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교회는 사라지고 있다. 나는 몇 주 전에 독일을 다녀왔는데 독일의 경건주의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54년 전에 암스텔담 뿌라야대학교(Vrije Universiteit in Amsterdam)에서 공부했었다. 그 후 여러 번 루터의 종교개혁의 지역을 따라서 순례해 보았다.
루터는 이신칭의(以信稱義)와 만인 제사장 발언, 그리고 면죄부(Indulgentia) 판매의 부당함을 탄핵했고, 95개조 반박문(95 Thesen)을 비텐베르크 교회(Wittenberg Church) 정문에 붙였다. 그로 말미암아 ‘성경적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 개혁의 새벽 별인 얀 후스(John Hus)가 없었던 들, 루터의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 어떤 학자는 “루터가 트럼펫 소리를 냈다면, 요한 칼빈(John Calvin)은 오케스트라 소리를 냈다”고 썼다. 물론 영국의 필립 샵(Phillipp Schaff)도 “루터는 단단한 바위산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다면, 요한 칼빈(J. Calvin)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을 새긴 사람이다”라고 비유했다. 개혁된 교회가 성경적 교회이고, 이것을 개신교라고 한다. 즉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100년도 못가 개신교는 형식과 외식으로 변질되었고, 처음 종교개혁의 열정은 식어졌다. 그래서 기독교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고, 절망 그 자체였다. 그때였다. 영국의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의 영향을 받은 스페너(Spener)가 다시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필자가 독일에 있는 동안, ‘독일 경건주의 운동’에 밝은 권누가 자비량 선교사와 함께 했다. 그는 독일에서 46년을 선교한 베테랑이었다. 또 한 분은 권누가 목사와 함께 한 신승철 선교사다. 신승철 선교사는 Zionberg 영성 수련관을 기초로, 세계 선교회를 활성화 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수고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할레(Halle)에서부터 진젠도르프가 일했던 그곳까지 엄청난 속도로 아우토반을 내달려 갔다. 당시 독일은 쓰러져가고 세속화된 교회를 다시 세우고, 성도들의 영적 각성을 위해 새로운 페러다임이 필요했다.
그들은 신학이나 교리보다 ‘기독교적 삶’이 중요했었다. 때마침 유럽에서 가톨릭과 기독교의 30년 충돌 전쟁으로 피폐하였고, 페스트 병으로 사람들이 3분의 1로 죽어 나갔다. 그러니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교회는 기독교적 삶의 실천으로 고아들을 돌보고, 과부를 돌보고, 방황하는 이방인들을 돌보는 일에 주력했다.
그렇게 독일 교회는 이런 영적 각성이 바로 고아 사역에 올인했다. 특히 스페너 이후 프랑케 같은 위대한 학자는 고아 사역을 대대적으로 일으켰고, 제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고아를 돌보다 보니 질병을 고쳐야 했다. 그래서 간호사 교육까지 하게 되었다. 그 시대는 교리와 신앙보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는 일에 주력했다. 이른바 ‘사회사업’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케(Franke) 학교의 그 유명한 진젠도르프의 ‘경건주의 운동’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어,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다. 그 후 진젠도르프는 경건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의 배려로 박해받는 후스파의 체코 사람 3천 명을 받아 땅을 주고, 일자리를 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나는 이번에 그 먼 여행을 모두 소화했다. 심지어 진젠도르프의 무덤까지 가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새운, 이른바 ‘코메니우스(Comenius) 신학교’도 들렸다. 당시 코메니우스(Comenius)는 피난민들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 위대한 칼빈주의자요, 대 교육학자요, 설교가였다.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정작 학교에 학생들이 없었다. 한때 ‘Herenhot’라는 이 도시는, 자활을 위해 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기독교는 ‘삶’이 중요한 것이 맞다. 하지만 성령과 말씀이 같이 있는 교회, 진리와 삶이 함께 있는 조화로운 교회가 필요하다. 다 형제고, 자매이면 그 공동체를 누가 지도하나? 결국 독일 경건주의는 몇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0년도 못되어 소멸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신학과 복음 진리를 등한시할 때, 이 그룹에서 자유주의 신학자 슐라이엘마허(F. Schleiermacher)가 나왔고, 결국 그의 잘못된 신학으로 서구 교회들이 망가지고 말았다.
지금 한국교회도 양극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중독된 것처럼 성경을 많이 읽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체적인 삶은 0점이다. 또 어떤 이는 성경과 복음은 제쳐놓고, 선한 사마리아처럼 이웃을 돕고, 고아들을 돌보는 자선 사업하는 것을 진정한 기독교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일찍이 교회 개혁가 요한 칼빈은 “경건과 학문은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말씀과 성령이 더불어 역사해야 바른 복음, 바른 신앙을 가진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니 100년을 기점으로 쇠락하고 있는 교회를 다시금 성장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이 교회를 폐쇄하려 하고, 바른말 하면 감옥에 집어넣고, 동성애를 권장하는 인사들이 활개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교리와 신앙, 신앙과 삶이 조화로운 건강한 한국교회로 다시금 시작하자!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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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