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healing)이란 용어가 유행하다 못해 남용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조금만 스트레스 받는다고 생각하면 힐링해야 한다고 한다. 힐링을 위해 카페를 가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대한 소소한 소비를 즐기며 자신을 위해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열심히 일한 후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보상을 준다는 것은 중요하다. 보상과 쉼이 없이 일 자체에만 몰입할 때 사람은 일중독에 빠질 수 있으며, 이러한 일중독은 외적으로 좋은 일로 보이기 때문에 좋은 것도 중독될 수 있음이 외면된 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뿐 아니라, 심지어 추앙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점점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tolerance)수준이 낮아지며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기보다 무력하게 상처받은 인간으로 자신을 규규정하고 방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힐링이란 용어는 ‘상처의 치유와 회복’이라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는 축소되고 마치 유행처럼 남용되는 용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며 심지어 무능한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보다 힐링과 무료한 쉼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성경은 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창세기의 창조주 하나님은 6일 동안 열심히 일하셨다. 충분히 일하시고 날마다 자신의 창조 사역에 매우 자족하실 뿐 아니라, 심히 기뻐하신 후 드디어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창세기 1장). 하나님은 일하시면서 일에 대해 불평하시거나 지겨워하시기는커녕 날마다의 일을 즐기시며 애정으로 창조의 일을 이루어내셨다. 신약성서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쓰는 두 번째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이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장10절)’고 이야기한다. 즉, 자신의 노동의 가치만큼 보상받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에게 불필요하게 의지하는 무노동을 경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 나아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일하는 것에 더욱 긍정적으로 말씀하신다. 즉, 일이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일하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의 유명한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달란트 받은 자가 열심히 일하여 다섯달란트를 더 가져왔을 때 즉 주어진 자원에 비해 두 배의 성과를 냈을 때 예수님은 ‘수고했다’, ‘이제 쉬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도리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큰 수확을 낸 종에게 ‘이렇게 큰 일을 했구나, 이제 푹 쉬어라’ 하시지 않고 ‘적은 일’에 충성했다고 하시며, 너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음이 인정되었으니 ‘더 많은 일’을 맡길 것이고, 그 결국은 종이 아직은 알 수 없는 ‘주인의 즐거움’에 들어갈 것이라는 미래적인 희망과 비전을 주신다. 일은 종에게뿐 아니라 주인에게도 즐거운 일이 된다는 말씀이다.
일은 사랑과 더불어 인생의 두 가지 중대한 사명 중의 하나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의 초기 발달단계에서 양육자인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배운 유아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일’을 배우는 단계로 이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만약 유아가 단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사랑에게만 고착될 때 그 사랑은 이기적이고 착취적인, 병리적인 것이 된다고 보았다. 반면에 인생에 ‘아버지’라고 대표 상징되는 사회와 일, 세상을 경험하며 그 안에서 양심과 죄책감을 적당하게 경험할 때 그 유아는 나의 욕구와 세상의 판단을 적절하게 조율하며 현실에 건강하게 적응하는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일’이란 세상을 경험하는 중요한 통로이자 통합되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는 절대적 과제이며 가치였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일은 부담이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일이 많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신뢰이며 기대이다. 그리고 그 일은 그 일을 부여하신 우리 하나님께도 기쁜 일이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누릴 잔치를 기대하며 준비하고 계신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큰 일로 보이든 하찮은 것으로 보이든 그것은 나의 관점일 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 그 일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소명 의식’이 되는 것이다. 오늘 주어진 일에 감사하자. 그 일은 하나님이 나를 믿어주신 증거요, 내 일을 통해 이 세상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도록 나에게 기대하시며 맡겨주신 소명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자. 오늘 하루도 나의 하나님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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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