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2026년 3월 20일, 대전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번진 불길 속에서 14명이 목숨을 잃고, 6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숫자로 적히는 순간, 그 비극은 통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각각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사고는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비슷한 원인, 그리고 늘 뒤따르는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 말.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힌다.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판박이 사고’는 반복되어야 하는가.

불과 몇 해 전, 경기 이천의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도 대형 화재가 발생해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에도 가연성 물질과 안전조치 미흡이 원인으로 지적되었고, 이후 수많은 대책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유사한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우리는 사고를 막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막지 않는 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전 사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안전교육은 충분했는가, 설비는 제대로 작동했는가, 왜 불법 증축된 공간이 그대로 방치되었는가. 헬스장과 휴게실이라는 이름으로 늘어난 공간은 결국 사람을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가두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성장을 향한 조급함이 법과 안전을 밀어낸 자리에서, 생명은 가장 먼저 희생되었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순간의 ‘마지막 통화’다. 불길이 번지는 가운데, 누군가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곧 나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안심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그저 서로의 숨소리만 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통화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사람은 돈도, 회사도, 성과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가족, 함께 살았던 시간,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인생의 끝자락에서 붙드는 것은 언제나 관계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노동,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안전을 미루는 선택, 그리고 이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행정의 느슨함. 이 모든 것이 겹쳐질 때, 참사는 ‘우연’이 아니라 ‘예견된 결과’가 된다.

생존자들의 고통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불길 속에서 들었던 비명, 눈앞에서 쓰러지던 동료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남겨진 죄책감. 희생자들의 가족들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상처, 우리는 그들의 치유를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안전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생명을 비용처럼 계산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생명 존중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만약 나에게 마지막 통화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누구에게 전화를 걸 것인가. 그리고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세상보다 귀하다.” (마하트마 간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임마누엘 칸트)

이 두 문장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삶의 기준이다. 그 기준이 무너질 때, 마지막 통화는 계속해서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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