저와 교회가 누린 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도원욱)
“우리 삶이 예수를 믿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고 되는 일이 하나 없어도 믿음으로 확신하며 나아가는 삶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 삶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복음이 흘러갑니다” (책 뒤 표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롭고 멋진 인생을 사는 자이다. 그는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고 찬양하는 자다. 그는 행복자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행복하고, 예수님을 누림으로 행복이 깊어지고, 예수님을 전함으로 더 큰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저자서문) 한 마디로 전도자, 예수쟁이는 행복덩이다.
<예수예수 믿는 것은>(도원욱, 두란노, 2017). 도원욱 목사의 목회 철학은 ‘행복’이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한성교회의 비전 문구다.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동대학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설교학 전공(Th.D) <내 영혼의 행복 비타민>, <성장하는 14교회 장년부 부흥 전략>(공저), <행복 아포리즘> 등 저서가 있다.
총 4부, ‘예수를 알라’/’예수를 누리라’/’예수와 함께 하라’/’예수를 자랑하라’ 각 5꼭지, 20개의 감동의 설교가 압권이다. 서평자는 각각 4부에서 1개씩 명설교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간단히 서평을 쓰고자 한다. (본 서평은 4편의 주옥설교의 요약인 셈이다).
1. 예수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 “것입니다.
명품 인생과 성공한기업인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원칙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뚜렷한 철칙과 기준을 갖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 평소의 소신과 자기 원칙을 고수하며 의연하다. 다윗의 삶을 보라. 그는 자신을 쫓는 사울 왕을 죽일 천재일우(千載一遇) 기회가 주어졌지 만 그는 겉옷자락만 살짝 베는 데 그쳤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삼상24:6, 다윗은 ‘말씀으로 정리된 원칙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한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자를 주목하신다(행13:22). “나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고,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않는다”가 당신에게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과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순종한다는 뜻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대한 권위/부모에 대한 권위/지도자(왕)에 대한 권위이다.
이 세상에는 크게 2부류의 사람이 산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 우리 예수쟁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다고 사도신경에서 고백하고,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면서도 말씀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내 마음’/’내 뜻대로’ 태연하게 살아가지 않는가?
서평자는 모든 운동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일찍이 태권도를 배워 검은 띠, 유단자가 되었다. 그 당시 국기원이 생기기도 전에 대구 연무관서 ‘태권도는 정신이 중요함’을 배웠다. 그후 60년가까이 태권도 기본자세를 연마하여 ‘사범’이 되었다. 다윗은 ‘나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투철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셨기에 내 손으로는 보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우직하게 고수하였다.
“나를 굳게 세워주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삶에 어떤 원칙이 있습니까? 나에게 “~은 되지만 ~은 절대 안 된다”라는 원칙이 있습니까? 만약 그 원칙을 자녀에게 전달하고 있다면 정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p. 64, ‘주일성수’/’십일조’/’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3대 원칙)
2. 예수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알려 주신 길을 한결같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종교인의 삶을 끝내고 진정한 영적 세계로 들어가 참된 신앙을 시작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말씀 사랑은 하나님과의 전정한 교제의 시작입니다” (p. 118, 참된 신앙은 ‘말씀사랑’ → ‘말씀 묵상’ →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다)
시편 119편은 성경 중에서 가장 긴 시편(176절)이다. 모두가 말씀을 예찬하는 고백들이다. 알파벳 순서대로 각 절을 시작하는 답관체(踏冠體, Acrostic) 히브리어 22개 알파벳당 8행으로 만들어 176절이다. 그럼에도 각 연은 분명한 중심사상과 놀라운 통일성이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모함과 말씀 따라 살고자 하는 간절함과 순복의 열정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8개의 단어로 다양하게 표현: ‘말씀/율례/약속/계명/규례/판단/규범/증거’.
2.1. 시편기자는 ‘말씀을 사랑한다’: ‘토라’(율법) 25번이나 반복하여 언급함.
-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16)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 (103)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종교인의 삶을 끝내고 진정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 참된 신앙을 시작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말씀 사랑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단계까지는 쉽게 갈 수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교향곡의 경우 3악장이 1시간 10분이 넘습니다. 처음에는 귀에 잘 들리지 않지만, 오랫동안 듣다 보면 그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 정말 가치 있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그 일이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일의 가치를 제대로 알 때까지 진지하게 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면 말씀을 매일 읽게 될 것입니다” (p. 122)
도원욱 목사는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단계까지 이르기까지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시34:8) 훈련과 습관이 필요하다. 이것을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한 것이 통쾌.절묘하다. 세상의 시끄러운 유행가에만 익숙한 자는 클래식음악이 답답하고 재미없이 보인다. 처음엔 잘 들리지 않았던 깊은 음악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꼭 그러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의 말씀”(계3:10)이다. 100% 영감(靈感)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 다윗 만큼!
2.2 시편기자는 ‘말씀을 묵상한다’. → 사랑하면 읊조리며 묵상하게 된다. 묵상, 또 묵상하라.
-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7)
-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 만을 생각하겠나이다” (95)
2.3 시편기자는 ‘말씀을 실천한다’
현대인은 말씀을 많이 듣는다. 건성으로 듣기만 한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설교를 수백 수천 번 하기도 하고 들어도 ‘즉각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가 없다. 서평자는 전세계 선교현장을 둘러보았다. 한국교회만큼 새벽예배부터 예배를 많이 드리는 나라를 보지 못했다. 솔직히 설교를 하는 자도 듣는 자도 100%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듯하다. 도원욱 목사는 이를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는 예배에 나오면서 말씀을 듣기 전 이미 마음속으로 결심을 하고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해’. 그러나 시인은 먼저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겠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지키기로 결심하고 각오하는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8절에서 시인은 토라를 ‘행한다’(1,3절), ‘지켰다(2,4,5,8절)라는 말을 6번이나 했습니다” (pp. 126-27, 솔직히 설교를 위한 설교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너무 많다)
-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1)
-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3)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길을 한결같이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힘들게 고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모두 날아가도 그런 자들은 쟁쟁합니다. 혹 날아갔어도 그곳이 바로 축복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피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p. 128, 믿음의 정도(正道)를 걷는 자는 ‘축복/행복/승리 인생’이다)
3. 예수 예수 믿는 것은 ‘새 길이 아닌 주어진 길을 걷는 것’입니다. → ‘정로를 걷는 자’
“최악의 상황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슬기롭게 대처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면 오히려 더 큰 기적을 경험하고 승리의 사람이 되는 간증을 얻게 됩니다” (p. 160)
인생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떨어져 진퇴양란(進退兩難),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만난다. 출애굽기 14장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세계 최강의 애굽의 왕 바로의 군사가 추격하여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깜깜한 칠흑의 어둠이요 벼랑 끝 위기를 만날 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때에 신앙이 빛을 발하게 된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경험하는 최상의 기회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인간의 절대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이다)
“통성기도와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심호흡과 같기 때문입니다” (도원욱)
최고의 위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14:10) ‘심히’(메오드) 두려웠던 이스라엘은 정신을 잃을 정도의 극심한 두려움으로 부르짖었다. 430년 노예 애굽의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후에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을 직접 경험하고서도 믿음이 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다.
상황만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불망. 원망의 부르짖음이었다. 위기 앞에서 부르짖을 때, 우리의 내면의 기저에 있던 순수하지 못하고 더럽고 추한 것을 다 토해 내는 것이다. 똑 같은 상황에서 믿음의 눈이 열려 있는 모세는 문제만 보지 않았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선언한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13) 놀라운 말씀! 영안이 열린 자의 선언!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며 내가 시행하리라” (요14:14)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과 태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위기 앞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탄식을 쏟아 놓습니다. 충분한 은혜가 없을 때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애굽의 고기 가마 옆에 있다면 좋은 텐데” 하며 작은 어려움도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합니다. 문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문제 위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복될 줄 믿습니다” (p. 173)
하나님의 ‘구원 경영의 대 원리’: ’14-14원리(14-14 Principle)
서평자는 출애굽기 14장을 매우 좋아한다. ‘새벽의 하나님’은 애굽(사탄)군대를 완전히 수장하고 완벽한 구원을 이루신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경영의 대원리가 명명백백하게 선포되어 있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두번이나(13, 14) 선언하신다.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 곧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 때’(갈2:20), 비로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다”. 문제(위기)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분히 기도하며 나아가면, 전능의 주님이 친히 싸우신다. 구원의 주님 예수님은 ‘내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시겠다(요14:14)’고 말씀하신다. 서평자는 이것을 ’14-14 원리’라고 일컫는다. 할렐루야!
4. 예수 예수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는 눈이 열리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근심과 걱정, 염려, 고민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만물이 주의 손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p. 238)
우리는 엄청난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지식과 정보가 빛의 속도로 (작은 스마트 폰 안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최근에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가짜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예수쟁이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모든 인생문제를 송두리째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쟁이는 예수님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이다. 사도 요한은 그 예수님을 보고 외쳤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독생자의 영광’, ‘말씀이 육신 된 영광’이다. 초라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 예수쟁이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세례 요한: 혁명적 변화 2가지 변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1:32-34)는 반드시 변화된다. 근본적으로 뒤집어 지는 변화다. 세례 요한이 이런 2가지 변화를 요한복음은 분명히 기록하였다. 첫째는 대중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분수를 지킨다. 그는 자신을 높이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 쇠하여야 하리라(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3:30) 둘째로 그는 자신의 본 영광을 증거하는 일에 전생애를 드렸다. 그는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1:23). 세례 요한은 ‘나는 소리다(I am the voice)’고 하였다. ‘나는 나팔이다’
나가는 말(결론):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 “나(우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12:3)
인생은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나 목적 없이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 망하는(사망) 존재가 아니다. 예수님은 종교의 교주가 아니다.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바로 아는 지식이 최고/최대의 복된 소식이다. 그를 바로 알며 그 위에 바른 믿음을 건축해 죄와 사망을 떨쳐 버리고 생명과 축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이다(20:31)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 땅에 오셔서 소수의 제자를 남기시고 십자가상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그는 3 년 동안 제자들과 생활하시며 확실하게 제자훈련을 하셨다. 제자훈련의 막바지에 그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 종교 생활을 끝내고 신앙인 되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6)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의 고백위에 주님은 “내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 엄청난 선언을 하셨다. 베드로의 완전한 신앙고백 위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다(17-19). 이 비밀을 아는 자/깨닫는 자/교회의 비밀을 아는 자의 영광이여!
“전도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잘해 주어도 결국 그들은 다 죽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살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않은 인생,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인생은 자기 죄를 가릴 수도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조지 W. 트루에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 한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다.” (pp. 277-78) 아멘 아멘
서평후기
도원욱 목사님은 총신 신대원 동기이다. 그는 교회의 목적은 ‘전도와 선교’에 두고 평생 전도에 올인하는 행복한 목사다. 20여년 전 경산중앙 교회가 한창 부흥할 때 서평자는 청년집회에 강사로 갔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인생”이라고 대답한다. 2009년 이후 서울 한성교회 부임이후 매년 봄·가을 2번, 12주간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행축)를 갖고 있다. 관계중심의 태신자(胎信者) 전도법을 응용한 것이다. 전국의 여러 교회가 행축에 동참하고 있다. 놀라운 전도의 열매가 풍성하다. (서평자는 2026년 봄꽃이 황홀하게 피는 때 2달간 한국을 방문하였다. 영국으로 귀국 직전 주일(4.26)에 한성교회 2,3부 예배(설교)를 드리며,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본서를 선물 받았다. 주옥의 설교 20편을 단숨에 읽으며 도원욱 목사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전도설교의 교과서이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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