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회장 김요섭)가 최근 서울 서초구 고신총회회관에서 제16차 신진학자 포럼을 개최한 가운데, 서동준 박사가 ‘한국 복음주의 초교파 연합의 초국가적 지평: 1973년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의 사례’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했다.
서 박사는 이날 발표를 통해 1973년 개최된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가 단순히 대규모 복음 전도 집회를 넘어 한국 개신교의 초교파적 연합과 한국 복음주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 세계적 주목을 받은 1973년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
발표에 따르면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는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다. 주최 측 통계에 의하면 대회 마지막 날에만 약 110만 명이 참석했으며, 5일 동안 누적 참석 인원은 약 320만 명에 달했다.
이 같은 규모는 당시 국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은 서울대회를 자신의 평생 사역은 물론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복음 전도 집회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며, 자신의 생애에서 이와 같은 집회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빌리 그래함이 1956년 창간한 복음주의 잡지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서울대회가 참석자 수 면에서 1955년 영국 글래스고 집회와 1957년 미국 뉴욕 집회를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해당 매체는 1973년 서울대회를 “교회 역사상 가장 큰 집회”로 소개하며 세계 복음주의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서울대회 이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한국교회의 빠른 성장세를 ‘한국 기독교 현상(The Korean Christian Phenomenon)’으로 명명하고, 한국교회의 성장 배경과 특징을 분석하는 기사를 연이어 게재하기도 했다.
◇ 한국 개신교 연합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
서 박사는 1973년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의 의미를 “단순히 참가 인원이나 행사 규모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한국 개신교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주요 교단의 분열과 재편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초교파 연합단체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갈등과 대립이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회는 복음주의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교단 지도자들과 초교파 연합기관 관계자들을 폭넓게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서로 다른 배경과 입장을 가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민족 복음화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서 박사는 이러한 측면에서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를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평가했다.
◇ 한국적 배경과 초국가적 관점 함께 살펴야
서 박사는 “기존 한국교회사 연구가 주로 국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춰 서울대회를 설명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존 연구들은 민족 복음화에 대한 열망, 한경직 목사의 지도력, 그리고 냉전 시기 반공주의라는 시대적 공감대를 서울대회의 개최 배경으로 제시해 왔다”며, 이러한 해석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서울대회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내부의 요인뿐 아니라 초국가적 관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근 학계에서는 미국 복음주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초국가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미국 복음주의가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복음주의 세력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연구 흐름”이라고 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교회 지도자 한경직과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이자 월드비전 창립자인 밥 피어스(Bob Pierce)의 협력 관계가 제시된다”며 “미국 학자 데이비드 스워츠(David Swartz)의 연구를 인용하며, 한경직 목사가 한국전쟁 시기 수행한 인도주의 활동과 인적 네트워크가 월드비전 설립 과정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워츠는 한경직 목사를 월드비전의 ‘잊혀진 설립자(Forgotten Founder)’로 재평가하며 한국 복음주의가 미국 복음주의 형성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 한국교회의 역할과 주체성에 주목
서 박사는 “기존 초국가적 연구들이 미국 복음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한국교회와 한국 준비위원회의 역할과 의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학자 헬렌 진 킴(Helen Jin Kim)의 연구를 사례로 언급하며 “해당 연구가 1973년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를 미국 복음주의와 한국 복음주의의 초국가적 동맹 사례로 설명했지만, 한국 측 지도자들이 어떤 목적과 전략을 가지고 대회를 준비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신의 연구는 한국교회의 시각과 의도를 적극적으로 조명함으로써 기존 연구가 남긴 공백을 보완하고자 했다”고 했다.
또한 “한국교회사 연구가 그동안 한국 내부의 역사적 맥락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는 초국가적 시각을 함께 적용해 한국교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 복음주의 정체성 형성 보여준 대표적 사례”
서 박사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1973년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의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먼저, 서울대회의 초교파적 연합은 민족 복음화를 향한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의 공통된 복음주의 열망이라는 한국적 배경 속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또 “동시에 이러한 연합은 한경직과 빌리 그래함 사이에 형성된 초국가적 협력 관계를 토대로 가능해졌다”며 “한국교회 내부의 연합 의지와 국제적 복음주의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대회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 과정은 한국 복음주의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며 “대회 준비와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긴장과 협의는 한국교회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대회의 성공은 그러한 주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끝으로 서 박사는 “한국 교회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맥락 자체를 깊이 살피는 것과 함께, 그 맥락이 초국가적 환경과 어떻게 결합해 작동했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며 “1973년 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는 이러한 두 맥락의 결합이 지닌 중요성과 그 속에서 형성된 한국 복음주의의 자기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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