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완다 알거의 기고글인 ‘은사주의 교회는 성령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가?’(Is there an overcorrection of the Holy Spirit in the charismatic church?)를 5월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완다는 35년 넘게 예배 인도자, 교사, 저자, 치유·상담 사역자, 강연자로 섬겨 왔다. 아홉 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로서,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통해 성숙해 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은사주의 교회를 향한 정화와 드러남의 과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우려스러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 자체를 아예 배제해버리는 ‘과도한 반동’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과거의 과도함과 남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히려 성령과의 관계를 차단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더 깊은 주님과의 교제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은사나 현상을 추구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라는 사실이다. 단순한 능력이나 현상, 혹은 어떤 도구가 아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와의 교제를 원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알기 원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발 앞에 앉아 교제하기를 원하시듯, 성령 또한 우리와의 교제를 갈망하신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고(갈라디아서 5:16),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로마서 8:14), 성령의 일을 생각할 때(로마서 8:5-6),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는 생명과 목적, 능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교제하도록 부름받았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삶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다.
여러분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를 원하는가? 위로부터 끌어당기는 듯한 갈망,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경험하고 깨닫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바로 이것이 종교적인 영이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다. 지금 교회 안에서는 ‘자연적인 사고’와 ‘성령’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고 이해되는 것과,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고 성령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사이의 싸움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성령이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하나이신 하나님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위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독특한 역할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의 떠나심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교제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그러나 종교적인 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초자연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사도들이 죽은 이후 은사는 끝났다.” “성경이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의 계시나 인도하심은 필요 없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었다고 분명히 말한다(요한복음 20:30, 21:25). 또한 성령께서 계속해서 진리를 드러내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고 증언한다. 사도 바울 역시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린도전서 2장).
성경은 우리가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지만(고린도전서 14:1), 그것이 곧 성령과의 교제를 사모하는 것과 동일하지는 않다(고린도후서 13:14). 성경 어디에도 초자연적인 경험 자체를 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결과이자 열매일 뿐이다.
오히려 성령과의 관계를 버리고 초자연적인 현상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하나님의 ‘일’만을 추구하는 종교적 태도와 다르지 않다.
성령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신다. 성령은 인격이시며, 자신의 방식으로 말씀하시고(고린도전서 14:2-4), 우리 안에 열정과 불을 일으키신다(사도행전 2:1-4). 우리를 능력 있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을 알게 하신다. 우리의 구원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그분께로 나아가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요한복음 6:44).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얼마나 중심적인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는가?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말씀하시는 음성이며, 진리를 드러내시는 분이다. 그분의 임재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능력 있으며 삶을 변화시키는 현실이다.
그래서 원수는 성령의 음성을 침묵시키고, 그 사역을 부정하며, 그 존재를 왜곡하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은 지금도 많은 이들을 더 깊은 교제로 부르고 계신다.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소리에 속지 말고 오늘날의 바리새인과 같은 태도가 두려움을 심어 믿음을 위축시키지 못하게 하길 바란다.
앞으로 더 분명한 드러남이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 왜 오셨는지를 더욱 온전히 보여주실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든 영광은 성자와 성부께 돌아가며 성령은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성자의 완성된 구원을 믿도록 이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성령은 그분의 은사나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그분과의 교제 속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흘러갈 때 비로소 드러난다. 더 깊은 성령과의 교제를 사모하길 바란다. 성령은 우리가 알아야 할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야 할 ‘인격’이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당신과 교제하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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