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오늘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지만, 그 오랜 번역의 역사 뒤에는 수많은 갈등과 피, 그리고 희생이 있었다. 해리 프리드먼의 저서 <잔혹함의 성경 번역사>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칠십인역(셉투아진트)부터 현대 개정 표준역 성경에 이르기까지, 성경 번역을 둘러싼 극적인 사건과 치열한 논쟁을 2,300년에 걸친 긴 호흡으로 풀어낸다.
프리드먼은 런던대학에서 아람어를 전공한 학자로, 학문적 깊이와 스토리텔링을 겸비한 필치로 성경 번역의 역사를 생생히 되살린다.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을 넘어, 번역에 헌신한 사람들이 직면했던 사회적·정치적 압박과 그들의 비극적인 최후까지 세밀히 담아낸다. 이를 통해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성경 번역의 “자서전”으로 읽힌다.
번역의 시작, 알렉산드리아에서 세계로
저자는 성경 번역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칠십인역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헬라어로 번역된 성경은 유대 신앙과 사상을 지중해 세계 전역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탄생시켜 기독교의 정체성과 세계사적 변화를 일으켰다. 만약 칠십인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와 서구 문명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통찰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피비린내 나는 번역의 역사
책은 성경 번역이 언제나 순탄치 않았음을 강조한다. 최초의 영어 성경 번역자 윌리엄 틴들은 체포되어 화형당했고, 동료 존 로저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네덜란드어 성경을 번역한 야코프 판 리스펠트 역시 참수형에 처해졌다. 성경을 자국어로 읽게 하려는 시도가 곧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는 사실은 번역 행위가 단순한 언어적 작업을 넘어 신앙과 권력, 생명을 건 투쟁이었음을 보여준다.
권위와 해석을 둘러싼 갈등
히에로니무스가 남긴 라틴어 불가타 성경은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자리 잡았지만,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센 도전을 받았다. 위클리프의 영어 성경 번역은 농민과 평민들에게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기회를 제공했으나, 곧 지배 계급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성경 번역은 언제나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와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근대와 현대의 성경 번역 논쟁
킹 제임스 성경의 출현은 번역의 시대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단순한 생존 투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정치적·신학적 입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개정 표준역 성경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공군 예비군 교본에서 ‘공산주의와 연루된 성경’이라며 경고한 사건은, 성경 번역이 여전히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임을 보여준다.
성경 번역이 남긴 유산
오늘날 성경은 서점의 진열대에 흔히 놓여 있고, 스마트폰 앱으로 언제든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이 성경이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어떤 희생이 있었는가?” <잔혹함의 성경 번역사>는 그 대답을 역사 속 수많은 번역자들의 헌신과 비극에서 찾는다.
이 책은 성경이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권위와 갈등, 그리고 희생의 산물임을 깨닫게 한다. 성경 번역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 독자들이 손에 쥔 성경 한 권이 결코 당연한 결과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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