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복지 사각지대와 신청주의의 한계가 다시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섰다.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이 작동했음에도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확인되면서 복지 제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와 울산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울주군 한 빌라에서 30대 남성 A씨와 미성년 자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생활고와 양육 부담을 호소하는 취지의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강화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어느 정도까지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작동… 그러나 지원은 미연결
정부는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통신비 미납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위기가구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체계를 구축해왔다. 지자체 공무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시도해온 것이다.
이번 울산 사례에서도 해당 가정은 위기가구로 발굴됐고, 지난해부터 긴급복지 지원이 일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생계급여 등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는 당사자가 관련 제도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기가구를 확인했음에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어 추가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신청주의 한계… 복지 제도의 구조적 문제 드러나
현행 복지 제도는 대부분 당사자의 신청을 전제로 운영된다. 이로 인해 대상자가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지원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지자체 공무원이 직권으로 복지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도 있으나, 이 역시 당사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직권 신청으로 지급된 생계급여는 198건에 그쳤고, 의료·주거·교육급여 역시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2025년에도 직권신청 건수는 큰 폭의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수치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
◈제도 개선 필요성 확산… 직권지원 확대 검토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청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할 방침이다. 긴급 상황에서는 공무원이 직권으로 복지급여를 신청하고 지급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과 절차 개선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복지 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할 경우, 지원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가 지원할 것이라는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며 “국가가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보다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울산 일가족 사망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와 신청주의 중심 복지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드러낸 사례로, 향후 제도 개선 논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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