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캔터베리 대주교로 내정된 사라 멀랠리(Sarah Mullally) 대주교가 영국에서 논의 중인 조력자살(assisted dying) 합법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하원에서 근소한 표차로 통과된 뒤 현재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멀랠리 대주교는 최근 BBC 프로그램 ‘투데이(Today)’에 출연해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대담하며 ‘조력 자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간호사와 성직자로서의 경험을 언급한 그는 조력자살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이들은 선택권을 말하지만, 과연 진정한 선택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라며 “적절한 완화의료와 사회적 돌봄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조력자살을 선택하게 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멀랠리 대주교는 특히 불평등으로 인해 선택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암에 더 잘 걸리고, 진단이 늦어 결국 사망에 이르는 이들이 있다”며, 이들이 “항암 치료와 싸움의 기회가 아니라, 타인의 가치 판단에 의해 조력자살이라는 선택지를 제시받게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 같은 위험을 막을 보호 장치는 현재 법안에 포함돼 있지 않으며, 어떤 수정안이 더해지더라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영국 인기 드라마 ‘사일런트 위트니스’(Silent Witness)에 출연한 배우이자 장애인 인권운동가인 리즈 카(Liz Carr)도 조력자살 합법화에 강력히 반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카는 BBC 다큐멘터리 ‘차라리 죽는 게 나을까?(Better Off Dead?)’에서 일부 장애인이 주변으로부터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을 공개했다.
카는 캐나다 사례를 언급하며, 조력자살이 처음에는 말기 환자에게만 허용됐으나 이후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 빈곤층이나 정신질환자까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에서도 충분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취약 계층이 진정한 선택이 아닌 사회적 압박 속에서 죽음을 택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멀랠리 대주교의 발언은 현재 영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말기 성인(임종) 법안(Terminally Ill Adults [End of Life] Bill)’ 심의 과정과 맞물려 나왔다. 이 법안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말기 환자가 생을 마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수 있도록 하며, 해당 선언은 환자 본인과 의료진, 제3자의 서명이 필요하다.
법안에 따르면 환자는 두 번째 의사의 평가를 받아야 하며, 조력자살 심의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또한 의사는 조력자살에 참여할 의무가 없고, 타인에게 이를 강요하거나 관련 문서를 위조·훼손하는 행위는 범죄로 규정돼 있다.
해당 법안은 2025년 6월 20일 하원에서 314대 291로 통과됐다. 보수당 의원 다수는 반대표를 던졌고, 집권 노동당 의원 다수는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법안은 상원에 계류 중이다.
한편 멀랠리 대주교는 조력자살 문제와는 별도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보적 입장으로 일부 성공회 지도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세계 성공회 보수 연합체인 GAFCON의 수장 로랑 음반다(Laurent Mbanda) 대주교는 지난해 10월 성명을 통해 멀랠리의 캔터베리 대주교 지명이 “성공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를 표했다.
음반다 대주교는 “멀랠리가 2015년 주교로 서품될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모든 그릇된 교리를 물리치겠다’고 서약했다”며 “그러나 그는 결혼과 성윤리에 대해 비성경적이고 수정주의적인 가르침을 반복적으로 지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나이지리아 성공회 헨리 은두쿠바 대주교 역시 멀랠리의 임명을 두고 “여성 주교직을 받아들일 수 없는 다수의 성공회 신자들의 입장과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멀랠리는 영국 성공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캔터베리 대주교가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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