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적인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주도하는 리즈 북클럽(Reese’s Book Club)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며 주목을 받은 오스틴 채닝 브라운의 데뷔작 <아임 스틸 히어(I'm Still Here)>는 인종과 신앙, 젠더의 교차지점에서 살아가는 흑인 여성의 삶을 예리하고도 솔직하게 풀어낸 회고록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인종차별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해 주는 책”이라는 위더스푼의 평가처럼, 독자들에게 감춰져 있던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억압과의 싸움, 유쾌한 저항의 기록
<아임 스틸 히어>는 더 이상 공식적인 인종차별은 없다는 듯 평등을 외치는 사회에서, 흑인 여성이 겪는 은밀하고도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을 증언한다. 특히 저자는 자신에게 ‘백인 남성’처럼 들리기를 바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 ‘오스틴’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이름조차도 차별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슬픔만을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브라운은 차별의 현실 앞에서도 꿋꿋하게 ‘존재를 주장하는 법’을 배우며, 고통 속에서도 정의와 희망을 추구해 나간다. 그녀는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 조직 안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드러내며, “나는 누군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진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감히 백인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 유발하는 불편함
브라운은 교회, 학교, 지역사회, 직장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흑인 여성에게 요구되는 ‘과잉 순응’의 이중 잣대를 고발한다. 그녀가 분노를 표현하면 ‘위협적’이라고 여겨지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 ‘예민하다’고 비난받는다. 그녀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분노는 성격의 결함’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묻는다. “왜 흑인은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가?” 브라운은 용서를 ‘흑인에게서 백인이 사면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백인 중심의 ‘화해’ 담론에 날카롭게 반기를 들며, 진정한 화해란 “억압받는 자와 힘없는 자에게 권력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눈으로 본 구조적 차별과 공동체의 희망
브라운은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가 구조적 차별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를 성찰한다. 그녀가 만난 예수는 차가운 교회 제도 속의 예수가 아니라, 가난하고 상처받은 자들과 함께하는 흑인 예수였다. “예수님은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도, 수도세를 못 내는 여자들도 보듬어 주셨다.” 그녀가 경험한 흑인 교회는 차별받는 자에게 진정한 소속감을 안겨준 공간이었다.
<아임 스틸 히어>는 타너하시 코츠, 미셸 알렉산더, 마이클 에릭 다이슨과 같은 지성들이 이어온 미국의 인종 문제 서사에 깊이를 더하는 새로운 목소리다. 동시에, 이 책은 단지 미국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앙 공동체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침묵의 구조를 돌아보게 하며, “우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브라운의 외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도전과 위로를 전한다.
희망은 죽고, 다시 태어난다
브라운은 고백한다. “희망은 천 번쯤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새로운 희망이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피어난다고 말한다. 희망은 거창한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희망은 ‘말투에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분노하는 사랑’, ‘혐오에 침묵하지 않고 정의를 택하는 사랑’ 속에서, 그리고 ‘무관심을 거부하고 함께 싸우는 이들’ 속에서 다시 자라난다.
<아임 스틸 히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다루면서도 문장 하나하나에 생명력과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브라운의 문체는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담담하고, 때로는 불을 지피는 예언자와도 같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차별의 본질을 꿰뚫는 지성과 함께, ‘지금 여기에서 정의롭게 살아가기 위한 실천’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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