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이 잇따라 우울증을 앓다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방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방 당국은 소방관들을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PTSD 고위험’ 집단으로 분류한다. 2015년 발표된 ‘소방공무원의 외상성 사건 경험과 PTSD 증상의 관계’ 연구에 따르면 소방관 중 심각한 PTSD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9.23%로, 일반인의 평생 유병률(1~6%)을 크게 웃돌았다.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 조사에서도 소방공무원이 1년 평균 7.8회의 참혹한 현장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두 달에 한 번꼴로 외상 사건을 경험하는 셈이다.
소방청이 실시한 2023~2024년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PTSD를 겪는 소방관은 4375명으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늘었다. 우울증을 겪는 소방관은 3937명,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된 소방관은 3141명으로 각각 소폭 증가했다.
최근 인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소방관 A씨도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 투입 이후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 고성소방서 소속 소방관 B씨 역시 참사 현장을 지원한 뒤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가와 휴직을 반복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청은 2015년부터 ‘찾아가는 상담실’ 사업을 운영하며 소방관서를 직접 방문해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상담 인력은 102명에 불과하며, 지난해 이들이 처리한 상담 건수는 7만9453건으로 상담사 1명당 연간 약 779건을 담당해 세심한 상담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고위험군 소방관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도 참여율이 낮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참가자 10명 중 3명은 내근 인력이었으며, 실제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정신과 진료비 전액 지원 사업도 시행 중이지만 예산이 연간 5억6000만원에 그쳐 충분한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소방관과 같은 참사·재난현장 최전선 공무원들의 트라우마를 장기적으로 추적·관리할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PTSD가 확인되면 초기 단계부터 전문적 치료를 받고 회복할 때까지 지속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조직 내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증상을 숨기거나 치료를 주저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며 “정신질환인지 몰라서 주저하는 경우와, 차별과 편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알면서도 숨기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방관들이 고통을 말할 수 있고 차별과 불이익이 뒤따르지 않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며 “리더의 솔선수범, 정기검진, 근로자지원프로그램 활성화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도 성명을 통해 “세월호 사고,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재난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PTSD로 고통받고 있다”며 “지금의 체계로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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