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공식 환영식을 시작으로 정상회담, 양해각서(MOU) 서명식, 국빈 만찬까지 약 4시간 동안 일정을 함께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1월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 이후 두 번째 정상 간 만남으로,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이뤄진 조기 방중이라는 점에서 외교적 관심을 모았다.
이번 방중에는 전임 정부 시절 소원해졌던 한중 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구상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한중 관계 정상화를 통해 경제·안보·문화 전반에서 협력의 기반을 재정비하겠다는 의지가 이번 회담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재명 대통령 발언, 한중 관계 전면 복원과 한반도 평화 강조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한중 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를 핵심 메시지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2026년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으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라고 규정하며, 변화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양국 관계 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하며, 번영과 성장의 기본적 토대인 평화에 한중 양국이 공동으로 기여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상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 관계의 정치적 기반과 우호 정서를 튼튼히 쌓아가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 발언, 미중 갈등 속 전략적 선택 요구
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언급하며 보다 전략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다. 시 주석은 현재 세계가 100년 만의 대변화를 겪고 있으며 국제 질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중 양국은 역내 평화를 수호하고 세계 발전을 촉진하는 데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폭넓은 공동 이익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비판하는 동시에,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을 향해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대만·핵심 이익 언급, 한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시 주석은 회담에서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배려해야 한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이는 미중 갈등의 핵심 현안인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시 주석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견을 적절히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친중 성향으로 분류되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압송한 직후 열린 회담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한국을 향해 외교적 입장을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북핵·한반도 문제, 중국 발표에서 빠진 배경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기대했던 북한 문제는 중국 측 공식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조기 방중을 통해 경색된 대북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이후 브리핑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한중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는 점을 재확인했으며, 북한과의 대화 재개 필요성과 긴장 완화, 평화 구축을 위한 창의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외교 당국의 공식 발표에는 북핵이나 한반도 비핵화 관련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절 한중 정상회담 직후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 의지를 언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 시기부터 비핵화 표현이 빠지기 시작한 데 이어, 이번 회담에서는 아예 한반도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는 미중 갈등과 베네수엘라 사태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여력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일본 비판과 역사 인식, 동북아 정세 발언
시 주석은 회담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80여 년 전 한중 양국이 막대한 민족적 희생을 치르며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고 언급하며, 오늘날에도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를 수호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일본 지도부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한국 역시 대만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
◈한중 신뢰 회복과 협력 확대 논의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국이 대중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존중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뿌리가 깊고, 수천 년 동안 이웃 국가로서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으며 국권을 상실했던 시기에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싸웠던 역사적 관계라고 언급했다.
회담 이후 위성락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로 한중 정치적 신뢰와 우호 정서의 기반을 공고히 한 점을 꼽았다. 그는 한중 관계 전면 복원에 걸맞게 매년 정상 간 만남을 이어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외교·안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 당국 간 소통과 교류 확대에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문화 교류와 서해 현안 협의
문화·콘텐츠 교류 확대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양측은 상호 수용 가능한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교류를 확대해 나가자는 데 공감했으며, 세부 사안은 실무 협의를 통해 진전시키기로 했다. 이는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이어져 온 한한령 문제와 맞물린 논의로 해석된다. 바둑과 축구 분야 교류를 우선 추진하고, 드라마와 영화 등 문화 콘텐츠 교류도 실무 부서 간 협의를 통해 진전을 모색하기로 했다. 판다 대여 문제 역시 추가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서해를 둘러싼 현안도 테이블에 올랐다. 양국 정상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발전을 위해 서해를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서해 구조물 문제에 대해 건설적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중국이 설치한 대형 구조물과 관련한 논의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 측이 중국에 어민 계도와 단속 강화를 요청했으며, 서해 조업 질서 개선을 위해 관련 소통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중 관계 복원이라는 큰 틀 속에서 협력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미중 갈등과 대만 문제, 북핵 현안을 둘러싼 복합적인 외교 환경을 다시 한 번 드러낸 자리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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