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50년동안 존웨슬리를 영적인 롤모델로 삼고, 웨슬리같은 목회자, 신학자, 저술가, 부흥사, 사회사업가, 조직행정가 그리고 교회연합운동가가 돠려고 진력해 왔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웨슬리운동에 헌신하면서 23년 동안 온 셰계에 웨슬리의 성령운동을 확산시키는데 힘쓰고 있다. ‘한국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를 2006년 5월에 창립하였고, 2014년 9월에 서울신학대학교 웨슬리신학연구소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2014년 10월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를 영입하여 2019년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제11대 대표회장으로 추대함으로 웨슬리언 5개 교단(기감·기성·예성·나성·구세군)에서 기하성(순복음)을 포함한 한국 웨슬리언 6개 교단이 되었다.
이후 2022년 10월에 6개 교단장 협의회 조직을 이영훈 목사에게 제안하여 2023년 3월에 ‘웨슬리언교단장협의회’가 창립되었으며, 2025년 10월에는 ‘웨슬리언평신도지도자협의회(장로)’를 창립하였다.
그런데 교단장 후배 K 목사가 “모 목사는 우리교단에서 비주류에 속하니 함께하지 말자”라고 배척을 제안하므로 분위기가 썰렁했다고 당시 회의에 참석한 교단장들이 필자에게 전해왔다. 필자는 영적인 지도자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개신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사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몰지각에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느끼고, 성경적인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고자 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지난 5월 15일에는 서울신학대학교 강당에서 제76차 웨슬리언 국내선교대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비주류를 사용하신다”는 주제의 설교를 하였다(고린도전서 1장 25-28). 이 글를 통해서 세속적인 주류의식에 영안이 어두워진 타락한 교회지도자들이 새삼 자신을 돌아보는 거듭남의 중생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Ⅰ.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
세상은 언제나 사람을 나눈다.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변방, 권력자와 약자이다. 주류는 안정과 힘을 상징하고, 비주류는 연약함과 변화를 상징한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성공한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놀랍게도 제도권 주류보다 제도권 밖 비주류를 통해 움직여 왔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이 준비한 사람”보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을 사용하셨다.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 광야의 모세, 갈릴리의 어부 베드로, 세리 마태 모두 당시 사회의 중심 인물은 아니었다. 예수님조차 작은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자라셨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비주류의 자리에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Ⅱ. 모세: 왕궁의 주류에서 광야의 비주류로
모세는 원래 애굽 왕궁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강국 애굽의 왕궁 교육을 받았고, 권력과 학문, 군사와 정치까지 배운 철저한 주류였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지도자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왕궁이 아니라 광야로 보내셨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잊혀진 목자로 살아야 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실패자요 변방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광야에서 모세를 준비시키셨다. 왕궁에서는 권력을 배웠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배우게 하셨다. 사람을 다스리는 법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느 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를 다시 부르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결국 모세는 애굽 왕궁의 권세보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들었고,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었다.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에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터지는 역사는 왕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한 사람을 통해 나타났다. 하나님은 왕궁의 주류 모세보다 광야의 모세를 더 크게 사용하셨다.
Ⅲ. 바울: 로마의 권력을 내려놓자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받다
바울사도는 원래 유대 사회의 철저한 주류였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또한 로마 시민권까지 가진 특권층이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막강한 권리였다. 그는 학문과 제도와 권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의 권세를 붙들지 않았다. 유대 사회의 명예도, 종교적 권력도, 로마 시민의 자랑도 내려놓았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채찍질당하며 살아갔다. 세상은 그를 실패자로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세계 선교의 사도로 세우셨다. 바울은 로마의 권력을 내려놓자 하늘의 권세를 부여받았다. 사람의 인정은 잃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얻었다. 세상의 중심에서는 밀려났지만 복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결국 바울은 황제의 궁전보다 더 강한 복음의 나라를 세웠다. 그의 서신은 오늘까지 세계 교회의 기초가 되고 있다.
Ⅳ. 종교개혁자들: 루터, 칼빈, 웨슬리 비주류의 외침이 역사를 바꾸다
중세 교회는 절대 권력을 가진 거대한 주류였다. 그 안에서 개혁을 외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을 외쳤다.
그는 교권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했고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외침을 사용하셨다. 종교개혁은 단순한 교회 개혁이 아니라 복음 회복 운동이 되었다.
존 칼빈(John Calvin) 역시 말씀 중심의 신앙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반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위험한 비주류처럼 보였지만 결국 시대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다.
Ⅴ. 웨슬리와 성결운동: 조직 밖에서 일하신 하나님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교회강단과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그는 광산 노동자들에게 갔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갔으며, 교회가 외면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웨슬리를 통해 영국의 영적 대각성을 일으키셨다. 성결운동은 이후 세계 선교와 부흥의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Ⅵ. 세계 부흥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
디멜 무디(Dwight L. Moody)는 평범한 구두 판매원 출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미국과 유럽에 대부흥을 일으키셨다. 빌리그래함(Billy Graham) 역시 비주류 신학교 출신으로 단순히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Bible Say를 외침으로 하나님은 그를 세계적인 전도 부흥사로 사용하셨다.
한국교회에서도 하나님은 비주류의 눈물과 기도를 사용하셨다. 이성봉 목사는 성령과 회개의 메시지로 한국성결교회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다. 문준경 전도사는 낙도의 섬마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 공산당의 만행에 순교했다.
기독교역사상 세계 최초의 초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최자실 목사와 조용기 목사는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시작해 성령운동과 새벽기도의 역사를 통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었다. 한경직 목사는 가난한 피난민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며 섬김의 목회를 통해 한국 장로교의 상징적인 교회로 보여주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 대전중문교회 장경동 목사 역시 처음에는 비주류의 아주 작은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비주류 그들의 헌신을 통해 대형교회로 부흥시키셨으며 많은 영혼들을 일깨운 대중적인 목회자로 대 부흥사로 크게 사용하셨다.
Ⅶ. 왜 하나님은 비주류를 사용하시는가?
첫째, 비주류는 하나님을 절박하게 붙들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때문이다.
둘째, 비주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도전하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 십자가 자체가 비주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로마 사회에서 십자가는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고전 1:27)고 선언하셨다.
Ⅷ. 결론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역설적이다. 세상은 주류를 통해 안정되려 하지만, 하나님은 비주류를 통해 새롭게 하신다. 모세는 왕궁을 떠나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바울은 로마의 권력을 내려놓자 하늘의 권세를 부여 받았다. 루터는 교권에 맞섰고, 웨슬리는 교회강단과 울타리를 넘어섰다. 이성봉 목사는 성령의 불을 붙들었고, 문준경 전도사는 순교로 믿음을 지켰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속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붙들려 있는가”이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기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