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최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경외를 잃어버릴 때’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경외의 성향은 창조적 선물로 선-형성되었으므로 소멸하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쇠퇴하고 비활성화되고 전도된 경외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이성과 감성이 창조적 선물로 선-형성되었으므로 소멸하지는 않지만, 활성화되고 비활성화되고, 전도된 방향과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삶에서 경외의 성향이 약화되고 비활성화될 때 거만이 자리 잡게 된다. 경외는 우리로 하여금 성장과 감사와 공명을 향하도록 성향 지어 주지만, 거만은 오만 형태의 삶을 형성하게 한다”며 “무엇보다 오만 형태는 자아 숭배로 기우는 전도된 경외를 발생시킨다. 전도된 경외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자율적 자아에 대한 경외로 빠져 자신의 역할 성취와 자아 증진을 통해서만 삶의 가치를 평가하게 한다”고 했다.
또 “우리가 역할 성취와 생체적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경외에 대한 우리의 선-성향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며 “이렇게 될 때 우리는 각각의 사물과 사건의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의 토대인 신적 신비에 대한 경외를 상실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외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구체성 안에서 신적 신비의 현현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며 “반면에 신적 신비에 대한 경외를 상실해 갈 때 오만 형태의 전도된 경외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하나님 또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거룩한 것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에 있는 우리의 자율적인 자아에 대한 경외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이어 “경외의 성향이 약화되고 오만 형태가 강화될 때 재화와 물질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전도된 경외가 강화될 수 있다”며 “특히 전도된 경외는 돈의 ‘우상성’과 관계되어 흔하게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된 경외는 예배를 통해 가장 심오하게 표출될 수 있지만, 전도된 경외는 예배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까지도 물화시킬 수 있다”며 “우리는 사람들과 사물들과 사건들 안에서 신적 현현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인식해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 경이로운 형태 잠재력을 허락해 주는 신적 신비에 대한 경외 안에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외의 성향은 공명적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자기 자아만을 주인 삼으려는 영적 교만에 맞서게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 전도된 경외 형태인 거만은 영적 빈곤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영적 빈곤에 빠질 때 기쁨과 찬양의 삶에 무능력해진다”며 “영적 빈곤을 깨우는 핵심적인 성향 가운데 하나가 경외의 성향이다. 경외는 우리의 삶에서 한탄보다 감사와 기쁨을 깨운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영적으로 빈곤할 때 가장 쉽게 나타나는 것이 우울과 슬픔”이라며 “영적으로 빈곤할 때는 우울과 슬픔이 우리를 사로잡아버리기 쉽다. 이때 우리는 잘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되므로 예배와 기도도 못하는 상태, 즉 극한 슬픔과 우울의 먼지로 가득하여 기쁨을 상실하게 된다. 우울과 슬픔이 기쁨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해로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경외의 성향은 우리 안에서 기쁨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기도 하다”며 “따라서 참된 경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향을 넘어 우리의 기도, 노래, 춤이 회복하도록 촉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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