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러스 유얼의 기고글인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인생은 혼자서 해결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A message for young men: you are not meant to figure life out alone)를 6월 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러스 유얼은 베이 에어리어 크리스천 교회의 총괄 목회자이자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의 저자로, 40년이 넘는 리더십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지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며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적 기독교를 발견하도록 돕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가 어렸을 때가 기억난다. 한때 필자는 남자로서 궁금한 것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물어야 할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랐다.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다. 혼란스럽고 취약했으며 두려웠다. 동시에, 필자의 세대를 바라보며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예측하는 기성세대의 문화적 비판도 뼈저리게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필자의 세대는 훌륭히 잘 성장했고, 청년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청년이자 형제로서 여러분은 지금 만만치 않은 상황 한가운데 있으며, 홀로 이 문제들과 맞서다 보면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멘토링이나 가르침, 긍휼을 받기보다는 비판받고,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시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십분 이해하는 필자와 같은 선배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남자들에게 그런 지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남성들에게는 특히 아버지나 형제, 멘토 같은 다른 남성들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이렇다. 청년 남성의 4분의 1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보고한다. 많은 이들이 이성 교제에 어려움을 겪고, 학업을 따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정신 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다. 18~23세 청년 남성의 거의 절반(46%)이 자신을 실패자로 느낀다고 말하며, 24~29세의 38%도 같은 대답을 한다. 18~29세 남성 중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지 않는 비율은 32%에 불과하다.
또한 수많은 청년들이 연결을 약속하지만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키는 디지털 세계로 도피하고 있다. 끝없는 소셜 미디어 피드, 온라인 도박, 포르노, 게임, 그리고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분노가 그것이다. 과거에 공동체, 멘토링, 신앙, 일, 우정이 채워주던 자리를 이제는 화면이 너무 자주 대신하고 있다.
그 공백 속에서, 당신의 가치는 오직 '최적화'에 있다고 속삭이는 거대한 온라인 하위문화가 등장했다. 더 부유해지고, 더 거칠어지며, 더 지배적이고, 더 우두머리(알파)가 되라고 말한다. 턱선과 안면 대칭, 극도로 조작된 남성성에 집착하는 '룩스맥싱(looksmaxxing, 외모 가꾸기의 극단적 형태)' 같은 트렌드는 단순한 허영심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는 지도와 정체성, 인정을 간절히 원하지만, 사람 대신 알고리즘으로부터 그것을 얻고 있는 한 세대의 처절한 현실을 드러낸다.
청년 여러분, 기성세대는 여러분의 세대에 대해 반드시 한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바로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실패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필자 역시 그런 감정에 빠져 있었을 때조차 결코 실패자가 아니었다. 다만 곁에서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필자에게 그런 위로를 건네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보여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팬데믹이 청년 남성들의 정서적, 사회적, 직업적 성장을 크게 후퇴시킨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 교육, 채용, 데이트, 재택근무 등은 청년들이 오랫동안 의지해 온 인생 초기의 수많은 관계와 통과 의례를 단절시켰다.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일터에서 물러나고 있다. 수백만 명의 한창나이 남성들이 노동 시장을 완전히 떠났다. 그들은 단순히 직장뿐만 아니라, 한때 정체성과 안정감, 목적을 제공했던 수많은 사회적 구조로부터 단절되었다.
오늘날 청년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그들의 방황이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는 점이다. 당신이 곧 문제라는 지적을 받으며, 잔인하고 폭력적이거나 반사회적인 또래들과 도매금으로 묶이곤 한다. 그러나 잔인함과 폭력성은 남성성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지도받지 못하고 방치된 결과로 나타난, 오히려 반(反)남성적인 현상이다.
당신은 유해한 것이 아니라, 아직 덜 빚어진(unformed)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직 당신을 향한 작업을 끝내지 않으셨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결코 인간을 '스스로 창조된(self-made)'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창조되었고, 부름받았으며, 빚어지도록 계획되었다. 완벽한 자율성(autonomy)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도제 제도가 있는 일터, 활발한 교회, 건강한 스포츠 팀, 그리고 시민 단체들은 자연스럽게 청년들을 기성세대와 어우러지게 하여 그들의 성품을 빚어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는 이제 화면과 고립으로 상당 부분 대체되고 말았다.
당신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내고, 스스로를 파악하라는 말을 듣는다. 스스로 배우라고 강요받는다. 심지어 당신이 어떻게 나쁘거나 틀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온갖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스마트폰 속 그 어떤 인플루언서도 당신이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진정한 비전을 함께 제시해 줄 수 없다. 그들은 당신을 순종의 자리로 부르거나, 사랑으로 도전의식을 심어주거나, 당신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립된 채 홀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지음받지 않았다. 스스로를 창조하도록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그런 존재인 것처럼 살려고 할 때, 우리는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거듭 말하건대,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인성 발달을 인터넷에 하청을 주어버린 이 사회가 당신을 실망시키고 실패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당신에게는 자신의 길을 바꿀 힘이 있다. 목적, 직업, 가정을 향한 당신의 열망은(설령 좌절되었을지라도)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심어 두신 무언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낮추라. 지도를 구하라.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관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구축하라. 혼자서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직장 상사, 교사, 코치, 목회자, 혹은 이웃 중에서 적극적으로 멘토를 찾고, 그들이 당신의 삶에 조언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
누군가에게 지도나 멘토링을 부탁할 때 가장 좋은 전략은 정직함이다. 단도직입적이되 정중하게 다가가라.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설명하라. 왜 그 사람이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라는지 말하라. 막상 부탁해 보면, 사람들이 기꺼이 타인에게 투자하려 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소중한 조력자들과 매주 만남을 가져라. 당신을 도울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라.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자율적인 자기 창조나 홀로 하는 자기 계발이라는 거짓말을 버려라. 친구를 찾고 멘토를 구하라. 다소 불편하더라도(어쩌면 불편할 때야말로 특히) 그들이 당신을 빚어가도록 내어 맡겨라.
진정한 자유는 독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에 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진정한 공동체를 향한 헌신 안에서 우리는 가장 깊고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 우리가 참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한다면, 진짜 사람들, 진짜 희생, 진짜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니 부디 소망을 품으라.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하라. 누군가를 깊이 알고 또 누군가에게 온전히 알려지기를 소망하라. 하나님께 항복하고, 사랑 많고 지혜로운 멘토들이 당신을 빚어가는 그 형성의 힘에 온전히 내어 맡겨라.
당신은 결코 문제의 근원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그렇게 부름받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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