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2021년 6월호 “The Austin American- Statesman”지에 “Two Brothers, One Diagnosis, Two Choices”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2019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48세인 마이클과 45세인 다니엘 두 형제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심장 정밀검사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심각한 관상동맥 질환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동일한 내용을 담은 검사 결과지와 치료 계획서를 두 사람에게 각각 건넸다.

‘즉각적인 생활 습관 변화, 식이요법, 수술 가능성.’ 형 마이클은 결과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다음 날부터 담배를 끊었고, 3주 후 수술대에 올랐다. 2년 후 그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반면 동생 다니엘은 결과지를 보는 척하다가 서랍에 넣었다. “나는 아직 젊어. 좀 더 두고 보면 되지.” 그는 다른 병원을 두 군데 더 돌아다니며 더 나은 소견을 찾으려 했다.

1년 후 다니엘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수술 합병증으로 지금 심각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동일한 진단.’ ‘동일한 경고.’ 그러나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찢었고, 다른 사람은 진단서를 무력화하려 했다.

성경 속 아비 요시야 왕과 아들 여호야김 왕의 대조적인 이야기가 2019년 텍사스에서 다시 펼쳐진 것이다. 예레미야 36장과 열왕기하 22장에 바로 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원전 605년,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군대가 이집트를 무너뜨린 뒤 곧장 남쪽으로 내려왔고, 작은 나라 유다는 거대한 제국의 발밑에 놓이게 되었다. 유다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한 모든 말을 기록하라.”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신다. “혹시 유다 백성이 듣고 각자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 죄를 사하리라”(렘 36:2–3).

당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예레미야는 자신의 동역자이자 서기관인 바룩을 불러 구술로 책을 기록하게 한다. 그것이 첫 번째 예레미야서이다. 그걸 백성들과 고관들에게 읽어주었더니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떤 이는 떨고, 어떤 이는 탄식했다. 왕궁의 관리들까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 말씀은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것은 나라가 돌이킬 마지막 기회다. 당장 왕께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 두루마리 책은 결국 유다 왕 여호야김에게 전달된다. 이때 왕은 가장 따뜻한 겨울 궁전 안에 앉아 있다. 신하 여후디가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들어와 왕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한다.

한 줄, 또 한 줄. 심판의 경고가 왕의 귀에 울려 퍼진다. 방 안은 조용하다. 들리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타닥타닥!” 화로에서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읽는 소리.

이제 모든 시선은 왕에게 쏠린다. 과연 왕 여호야김은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여후디가 서너 쪽을 읽으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베어 화롯불에 던져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렘 36:23).

이 “면도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던 도구”였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그 칼을 빼앗아 말씀을 난도질하는 영적 살인 무기로 전락시켜 버렸다.

칼로 읽은 말씀을 “베었다”라고 했는데, 이 단어는 단순히 종이를 반듯하게 자르는 표현이 아니라 "헝겊을 거칠게 찢거나 가죽을 북북 찢어발길 때 쓰는 강한 단어"이다. 즉,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대적하듯 거칠게 찢어버렸다”라는 뜻이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말씀을 향한 노골적인 적개심이었다.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옷과 마음을 찢었어야 할 왕이 도리어 그 말씀을 갈기갈기 찢어서 불에 태워버렸다. 어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처럼 신성모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여호야김의 행동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성경에 또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하 22장 11절이다. 약 17년 전, 여호야김의 아비 요시야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게 하다가 성전 한구석에서 오래 잊혀 있던 율법책을 발견한다.

그것은 유다의 운명을 바꿀 말씀이었다. 그 책을 서기관 사반이 왕 앞에서 읽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율법과 경고가 왕의 귀에 들려오는 순간, 요시야는 아들 여호야김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여기서 “찢다”라는 동사는 예레미야 36장에서 여호야김이 두루마리를 찢을 때 사용된 바로 그 단어(קָרַע)이다. 아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찢었다. 하지만 그의 아비 요시야는 "자기 옷을 찢었다." “옷을 찢었다”는 “마음을 찢었다”라는 의미이다. 율법책을 들은 요시야는 옷을 찢고 자기 마음을 찢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의 결과가 궁금하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여호야김은 비참하게 죽었다. 왕으로 죽었지만, 시신이 왕실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버려졌다. 반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요시야의 회개 때문에 유예가 되었다. 비록 그가 전쟁 중 화살에 맞아 죽지만, 백성은 그를 위해 울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해 애가를 지어주었다. 그는 왕실 묘실에 장사 되었고, 온 유다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죽어서도 그는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

이런 장면은 자연스럽게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이 말씀은 추상적인 교훈이 아니다. 여호야김과 요시야의 삶이 그 증거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결국 한 사람의 역사, 한 가정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꾼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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