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오 교수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전통적인 성경관은 성경을 상황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경향이 강했으며, 이런 이유에서 성경을 상황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관점을 지녔다. 그러나 상황신학은 상황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상황에 비추어 성경을 찾고 해석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대표적인 상황신학 중 하나인 해방신학의 선구자 구티에레츠 (Gutierrez)는 콩가르 (Y. Conger)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현대세계의 실질적인 문제에 반응하려면 계시로부터 출발하는 고전적인 신학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세계와 역사로부터 나온 사실들과 질문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상황신학의 성경관을 잘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에큐메니칼 신학은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상황신학의 성경관 즉 상황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경향을 나타낸다. WCC는 상황의 중요성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반복은 복음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성경 본문들은 결코 처음 형태 그대로(ab ovo)해석될 수 없다. 즉, 해석은 항상 해석자가 서 있는 전통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 사실상 성경은 그것이 언제나 새로운 상황 속에서 올바르게 해석됨으로써 살아 있는 전통(대문자 T)이 된다.” 라고 말한다. 즉 성경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WCC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구 그룹들의 보고서는 상황에 의해서 조건 지워진 해석학적인 시각들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아주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것들은 편견으로 단정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현대적인 상황들과 연결시켜 주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연구그룹은 그 자신의 상황의 기초 위에서 그 자신의 해석학적인 관점은 해방자이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성서적 증거들이 읽혀지고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으로부터라는 사실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WCC가 처음부터 이렇게 상황을 강조하는 성경관을 지녔던 것은 아니었다. 1949년의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이라는 제목의 워드햄 보고서는 “주어진 문제와 관련해서 성경 본문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 의견을 같이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확정하는 일반원칙들은 성경의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우리 시대의 전제들을 반영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직 그 때에만 우리는 안전하게 우리 자신의 상황을 위한 적용을 연역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즉 에큐메니칼 진영도 초기에는 시대의 상황이나 전제들보다 성경의 메시지가 우선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성경관을 지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해방신학 등의 영향으로 상황을 우선순위에 두는 경향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황이 강조될 때 하나님의 계시와 상황을 혼동하게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복음의 내용 자체가 변질될 가능성이 나타나면서 기독교의 근본적 정체성이 상실될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계속)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현대선교신학
현대선교신학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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