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13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위상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교회의 신인도가 추락하고 다음세대의 이탈이 갈수록 심화하는 등 이중고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교회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한 주 원인은 교회가 복음 정신에서 벗어난데 있다. 성경적 기준의 회복이 시급한 데 교회가 좌우 이념의 시류에 휩쓸려 성도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도록 방조한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교회 내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교회 밖에서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교회가 영적 역동성을 상실한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세대의 이탈에서 꼽을 수 있다. 상식과 공정에 민감한 30,40세대는 이미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로 정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위기의식과 함께 신뢰회복에 몸부림치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교회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최근 한국교회 일부 대형 교단과 교회가 내부적으로 교회세습과 목회자들의 성 비위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다.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데 집중해야 할 교단과 교회가 이런 문제로 아까운 시간과 영적 에너지를 쏟아버리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일련의 일들은 어쩌면 500여 년 전 마르틴 루터가 외쳤던 종교개혁의 정신과 열정이 퇴색하면서 일어난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종교개혁의 토대위에 세워진 교회가 성경 대신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에 물든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의 영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 사제의 중보나 면죄부가 아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려야 하는 값 비싼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가톨릭의 교권주의와 행위 구원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새로운 제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성직주의와 교권주의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헌금과 봉사, 교회활동이 믿음의 조건이 되면서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 것도 공교회성 상실의 원인이다.
가장 심각한 잘못은 ‘이신칭의’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킨 데 있다.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다 가 ‘성화’가 실종되고 구원이 마치 싸구려 세일처럼 취급받게 된 것이다.
중세 가톨릭에선 재물을 일만 악의 근원으로 여겼으나 종교개혁자들은 건전한 경제활동과 부를 모으는 일을 장려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이 소명을 세속적 성공과 부의 축적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번영신학과 실용주의의 출발이다. 건강과 부와 성공이 구원과 축복의 척도인양 변질되는 중병에 걸리게 된 거다.
이는 좀 심하게 표현해 중세 가톨릭이 면죄부를 팔고 공로를 쌓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하나님이 몸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성한 대속의 은총을 한낱 싸구려 은혜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대형교회들이 종교개혁주일에 즈음해 이른바 ‘종교올림픽’을 개최한다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선 모습이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 총회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떠나 과연 이것이 한국교회 선교 130년의 결실이자 자랑스러운 위상으로 내세울 만 한지 심히 걱정스럽다.
사실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논란이 된 WEA의 신학적 정체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WCC의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순수한 복음주의를 지키려 부단히 노력해 온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WEA 수뇌부의 일탈이 WEA를 수렁에 빠지게 했다는 점에서 이 점은 반드시 청산돼야 할 것이다.
이런 이들이 주동이 되어 WEA 서울총회가 결정된 건 WEA 역사에 있어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성공주의 착시에 빠져 한국교회에 닥친 위기의 실체를 외면한 교회와 교단들은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이 깨어나야 한다. 지금은 헛된 성공주의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혼란의 시대를 분별하는 냉철한 지혜로 말씀과 은혜, 믿음의 본질로 돌아갈 때인 것이다.
성직주의와 교권주의의 늪에서 헤어 나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만약 한국교회가 개혁 정신을 영영 잃어버리고 다른 길로 가면 오늘 보다 내일은 더욱 암담할 것이다.
하지만 거룩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님이 새로운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소멸되는 것보다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500여 년 전 종교개혁은 한국교회에 과거의 유물일 수 없다. 개혁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수명을 다한 교회란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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