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샘 존스 목사의 기고글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면, 인간에게 어떻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는가?'(If God is all-knowing, how can man have free will?)를 4월 1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샘 존스 목사는 아이오와주 험볼트에 위치한 어번던트 라이프 크리스천 펠로우십(Abundant Life Christian Fellowship)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저자로도 활동 중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하나님이 우리가 하게 될 모든 일을 이미 알고 계신다면,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철학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다. 수세기 동안 신학자들과 회의론자들은 하나님의 예지(豫知, foreknowledge)와 인간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놓고 씨름해 왔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내릴 모든 결정을 이미 알고 계신다면, 우리의 선택은 과연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는 이미 기록되어 있으며, 바꿀 수 없는 기계적인 과정 속에서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숙명론적인 역사관으로 이해한다. 모든 행동과 생각, 선택이 단지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이 펼쳐지는 과정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지가 곧 결정론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시간에 대한 잘못된 전제와 하나님에 대한 축소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지켜보는 존재로 상상하지 않을 때, 이 딜레마는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시간에 묶여 있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하나님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식을 인간의 시간 개념 안에 억지로 맞추려는 우리의 시도에 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마치 시간선 위에서 우리보다 앞서 가며 우리가 무엇을 할지 미리 들여다보는 존재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 속에서 우리보다 앞에 계신 분이 아니라 시간 밖에 계신 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 자체가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 하나님은 역사를 감시 카메라처럼 바라보고 계신 분이 아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한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예지는 예지하시는 분이 시간이라는 체계 안에 갇혀 있지 않다면 결정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면, 하나님이 미래를 아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선택을 제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단지 알고 계신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강제로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체 그림을 보고 계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그림 위에 붓질을 하고 있는 존재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매우 성경적인 이해다. 로마서 8장 29-30절은 무시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질서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 예지 (Foreknowledge), 예정 (Predestination), 부르심 (Calling), 칭의 (Justification), 영화 (Glorification)
이것은 단순한 신학적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논리다. 케리 고든 목사는 이를 간결하게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의 예정의 능력은 하나님의 예지에 따라 작동한다. 하나님의 예지는 예정의 능력에 종속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이 순서를 뒤집어 하나님의 아심이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기계적인 운명으로 축소시키며, 하나님의 주권을 왜곡된 통제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예지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흘러나오는 근원으로 제시한다.
이 사실은 성경이 구속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은 시간을 단순히 직선적으로 흐르는 연대기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시간은 구속이라는 중심을 기준으로 이해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목적의 중심 축이다. 십자가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향해 뻗어 있는 구속 구조의 중심점이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뱀을 저주하시며 선언하신 말씀 역시 구속의 시간 구조를 보여준다: “그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역사를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옛 성도들은 장차 오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구원을 얻었고,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구속의 시간은 우주의 시작점에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구속 사역의 중심에서 흘러나온다. 이는 구원과 도덕적 책임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시간이 기계적인 흐름이 아니라 목적을 향한 흐름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시간의 가장 강력한 중심이 십자가와 빈 무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에베소서 5장 16절의 말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권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시간 속에 구속의 목적을 두면 시간은 구속될 수 있다. 그러나 구속의 목적을 잃어버린 시간은 기계적인 흐름이 되어 결국 영원을 지옥으로 향하게 만들 수 있다. 시간의 목적은 단순히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드러내는 데 있다.
성경은 여기서 더 나아가 철학자들이 쉽게 다루지 못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이 마치 어떤 사실을 새롭게 아시는 것처럼 표현된 장면들이 등장한다.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내가 내려가서 그들이 과연 그렇게 행하였는지 보겠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의 순종 이후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고 말씀하신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몰랐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이 시간 속에서 관계적으로 역사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의미다. 전지하심은 단순한 감시가 아니다. 하나님은 도덕적 책임을 침해하지 않으시면서 시험하시고 드러내시며 관계를 이루기 위해 어떤 것을 아시는 방식을 선택하실 수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의 지식조차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지성을 스스로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영역에서 자기 주권적이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시는 분이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절제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절제는 자신을 다스리는 주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속성들이 서로 충돌하는 분이 아니라 모든 속성을 완전하게 동시에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로운 사랑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이 있는 공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지성과 주권 역시 관계적이며 구속적이며 초월적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경이 증언하고 우리의 영혼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지켜 준다. 우리의 선택은 실제로 의미가 있다. 우리는 미리 쓰여진 극본 속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우리는 실제 시간 속에서 행동하며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는 도덕적 존재다. 그리고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결정을 강요하지 않으시면서도 그 끝을 아실 수 있다.
하나님의 아심은 우리의 자유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자유가 의미를 갖도록 하는 배경이 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선택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더 깊은 차원으로 높인다. 하나님의 예지는 우리의 선택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영원한 무게를 부여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실제적인 도덕적 선택이 존재할 때 하나님의 예지와 주권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구속의 목적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가장 온전히 드러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아시면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그 선택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과 연결된 실제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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