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크리치 목사
마크 크리치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왜 당신의 영혼에는 ‘혼자 드리는 예배’ 이상이 필요한가: 시편 132편이 주는 교훈"(Why your soul needs more than 'solo' worship: Lessons from Psalm 132)을 4월 1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시편 132편은 이해하기 쉬운 시편은 아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돌아보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약속을 내다본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이 우리의 마음을 살피게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마땅히 계셔야 할 자리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결코 안식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진실로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처소를 발견하기까지… 쉬지 아니하리라”(시편 132:3–5).

이 고백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윗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시기 전까지는 나 자신의 편안함을 뒤로 미루겠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집에 있었다.

이 시편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일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우선순위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내 삶에서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중심이 되셔야 한다”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시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금까지는 다윗 개인의 갈망이 강조되었지만, 이제 그 갈망은 자신을 넘어 확장된다. 개인적인 열망이 공동의 예배로 이어지며 그의 고백은 공동체를 향한 초청이 된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예배하리로다”(시편 132:7). 즉, 다윗의 열정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퍼져 나간다. 그의 마음속 개인적인 부담이 이제는 공동의 추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지 믿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속으로 예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모여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름받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시편은 오늘날 우리의 사고방식을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도전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어디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 굳이 교회가 필요하지 않아. 해변에서도, 골프장에서도, 숲 속에서도 예배할 수 있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제한되지 않으신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시편 19:1). 신자는 어디에서든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리가 그것만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디에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는 것을 대신하여 혼자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지는 않는다.

신약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브리서 10:25).

개인적인 예배와 공동체 예배는 서로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다.

해변에서 기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해변은 당신의 영혼을 목양해 줄 수 없다. 골프장에서 묵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페어웨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는다. 숲 속에서 경외심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숲은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고립된 영성을 넘어서 훨씬 더 풍성한 것을 계획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서로의 짐을 나누며, 함께 은혜 안에서 성장하도록 부르셨다.

다윗은 구약 시대를 살았음에도 이 사실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높임 받으실 장소를 간절히 사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예배하기를 기뻐했다. 예배는 그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열망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예배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예배하기를 갈망하는가?”이다.

오늘날 예배를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으로만 말할 때, 실제로는 자신의 편안함과 만족에 맞추어진 방식으로 예배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동체 예배는 더 깊은 것을 요구한다. 겸손을 요구하고, 순종을 요구하며,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른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다.

시편 132편은 이어서 성경 가운데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 중 하나를 전한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표현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신다: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편 132:14).

이 말씀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멀리 계시거나 마지못해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그들 가운데 드러내기를 기뻐하신다.

삶이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이 진리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 위로는 고립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경험된다.

삶이 흔들릴 때, 관계가 어려워질 때, 내가 세웠다고 생각했던 삶의 토대가 무너진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거하실 처소가 되어 주신다. 그리고 그 임재는 개인적인 위로뿐 아니라 공동체의 교제 속에서도 경험된다.

마음이 약해진 상태로 예배 공동체에 들어갈 때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산만한 마음으로, 낙심한 마음으로, 때로는 의심을 품은 채 예배에 나올 수도 있다. 분노나 내려놓지 못한 쓴 마음을 안고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은혜와 용서, 자비를 노래하는 다른 사람들의 찬양을 듣는다. 스스로는 찬양하고 싶지 않을지라도 다른 이들의 찬양을 듣게 된다. 기도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다른 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서서히, 우리는 혼자가 아닌 믿음에 의해 다시 일어서게 된다.

필자가 어린 시절, 지역 침례교회 목사님이 조부모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조부는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었다. 목사님은 벽난로로 가서 불 속에 있던 숯 한 조각을 꺼내 난로 옆에 따로 두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숯은 점점 식어갔다.

그리고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숯은 혼자 떨어져 있으면 금세 식어 버리지만, 다른 숯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밝게 타오른다는 것이다.

믿음도 이와 같다.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는 신자는 점점 영적으로 식어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일 때 믿음은 다시 뜨거워지고 새로워진다.

시편 132편은 분주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갈망을 다시 회복하도록 우리를 부른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간절한 열망이다. 그 열망은 개인적인 묵상 속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더욱 깊이 표현된다.

물론 질병이나 연약함, 또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공동체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형편을 아시며 은혜로 대하신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예배의 부재는 불가피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나 개인적 선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편은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예배에 단지 참석하는가, 아니면 예배를 갈망하는가?

다윗은 하나님께서 높임 받으실 장소가 마련되기까지 쉬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예배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마음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동일한 갈망을 다시 일으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 그것이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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